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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Nov 26. 2023

나쁜 말 에피소드

여덟 살의 욕

1. 

쉬는 시간에 훈이가 쪼르르 와서

“선생님, 유현이가 저보고 욕했어요!”

한다. 체격을 보면 다른 친구들을 다 이기고도 남을 것 같은데 이럴 때 보면 참 여려 보인다. 그 생각 중에도 네가 말한 그 욕이 진짜 욕이면 어쩌지, 이제 겨우 입학한 지 2주도 되지 않았다고! 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유현이가 뒷문으로 들어오길래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알고 보니 욕의 정체는 바로! *‘가오나시’였다. 그런데 처음에 가오나시를 말한 아이는 예지였다고 한다. 앞으로 불러서 왜 가오나시라고 했냐고 물어봤더니 너무나 진지하게 흉내까지 내며 대답한다.

“옷을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렇게 하니까 가오나시처럼 생겨서 그렇게 말했어요.”

휴. 거칠디 거친 험한 욕이 아니어서 일단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 아이들을 중재해주고 나니 드는 생각. 1학년은 욕마저 귀엽구나!


*가오나시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검은색 천을 뒤집어쓴 캐릭터.     



2.

쉬는 시간마다 내 영역까지 침범하며 신나게 노는 삼총사가 있다. 지한이가 그중 한 명인데 워낙 거칠게 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친구와 부딪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원인 제공을 누가 했든지 간에 부딪친 사실이 짜증이 나는 모양. 친구에게 “아이, 씨.”하고 말하는 일이 있었다. 담임은 뒤에 한 글자를 더 붙이지 않은 게 오히려 고맙지만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고단새 쪼르르 달려와 친구가 욕을 했다며 고자질을 해온다. 사실 나도 직접 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일러바치지 않아도 불러서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본인이 내질러 놓고도 혼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쁜지 가재미 눈을 해서는 겨우 발걸음을 떼서 걸어온다.

“지한아, 네가 욕한 거 맞아?”

물었더니 뜸을 들이다 겨우 맞다고 대답한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두 번째 뜸을 들이고는

“친구랑 부딪쳐서 짜증 나서요.”

한다.

“같이 놀다가 그런 거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짜증이 났어?”

하니 아무 말 못 하는 지한이. 다음부터는 과격하게 놀지 말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욕은 하지 말자고 좋게 타이르고 넘어가려는 찰나, 지한이가 말했다.

“자꾸 입에서 욕이 나와요.”

이런 솔직 고백을 들으리라 예상하지 못해서 마음이 다시 녹아내렸다.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지한이에게 욕을 하지 말라고 말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그 말을 할지 안 할지는 너에게 달렸어. 욕 하는 건 다른 사람이 고쳐줄 수 없고 지한이가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없어.”

했더니 끄덕끄덕 한다. 타이르면 고분고분해지니 다음엔 안 그러겠지 하는 희망을 또 가져본다. 어김없이 실망하게 되더라도 이런 솔직 고백에 쉽게 버럭 했던 모습을 반성해 보는 하루살이 남선생.



3.

수 배열을 보고 규칙을 찾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문제까지 내 보는 수학 시간. 보통 내용 설명이 20~25분 정도고 나머지 시간에 수학익힘책 문제를 풀도록 한다. 그런데 만든 문제를 짝과 함께 내고 맞히라고 했더니 앞에 나와 전체 아이들에게 문제를 내고 싶다는 어린이들 속출. 결국 수학익힘책은 집에 가서 숙제로 해오는 데 동의한 아이들 한 명씩 나와 실물화상기로 자신이 낸 규칙 찾기 문제를 보여주고 맞히게 되었다. 문제를 보여주면 빈칸에 들어갈 수를 생각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제법 다양하고 괜찮은 문제들이 많이 나와서 원리 설명을 하고 칭찬을 해주고 있던 찰나, 갑자기 지한이가 말했다.    

“선생님, 지금 욕 했어요?”     

이게 무슨 말이지? 선생님은 수학 문제 정답을 설명했을 뿐인데. 알고 보니 문제의 규칙을 설명할 때 들린 말을 ‘이씨’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 문제 규칙은 뭔가요? 맞아요. 11부터 시작해서 2씩 커지는 규칙이에요. 잘했어요.”     

여기서 ‘2씩’을 ‘이씨’로 들은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입에서 자꾸 욕이 나온다는 지한이가 말해서 조금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속상해도 가만히 있을 걸. 입이 방정이었다.     

“얘들아, 평소에 욕을 자주 사용하면 다른 사람 말이 그렇게 들릴 수가 있어. 수학 시간에 ‘18’을 말해도 욕 한다고 말하는 형님들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예쁜 말만 쓰도록 노력해 보자.”

그랬는데 어린이들 대답 듣고 좌절한 담임.

“18이 욕이에요?”

미안해, 얘들아. 아, 정말... 흑. 울고 싶어라.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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