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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29. 2021

그 시절 언니들에 대한 뭉툭한 슬픔 하나

- 영화 『하녀』를 다시 떠올리며


아카데미 수상이후 거론되는 영화들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주조연상을 수상한 쾌거는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윤여정 배우가 상을 탄 이후로 그가 등장했던 영화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중에서 오래전에 보았던, 전도연과 윤여정이 함께 나왔던 영화 『하녀』가 새삼 떠올랐다. 





한때 이 영화는 신문마다 대서특필될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영화의 변천사까지 거론하면서 그 시대상을 드러내고 있었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대중매체가 한껏 띄우기를 했다.

당시 세상을 잘 알지 못하던 중학교 애들까지 '하녀'가 무언지 너무 궁금해하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하는데 보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면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 만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엄마들 모임에서도 보고 싶은 영화가 '하녀'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정도 요란스럽게 떠들어서 그 영화를 안 보고 지나가면 큰일 나는 것인가 하는 편집증까지 생기려 했을 정도였다.  


영화 『하녀』가 상영될 당시  영화 『아이언 맨』도 상영했는데, 나는 결국  '아이언 맨'을 보러갔다. 도저히 『하녀』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다른 방편으로  『하녀』를 보았는데, 감독이 의도한 대로였겠지만 역시 불쾌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인연의 줄이었다



하녀라고 불리는 이름은 한때는 식모라고 불렸다. 그리고 파출부로, 또 지금은 도우미로 불린다. 그 이름이 불린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식모는 우리에겐 퍽 정겹고 따뜻한 이름이다.


당시는 너도나도 없이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다. 식모를 부린다고 해서 그다지 부자였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크게 편하자고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다 같이 없는 중에 다만 먹는 밥상에 숟가락 젓가락 하나만 더 놓아도 되는 때였다.  


그 시절 시골은 삶이 너무 강퍅하여 먹는 입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지금처럼 다산을 부르짖지 않아도 저절로 다산하던 시대였다. 어느 집이든 애들이 줄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밥 먹이기도 힘들어 아름아름해서 도시의 아는 집이 있으면 자식을 갖다 맡기고 허드렛일 좀 보아주고, 밥술이나 얻어먹고 그 집의 자식들과 함께 커나가다가 시집 장가까지 책임져주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도시에 아는 사람을 잡는 연줄이 대단한 권세로까지 여겨질 때였다. 자식 하나를 제대로 책임져줄 사람을 잡는 거였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지금처럼 출세하자고 연줄을 잡거나, 돈 벌자고 연줄을 잡는 배금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 연줄과는 전혀 다른 연줄, 즉 말 그대로 연줄인, 인연의 줄이었다.





자식들이 줄줄이 있던 우리 집에도 늘 끊임없이 식모가 있었다. 당시 큰고모가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 밥도 못먹고 사는 아이들을 열심히 우리 집으로 보냈다. 우리 집도 자식이 여섯인 집이라 먹고 살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고모는 시골 동네 아이들을 2명도 보내는 적이 있었다. 


어떤 때는 시골 동네 남자애들까지 보내면서 먹이고 입히라고 해서 아마 엄마는 시누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모 딴에는 시골에 있기 아까운 애들을 고르고 골라서 그래도 우리 집으로 보내면서 배도 곯지 않고 학교도 다니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언니들은 엄마가 선도 보게 하면서 시집까지 보내곤 했다. 그러면 또 다른 언니들이 오고 또 가고 오곤 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붙여 무슨 무슨 언니라고 불렀다. 방도 당연히 따로 없으니 우리는 그 언니들과 한 방에서 자고 먹고 공부까지 같이 하면서 시시덕거리며 살았다. 


언니들은 우리의 밥도 챙겨주고, 옷도 챙겨주고, 엄마의 역할을 대신했다. 오죽하면 우리 일을 가장 가까이서 챙겨주다 보니 실은 엄마의 곰살궂은 얼굴은 떠오르는 게 전혀 없지만, 그 언니들에게서 보다 더 많은 친숙한 장면이 떠오르는 아이러니도 빚어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식모 언니들의 나이도 그렇게 많았던 게 아니었을 듯한데, 어린 우리들의 치다꺼리를 해주어서 그런지 아주 어른으로 생각했었다. 하나같이 선량하고 부지런하고 순수했다.


지금 가장 기억나는 식모 언니로는 숙이 언니가 있다. 숙이 언니를 생각하면 친언니처럼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뜨끈한 무엇이 있다.

우리 집에서 일하던 종성이 아재와 무슨 섬싱을 가지지 않을까 늘 우리의 쑥덕거림을 받기도 했던 그러나 매우 진득하고 얌전한 식모 언니였다. 아직도 그 짙은 눈썹이 떠오른다. 잘 살고 있으리라.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처럼 그렇게 따뜻한 추억을 반추시키는 존재였다.


그 시절의 신산한 삶에서 참으로 특이한 공동체로 살았던 식모에 대한 향수는 지금의 파출부 문화 아니, 도우미 문화와 어찌 비견하랴.

아는 엄마가 도우미 아줌마를 쓰는데, 그 아줌마의 아들은 과학고를 다니고 있다 한다. 아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자니 도우미 노릇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다. 그 도우미를 쓰는 엄마는 참 배울 거 많은 도우미라고 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아들을 과학고에 보낸 엄마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들을 과학고에 보낸 비법을 잘 배우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요즘 도우미는 아예 프로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타워팰리스 도우미로 가려면 주인들이 요리 자격증이나 기타 자격증까지 요구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참 속으로 어이없이 웃긴다고 생각했다. 일을 깔끔하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자격증까지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내 생각을 초월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음식과 식탁을 공유했던 그 언니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옛날 식모 언니들을 생각한다. 정말 좋은 주인을 만나면 야간학교라도 다니면서 공부하고 그리고 진득하니 있다가 시집이라도 도시에서 가게 되니 그나마 자기 자식 중에서 제일 나은 자식, 제일 잘할 자식, 미리 싹수가 보이는 자식을 도시로 보내 시골스러운 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주길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까지 넣어서 도시로 온 셈이다.  

식모로 오는 언니들은 다 성실하고, 일 잘하고 바지런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의 식모 문화는 이렇게 시골과 그 곁에 작은 소도시들을 이어주는 고리였다. 영화 속 하녀가 마치 시대의 변천을 대변하는 것처럼 떠벌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 식모들이 그 주인의 노리개인 것처럼, 역겨운 대체물처럼 보이게 한다.

이렇게 우리의 따뜻한 추억과 인정의 문화를 제멋대로 폄훼시키는 하녀, 곧 식모에 대한 인식이 성문화와 연결된 충격 따위는 더 이상 없으면 좋겠다.  


어린 중학생들까지 우리의 공동체 살이의 한 방편이기도 했던 식모에 대해 모두 성적 노리개 정도로('하녀'의 영화 줄거리가 그랬다. 주인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복수를 한다는) 안다면 시골의 부모 입을 덜어주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서 이 악물고 살면서 공부도 하고, 또 주인집에서 너무 착하고 성실하니까 좋은 남자 골라서 시집까지 보내주던 그 시대의 그런 따뜻한 식모를 왜곡하고 변형시킬 것이다.


식모, 그렇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문화였다.

말 그대로 인연의 줄을 타고, 식문화의 한 공통분모를 나누던 그 식모, 우리의 특이한 공동체 문화였다.

따뜻한 밥상을 나누던 문화가, 요란스러운 성문화와 닿아서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와 우리 형제들에게는 식모 언니들은 모두 성실과 부지런함의 대명사였다.

엄마가 하지 못 했던 맛깔난 반찬까지 차려내고 같이 앉아 나누어 먹던, 음식을 공통분모로 공유했던, 식모, 그런 사람이었다.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상을 기회로 다시 여러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궁금증을 자아낼 것이다. 영화란 시대를 나타내는 한 거울일 수도 있겠지만, 인물의 이미지를 왜곡시켜서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수단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득 노파심에서 적어보았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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