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바차 Jun 19. 2024

일하는 모습이 섹시한 사람

47. 녹색 바다는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았다.

"일하는 모습이 섹시한 사람."


난해한 섹시함의 기준에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섹시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살풋 얼굴이 상기된 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그런 무언가가 있다고 얼버무린다.

필시 그들이 느끼는 호감의 계기가 따로 있어 마음이 동한 건데

괜한 호감에 섹시를 들먹이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평소 나는 생각했다.

이곳 군대에서 일하는 모습이 섹시한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진.


내 몫 하나 겨우 해내기 바빴던 내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니 슬슬 다른 것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보직으로 매일 같이 부대끼는 동료들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병사들에게 호기심이 생겼고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밥을 준비하는 취사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주방. 걷어 올린 소매로 드러난 성난 핏줄과  

이글거리는 불 앞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요리에 열중하는 취사병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릿속으로 섹시하다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섹시" 단연코 그 어떤 단어도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열중하는 그들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훔쳐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그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면

짝사랑하는 동급생을 훔쳐보는 사춘기 학생 마냥 급히 시선을 거두고 쫓기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은 요리 외에 다른 무엇도 하지 않았고 본인 일에 집중하던 게 다였지만

몰입한 그들의 얼굴과 진지한 눈빛에 나는 무방비로 섹시함을 느꼈고 그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과 타인을 생각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들의 영향인지 나도 섹시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어졌다.

프로페셔널하게 맡은 임무를 멋지게 소화해 남들로부터 섹시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어졌다.


오늘 작은 목표 하나가 생겼다.

일하는 모습이 섹시한 사람이 되기.

이전 22화 사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