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탄소배출권
(2018.11.20) 에너지신문, “GS칼텍스, 미얀마 쿡스토브 지원으로 온실가스 저감”
(2019.11.14) 뉴데일리경제, “SKT, '미얀마 쿡스토브 사업' 전국 432만대 확장”
(2020.03.09) 한국건설신문, “중부발전, 방글라데시 쿡스토브 보급 CDM사업 수행” ……
쿡스토브를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수십 건의 기사 제목 중 일부를 가져왔다. 홍보 의도가 다분히 짙은 제목이 대부분이나, 적지 않은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쿡스토브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 쿡스토브가 뭐길래, 기업들이 해외에서 앞다투어 투자와 보급에 나섰던 걸까?
쿡스토브(Cookstove)는 문자 그대로 조리활동(cooking)을 위해 나무땔감과 같은 연료를 태우는 난로(Stove)이다. 어떤 연료(나무땔감, 숯, 에탄올 등)를 투입하는지, 어떤 재질(세라믹, 스테인리스강 등)로 구성되었는지, 화구는 몇 개인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쿡스토브의 종류를 나눌 수 있다.
혹자에겐 쿡스토브는 캠핑용품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일반적인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가스레인지나 전기 인덕션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저개발 국가, 특히 최빈국은 상황이 다르다. 여전히 상당 수의 주민들은 주방에서 전통방식에 의존해 불을 피우고 음식을 조리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26억 명 이상이 여전히 나무땔감, 숯, 등유 등을 단순한 Open fire(혹은 Three Stone Stove) 방식으로 태우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도시가스 보급률이 높지도 않을뿐더러, 특히 시골 지역의 경우 전력 공급도 부족해 전기 인덕션 사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전통방식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을 피우면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에 의한 실내공기오염이다. 원시적이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실내에서 불을 피울 때 부족한 산소 공급으로 불의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못하고, 그에 따라 가연물이 완전히 산화되지 않는 '불완전 연소'가 발생한다. 즉 저조한 연소 효율로 일산화탄소, 미세먼지, 그을음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WHO는 불완전 연소로 인한 실내공기오염으로 연간 전 세계 인구의 380만 명이 조기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특히 실내 거주가 잦은 여성과 아이가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비효율적인 연료 소비 또한 심각한 문제다. Open Fire 방식으로 불을 피울 경우, 나무땔감이나 숯이 가진 바이오매스의 10~15%만 열에너지로 냄비에 전달되고 나머지는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Open Fire 방식으로 소비하는 나무땔감의 양은 가구당 연간 2~3톤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무분별한 벌채로 이어져 산림 황폐화를 야기하는 요인으로도 손꼽힌다.
쿡스토브는 Open Fire 방식으로 인한 위생 및 자원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쿡스토브 중 가장 대표적인 유형인 고효율 로켓 스토브(Rocket Stove)의 원리를 살펴보자.
로켓 스토브는 쿡스토브를 연구하는 Aprovecho Research Cetner의 Larry Winiarsky 박사가 고안해낸 방식으로, 원통형의 연소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로켓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로켓 스토브가 연기를 내뿜지 않고 효율이 높아지는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늘게 자른 땔감을 한 방향으로 투입구에 밀어 넣고, 땔감 끝부분에만 불을 피워 화점(火点) 집중 → 연소 및 연료 효율 증가
땔감을 받치는 선반 밑으로 공기를 일정하게 공급, 차가운 외부 공기 유입 차단 →연소 효율 증가
단열 기능이 우수한 소재로 화력 상승 → 연소 효율 증가
좁은 연소실 구조로 연소가스가 빠르게 이동해 냄비에 더 많은 열 이동 → 연료 효율 증가
쿡스토브 제조사와 제품 유형에 따라 성능 차이가 있지만, 쿡스토브는 대체로 25~35%의 열효율을 보이고 있다. 즉 Open Fire 방식으로 불을 피울 때보다 효율이 2~3배가량 증가해, 그만큼 연료 절감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효율적인 연료 소모가 가능해지면서 연료 구입에 대한 가계 부담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산림자원 보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연소 효율이 높아져 연기나 미세먼지 배출이 줄어드는 것 또한 쿡스토브의 중요한 장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왜 쿡스토브 보급사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탄소배출권 확보를 꼽을 수 있다. UNFCCC CDM, Verra, Gold Standard 등 국제 인증기관에서는 쿡스토브 보급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실적 발급을 허용하고 있다. 기존의 방식을 대체해 쿡스토브를 사용할 경우, 개선된 열효율로 연료가 절감되고 그에 해당하는 양만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효율 쿡스토브 외에도 바이오에탄올 등을 소비하는 쿡스토브를 보급, 청정연료로의 전환을 이루어 온실가스 감축을 인정받기도 한다.
즉 기업들이 비용을 지원해 쿡스토브를 보급하고, 이후 모니터링과 검증을 거쳐 인증기관으로부터 발급되는 탄소배출권을 확보해 배출권 거래제 이행이나 자발적 상쇄(Offset)에 활용하는 것이다. ESG 경영이 대두되는 흐름 속에서, 기업이 개도국 저소득층에 쿡스토브를 보급해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공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급이란 무상 제공, 구매 보조금 지원 등을 포괄한다)
단순히 쿡스토브만 보급하면 끝나는 단순한 사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쿡스토브 보급 이후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쿡스토브 사용법과 주의사항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하며,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쿡스토브를 단순히 보급받았다고 해서 지난 수십수백 년 전부터 이어온 생활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쿡스토브 100대를 보급했지만 주민들이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100대 모두 버려지거나 방치된다면 탄소배출권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현지 사정에 밝고 보급∙운영 체계를 담당할 NGO와 탄소배출권 사업화를 전담하는 전문 디벨로퍼가 협업해 쿡스토브 보급사업을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쿡스토브 사용자들에게 들은 피드백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불만은 '나무땔감을 가늘게 자르는 게 귀찮다'였다. 예전에는 땔감을 통째로 넣어 간편하게 불을 피우곤 했는데, 쿡스토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용법에 대한 인식 부족 문제로 판단해, 현지 NGO를 통해 사후 교육을 강화했다. 나무땔감을 소분해 쿡스토브로 불을 피우면 연기도 덜 나고 연료도 덜 쓸 수 있어 결과적으로 혜택을 본다는 확신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탄소배출권 발급을 위한 첫 번째 현장 모니터링 당시 귀찮다는 이유로 쿡스토브 사용을 꺼리는 주민은 없었다.
탄소배출권 발급을 위한 검증을 받을 때에도, 제3자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모니터링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 태양광 같은 발전설비나 산업시설의 경우 전력량이나 스팀 등을 정밀하게 계량하는 장치를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할 수 있지만, 쿡스토브 사업은 설문조사 기법을 이용해 사용 유무와 시간 등을 조사해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한다. 보급한 쿡스토브에 일일이 계량기를 달기에는 비용 부담이 매우 크고 개도국 여건상 운영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UNFCCC CDM은 무작위 표분을 추출해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모니터링 방법론을 개발했으며 현재까지도 보완을 거듭하며 정교화하고 있다. 다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모니터링 방법이기 때문에, 설문조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는 여러 장치(현장 영상 기록물 등)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영국 Imperial College London의 연구에 따르면, 쿡스토브 보급에 따른 위생 개선, 연료 절감, 산림 보전 등의 가치를 정량화하면 탄소 감축량 1톤당 $724에 이른다고 한다. 고효율 쿡스토브의 가격이 보통 $10~30 수준임을 감안하면, 쿡스토브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은 상당히 큰 파급효과를 보여준다.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에서도 쿡스토브 탄소배출권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아 톤당 $10~15 수준으로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톤당 $5를 하회하는 재생에너지 탄소배출권(풍력, 수력 등)과는 대조적이다.
앞선 글에서 설명하였듯이, 최근 국제 탄소시장을 다루는 파리협정 6조가 완결됨에 따라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달성한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국내로 이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면서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온실가스 감축 아이템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 국가 위상을 재고하는 기회로 삼을 때이다. 그중에서도 쿡스토브가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