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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21. 2022

바가지에 대한 작은 위로

                                                                     



박, 하면 제비가 물어다 준 흥부의 박을 먼저 떠올린다.
흥부의 박이 스스로 일해서 얻는 결과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끔 비아냥을 받는 거 같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흥부의 박이 선행의 대가인 것은 확실하다.


그건 중요한 것이다. 더구나 한갓 생물인 제비의 다리를 고쳐줄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흥부의 박은 박재삼 시인의 '흥부 부부상' 시에서, 박 타는 장면이 부부간의 금슬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 이 흥부의 박이 이렇게 횡재의 산물이거나, 부부간의 눈물겨운 가난 극복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옛날, 바가지를 탕탕 깨뜨려서 시집살이의 한풀이를 하던 여성의 스트레스에 의하면 얼마나 애교스러운 것인가.


내가 어릴 때는 이 박이 집집마다 울타리를 넘어서, 머리를 박박 민 아이들의 머리통처럼 조롱조롱 열렸다.

하얀 박꽃이 열릴 때면 불빛이 귀하던 동네가 다 환했다. 조롱박이 조롱조롱 벽을 타고 오르거나 담을 타고 오르며 매달릴 때면 앙증맞은 박이 빨리 여물기만을 기다렸다. 하도 많이 열리니까 우리의 소꿉감으로 하나쯤 차지가 돌아왔다.

박이 모자라더라도 바가지를 만들다가 한 귀퉁이가 부서지는 것쯤은 얼마든지 생겼으니까.


박이 흰 달처럼 둥실 여물 때면 몇 개씩이나 열리는 박은 나물로, 바가지로, 여러 용도로 쓰임새에 맞게 잘렸다.  

1년 내내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선 박은 햇볕 좋은 날 말려 박오가리로 만들었다.

박나물은 맛이 없지만, 박오가리로 조청을 넣어 고면 반대쪽도 환히 비칠 만큼 아주 투명해, 이 귀한 음식은 명절이나 겨우 한쪽 얻어먹을 뿐이었다.


이 박나물은 제사상에 꼭 올라가는 나물이라서 집집마다 그렇게 심어 두고 있었을까.

박나물을 생으로 쓴 것은 참 씁쓰레하니 맛이 없다. 그런데 박나물을 먹어야 귀신이 달라붙지 않는다고, 제사가 끝나면 꼭 밥에 비벼 먹게 했다.

박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또 역설적으로 제사상의 냄새를 먼저 맡기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박나물이 귀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나물이 되다 보니 그때도 박나물이 몸에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라도 강제로 먹여야 했던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귀신에 대한 터부쯤이야 누구나 두려워하던 것이었으니까.






동네 처녀가 시집을 갈 때 이 바가지를 콱 밟던 광경도 보았다. 바가지 밟기가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 매끈거리니 밟기도 어렵고, 잘 익은 바가지가 밟는다고 깨지는 것이 아니다.

동네 아줌마들은 첫판에 이 바가지를 밟아야 남편을 콱 쥐어 잡고 산다면서 깔깔거리고 웃으며 신부에게 힘주라고 하면서 같이 발을 들어 힘껏 내리밟는 시늉을 하곤 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함께 그렇게 힘을 주어 박을 밟는 시늉을 해주면 제법 박은 쉽게 깨지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서 시집가는 날이 오면 제일 속을 많이 파내 얇아진 박을 찾느라고 집집마다 뒤지곤 했다.


박이 익으면 속을 통통 두드려봐서 울리는 소리가 나면, 반듯하니 반을 갈라서 박속을 파내고 그늘에 엎어놓고 말렸다. 말라도 시퍼러니한 박은 모양새가 없었지만, 쓰다 보면 갈수록 바가지 다웠다.  

처음 바가지를 만들 때 애초부터 누런 색인 줄 알았는데, 연한 풀잎 같은 색이 점차 손때 묻어가면서 누렇게 친숙하고 낯익은 빛깔로 변해갔다.


공동우물에 가면 종종 아줌마들이 바가지를 들고 나와 물을 퍼담다가도 갑자기 탕, 하고 바닥에 힘껏 내려치는 모습을 간혹 목격했다. 그럴 때면 바가지는 아주 쩍하니 금이 가는데, 그걸 보는 나도 속이 시원하면서, 한편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마음부터 짜하게 아렸다.


왜 그랬을까. 잘 마른 박은 텅 하니 내려놓기만 해도 아주 쩍하니 금이 간다.  다른 때는 그렇게 살금살금 쓰던 박을 갑자기 왜 메다꽂았을까. 그러면 모여서 쌀이나 나물을 씻던 아줌마들은 아이구, 시원해라, 하면서 자신의 바가지도 덩달아 탕 집어던졌다.

그러면 아줌마들깔깔거리며 아이구, 시원하다 시원해,라고 했다.


바가지는 부엌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다. 부엌에서 쌓이는 온갖 스트레스를 담고 있는 도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바가지를 박박 긁는다는 말도 아마 여자들이 박속을 파내고 물그릇, 쌀 씻는 그릇, 무언가 퍼내는 그릇으로 사용하면서 여자들의 스트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바가지 긁기는 여성의 전유물처럼 말해지지만, 은사님이셨던 한 교수님은 부인과 사별 후 제일 그리운 게 부인이 바가지를 긁던 모습이라고 했으니, 바가지도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인가.


부엌에서 장독간에서 광에서, 어디서나 제일 요긴하게 쓰였던 바가지는 아무리 쌀을 박박 문질러 씻어도 여성들의 손톱을 상하게 하지 않던 부드러운 도구였다.

플라스틱 용기가 바가지 대신에 나타났을 때 그것이 깨지면 모두들 여간 아까워한 게 아니었다.

박처럼 더 이상 다음 해에 공으로 열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까. 


집집마다 타고 오르던 박은 해마다 뒤 울안에서 자라면서, 여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스트레스용 도구가 아니었던가 이제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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