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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r 27. 2022

침묵

오랫동안 제일 잘한 일은 침묵이었다.

먼 광장에서 그대들이 돌아올 때

절박하게 외로워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고 

그 후로 점점 침묵하는 법을 신중하게 배워  

낡은 거리를 떠난 깊은 강이 되었다. 

강변에는 낭떠러지 하나 수직으로 세우고

혼자 푸른 강물을 멋대로 껴안고 떠났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 잊었고 

그동안에 종착지는 이미 폐역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제일 잘했던 일은 침묵이었다. 

우리 사이에 툭 떨어지던 침묵의 무게조차 

아무 일도 없듯 잊었고 생은 점점 무거웠다. 

오래 우리를 들뜨게 했던 꽃이나 노래, 한 줄의 시도

그대와 내가 평행으로 걷는 삶을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강가의 퇴적층 속으로 

다만 홀씨 하나가 퍼드득 날아올랐던 날 

꽃들만 입을 벌리고 뭐라 뭐라 떠드는 봄날이었다.

외출했던 침묵이 꽃으로 피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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