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은 쳇바퀴처럼 돈다. 세탁, 빵 굽기, 다림질, 과실 말리기, 옷 거풍 하기, 바느질, 청소, 다시 굽고 치우기, 그렇게 한 주일 한 주일이 흘러간다. 우리는 요리해서 먹이고, 요리하고 치우고, 쓸고 닦으며 평생을 보낸다. 무덤가에 가서나 가재도구를 놓으려나!...... 그대는 굽고, 끓이고, 튀기고, 국물을 내고, 걱정하고 힘 들여 일한다. 마치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세상사는 목적인 것 같지 않은가.
(제인 G 스위스 홀름, '시골 아낙에게 보내는 편지' )
봄이 새로 왔다. 그리고 한 여름이 가면, 가을의 풍성함이 또다시 온다.
이렇게 계절이 순환할 동안 매 계절마다 주방은 온갖 희희 비비가 교차한다. 불 앞에 서 있기도 힘든 폭염이 올 때는 우리를 부엌에서 여지없이 내몬다. 또 설령 음식을 한들 냉장고 속에서도 보관이 쉽지 않다. 금세 시든 야채와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조리된 음식들은 패잔병 같다.
가을은 풍요롭다. 온갖 조리 재료들이 넘친다. 그 한가운데 서서 음식을 할 것인가, 요리를 할 것인가라는 우문을 하면서 우두커니가 된다.
사전에 음식(food)은 식품과 기호품을 알맞게 배합하여 그대로 먹을 수 있도록 조리 가공한 것이라고 하고, 요리(cooking)는 식품을 그대로 또는 다른 식품과 섞어서 먹기 좋게 하거나, 여러 재료를 넣고 가열해 맛을 낸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것을 좀 더 살펴보면 요리는 중국에서 300년 전부터 할선(割鮮)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먹을 목적으로 그 재료를 먹기 좋게 껍질을 벗기거나, 내장을 꺼내고, 생선 비늘을 없애고, 뼈를 바르고, 식물의 뿌리를 자르고, 식품을 잘게 썰고 등 열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리하는 것을 조리, 할팽(割烹)이라 할 때는 생식의 割과 가열의 烹이 합쳐진 것이다. 영어의 쿡도 불을 통해서 식물을 요리하다, 취사하다, 란 뜻이 있는데 결국 요리란 가열에 중점을 둔다.
이로 미루어 우리가 하는 것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리란 말을 할 때의 주눅이 드는 것은 또 어찌할 것인가.
(동생에게 배운 빠에야)
요리는 프로의 냄새가 난다.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언감생심 갖다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요리란 말을 붙여서 거창하게 먹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싶지도 않다.
가끔 블로그 등에 음식을 올리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 음식을 하려면 재료나 순서를 잊어버리니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엄마가 없을 때 아이들이 밥을 불가피하게 해 먹는다. 그때 찾아보고 알아서 해 먹으라는 뜻에서다.
아이들이 가끔 우스개소리로 연예인급 스케줄(?)을 소화한다는 내 시간상에서, 음식은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신속히, 냉장고 속의 재료를 꺼내서 잘 혼합하여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뚝딱.
그렇다고 음식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좋아했다.
단 아주 재빨리 만드는 것들에 한해서. 그래서 그걸 커버하기 위해 제법 있어 보이게 하려고 깔끔하게 차리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음식 해 먹는데 너무 시간 뺏기는 것은 아까우니 가장 간단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럼 너무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튀기고, 굽고, 찌고, 데치고 등 너무 많은 음식들을 하기보다는 한 가지 음식으로 메인이 되게 만들어서 야채 등, 밑반찬 등의 나머지 음식을 간략하게 곁들이는 것을 환영한다.
우리 음식은 너무 번거롭다. 많은 음식을 해야 상이 그럴싸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서양 요리를 연구하는 편도 좋다. 큰 접시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럼 풍성해 보인다.
불 앞에 서야 하니 궁리와 잔꾀가 늘어간다. 집을 지으면서 이사를 갔을 때도 큰 접시 4개면 다 해결이 되었다.
(동죽으로 만든 샐러드)
인류가 불을 사용해서 화식을 한 것은 약 2만 년 전, 혹은 10만 년 전이란 설이 있다.
가열하는 조리법은 우리의 요일처럼 화, 수, 목, 금, 토가 있다. ‘화’는 직접 불에 쬐는 것, ‘수’는 수증기를 이용해 가열하고 찌는 것. ‘목’ 은 목질을 통해서 가열하는 법, ‘금’ 은 금속 냄비를 이용해 끓임, 튀김, 부침 등, ‘토’는 돌솥, 돌을 이용한 조리를 하는 것으로 주로 둔다.
매 요일마다 이렇게 변화 있게 해 먹으면 좀 그럴듯할까. 또 궁리다.
결론은 요리란 말보다 그 시원(始原)이 좀 더 깊고 멀어 보이는 음식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 눈에 보이는 재료들을 마음에 맞게 먹는 것이 제대로 된 식탁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요리를 하려면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부엌데기가 되어야 한다.
한 끼 저녁을 차리는데 2시간 이상을 잡아야 하고, 또 그를 위해 장을 보는 시간, 다 먹고 치우는 시간까지 합하면 적어도 서 너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종종거리며 파김치가 되어봤자 다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음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은 이해심이 깊어야 한다.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저녁시간에서 1시간 반 내지는 두 시간가량 늦게 들어왔지만 뚝딱, 30분 만에 저녁 식탁을 차렸다. 뚝딱뚝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