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Mar 30. 2022

허기라는 반찬을 식탁에 차리면서

- 음식일까 요리일까

일주일은 쳇바퀴처럼 돈다. 세탁, 빵 굽기, 다림질, 과실 말리기, 옷 거풍 하기, 바느질, 청소, 다시 굽고 치우기, 그렇게 한 주일 한 주일이 흘러간다. 우리는 요리해서 먹이고, 요리하고 치우고, 쓸고 닦으며 평생을 보낸다. 무덤가에 가서나 가재도구를 놓으려나!...... 그대는 굽고, 끓이고, 튀기고, 국물을 내고, 걱정하고 힘 들여 일한다. 마치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세상사는 목적인 것 같지 않은가.

 (제인 G 스위스 홀름, '시골 아낙에게 보내는 편지' )


 

봄이 새로 왔다. 그리고 한 여름이 가면, 가을의 풍성함이 또다시 온다.  

이렇게 계절이 순환할 동안 매 계절마다 주방은 온갖 희희 비비가 교차한다. 불 앞에 서 있기도 힘든 폭염이 올 때는 우리를 부엌에서 여지없이 내몬다. 또 설령 음식을 한들 냉장고 속에서도 보관이 쉽지 않다. 금세 시든 야채와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조리된 음식들은 패잔병 같다.  


가을은 풍요롭다. 온갖 조리 재료들이 넘친다. 그 한가운데 서서 음식을 할 것인가, 요리를 할 것인가라는 우문을 하면서 우두커니가 된다.


사전에 음식(food)은 식품과 기호품을 알맞게 배합하여 그대로 먹을 수 있도록 조리 가공한 것이라고 하고, 요리(cooking)는 식품을 그대로 또는 다른 식품과 섞어서 먹기 좋게 하거나, 여러 재료를 넣고 가열해 맛을 낸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을 좀 더 살펴보면 요리는 중국에서 300년 전부터 할선(割鮮)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먹을 목적으로 그 재료를 먹기 좋게 껍질을 벗기거나, 내장을 꺼내고, 생선 비늘을 없애고, 뼈를 바르고, 식물의 뿌리를 자르고, 식품을 잘게 썰고 등 열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리하는 것을 조리, 할팽(割烹)이라 할 때는 생식의 割과 가열의 烹이 합쳐진 것이다. 영어의 쿡도 불을 통해서 식물을 요리하다, 취사하다, 란 뜻이 있는데 결국 요리란 가열에 중점을 둔다.

이로 미루어 우리가 하는 것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리란 말을 할 때의 주눅이 드는 것은 또 어찌할 것인가.



                                                   (동생에게 배운 빠에야)



요리는 프로의 냄새가 난다.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언감생심 갖다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요리란 말을 붙여서 거창하게 먹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싶지도 않다.

가끔 블로그 등에 음식을 올리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 음식을 하려면 재료나 순서를 잊어버리니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엄마가 없을 때 아이들이 밥을 불가피하게 해 먹는다. 그때 찾아보고 알아서 해 먹으라는 뜻에서다.


아이들이 가끔 우스개소리로 연예인급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내 시간상에서, 음식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신속히, 냉장고 속의 재료를 꺼내서 잘 혼합하여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뚝딱.


그렇다고 음식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좋아했다.

단 아주 재빨리 만드는 것들에 한해서. 그래서 그걸 커버하기 위해 제법 있어 보이게 하려고 깔끔하게 차리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음식 해 먹는데 너무 시간 뺏기는 것은 아까우니 가장 간단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럼 너무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튀기고, 굽고, 찌고, 데치고 등 너무 많은 음식들을 하기보다는 한 가지 음식으로 메인이 되게 만들어서 야채 등, 밑반찬 등의 나머지 음식을 간략하게 곁들이는 것을 환영한다.


우리 음식은 너무 번거롭다. 많은 음식을 해야 상이 그럴싸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서양 요리를 연구하는 편도 좋다. 큰 접시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럼 풍성해 보인다.  

불 앞에 서야 하니 궁리와 잔꾀가 늘어간다.  집을 지으면서 이사를 갔을 때도 큰 접시 4개면 다 해결이 되었다.



                                                         (동죽으로 만든 샐러드)



인류가 불을 사용해서 화식을 한 것은 약 2만 년 전, 혹은 10만 년 전이란 설이 있다.

가열하는 조리법은 우리의 요일처럼 화, 수, 목, 금, 토가 있다. ‘화’는 직접 불에 쬐는 것, ‘수’는 수증기를 이용해 가열하고 찌는 것. ‘목’ 은 목질을 통해서 가열하는 법, ‘금’ 은 금속 냄비를 이용해 끓임, 튀김, 부침 등, ‘토’는 돌솥, 돌을 이용한 조리를 하는 것으로 주로 둔다.

  

매 요일마다 이렇게 변화 있게 해 먹으면 좀 그럴듯할까. 또 궁리다.  

결론은 요리란 말보다 그 시원(始原)이 좀 더 깊고 멀어 보이는 음식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 눈에 보이는 재료들을 마음에 맞게 먹는 것이 제대로 된 식탁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요리를 하려면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부엌데기가 되어야 한다.


한 끼 저녁을 차리는데 2시간 이상을 잡아야 하고, 또 그를 위해 장을 보는 시간, 다 먹고 치우는 시간까지 합하면 적어도 서 너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종종거리며 파김치가 되어봤자 다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음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은 이해심이 깊어야 한다.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저녁시간에서 1시간 반 내지는 두 시간가량 늦게 들어왔지만 뚝딱, 30분 만에 저녁 식탁을 차렸다. 뚝딱뚝딱.


허기라는 반찬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겠지만, 그런대로 저녁은 음식 향기로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사는 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