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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바차 Apr 29. 2024

슬기로운 훈련소 의사 생활

30. 녹색 바다는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았다.

이곳에서 훈련병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있었다.


 “의사 쌤.”


고생하는 리더들에게 줄곧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의무 훈련병이라는 직책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게도 주로 의료 관련 공부를 이행한 사람들 위주로 맡겨졌는데

시도조차 못하고 마음을 접으려던 나를 도전하게 만들었던 계기가 있다.

 

입대 첫날부터 잦은 실수로 자꾸만 눈에 밟히는 훈련병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 훈련 번호를 외치는 간단한 관등성명도 버벅거렸고

제식 등 군인의 기본적인 소양을 익히는 것이 남들보다 몹시 더뎠다.

어김없이 그날도 자신의 군화 끈을 묶지 못한 그는 곤란함에 처해있었다.

모두들 일찍이 준비를 마치고 대기 자세로 그 친구만을 기다리고 조교는 그런 그를 가만 응시했다.

숨 막히는 적막의 생활관 난처한 신음만이 낮게 울렸다.

조급해서인지 가뜩이나 방황하던 그의 손이 더욱이 갈피를 잡지 못했고

눈치가 보여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다른 훈련병들은 이 상황이 얼른 끝나기 만을 간절히 바랐다.

1분이 1시간 같은 순간. 숨 막히는 적막을 깨트린건 뜬금없이도 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친구 앞에 쭈그려 앉아 대신해 군화 끈을 묶어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불쑥 솟은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바삐 움직이는 손과 달리 머릿속은 오지랖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복잡했다.  

이미 진작 끈은 다 묶었건만 차마 떨궈진 고개가 들리지 않는다.

멋대로 행동한 것이 혼이 날까 두려워 조교의 얼굴을 처다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앉아 있을 수는 상황. 마지못해 천 근 같이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다.

하필 또 내 자리는 조교가 서있는 문 앞인 건지 히읗이 들어가는 성을 그새 또 원망한다.

내 자리까지 다섯 걸음 조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 자리까지 세 걸음 여전히 그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내 자리까지 한 걸음 조교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본 조교가 보기에 모든 훈련병 준비가 완료된 것 같은데 맞습니까?"

  

걱정과는 달리 담당 조교는 내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고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어찌 저지 위기는 벗어난 나는 당시 느꼈던 여운은 그 자리 오래도록 남았다.

그 일이 지나고 담당 조교가 나를 혼내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뒤처지는 전우가 있다면 서로가 도우며 함께 나아가길, 바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쨌든 우린 전시 상황이 발생하면 전투를 함께 해야 할 전우니까.


선행의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도움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도움 앞에 망설이던 내가 더는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포기하려던 의무 훈련병 직책이 욕심났다.

안타까워서가 아닌 그들이 비로소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리더가 앞장서 이끌어간다면, 나는 뒤처지는 사람을 챙기고자.     


이런 진심이 통했는지 나는 의무 행정병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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