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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an 18. 2021

삶에 지칠 때 이 식당에서 위로 음식 드실래요

- 영화 <카모메 식당>의 따뜻한 음식


수채화 같은 풍경을 가진 식당



영화『카모메 식당』은 소설가 무레 요코(むれようこ)의 소설 『카모메 식당』을 영화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핀란드다. 카모메는 우리말로 갈매기다. 핀란드의 바닷가에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나는 모습이 바다 건너 고향을 떠나온 여주인공의 모습에 오버랩되어 잠시 가슴이 싸아하다.


여주인공 사치에는 특별히 요리를 배웠다거나 엄청난 요리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를 잃고 그저 핀란드까지 왔을 뿐이다.

두 번째 나오는 여성 미도리도 그저 지구본 위에서 빙 돌리다가 손가락에 찍힌 곳. 핀란드로 오게 되었다.

세 번째 여성인 마사코도 공항에서 짐을 잃고 찾아다닐 동안 카모메 식당에 오게 되고 또 길고양이를 맡은 바람에 이곳에 머물게 된다.


모두들, 왜 이곳에 왔는지 더 이상은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인생에는 꼭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물들과 감정이입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일본 여인이 연 식당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던 주민들은 어느새 식당 의자에 앉게 된다



느린 시간의 식당에서 주먹밥을



거창한 요리도, 요리에 대한 어떤 욕심도 없는 사치에는 손님이 없는 카모메 식당을 열고, 그릇을 반짝반짝 닦으면서 매일 통유리 문안에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이 식당은 느리게 흘러간다. 오라는 곳이 아니라 오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사치에는 이들에게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죠'라고 말한다.



사치에가 주먹밥을 만드는 모습



사치에는 특히 주먹밥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주먹밥은 일본의 '소울 푸드'라고까지 한다. 사치에가 추구하는 요리는 결국 일본요리다.

이후 미도리가 식당 운영을 잘해보려고 핀란드의 음식인 순록 고기, 청어, 가재를 넣고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보지만 다 실패한다.


결국 식당은 일본 요리인 주먹밥(오니기리)이 주메뉴로 들어간다.

주먹밥을 하면서 가운데 하나 꾹 찔러 넣는 것이 우메보시(매실 장아찌)가 아닐까 싶다. 동경서 살 때 여기저기서 왜 그렇게 이 우메보시가 많이 보였던지. 마치 일본 음식의 상징처럼 있었다.

미도리가 식당 주 메뉴를 주먹밥으로 하는지 물었을 때, 사치에는 '주먹밥은 일본인에게 고향의 맛'이라고 대답한다. 


  

카모메 식당에 와서 주먹밥을 낯설어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다 찾아서 먹는다



 위로 음식으로 따뜻한 시간



카모메 식당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위로 음식(comfort food)에 속한다.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1977년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처음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전에는 ‘편안하거나 위로나 위안이 되는 음식. 어릴 적 추억이나 집에서 만든 음식 (보통 매우 달거나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있는)’이다.

살아가는 데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그럴 때 음식이야말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그들 여성이 왜 그렇게 먼 북국인 핀란드까지 왔는지, 그 '왜'에 대해서 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가길 바란다.



왼쪽부터 연어요리, 시나몬롤, 삽겹살요리 등



이제 연어요리와 튀김요리를 한다.

사치에는 일본은 매실과 연어가 상징한다고까지 말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경서 살 때 다시는 연어를 보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연어만 천지여서 질리도록 먹은 덕에 그 이후는 먹지도 않는다.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가르쳐준 동네 주민이 있다. 이전에는 카모메 식당 자리에서 식당을 했지만 망해서, 찾아가지 못한 커피 분쇄기를 찾기 위해 도둑이 된다.

그러나 사치에는 그 커피 머신을 준다.

이때 '커피 루왁'이란 주문을 배운다. 커피가 맛있어지길 바라는 주문이다. 모리사와 아키오가 쓴 일본 소설 <무지개 곶의 찻집>의 에쓰코 같은 생각이 든다. 에쓰코는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커피가 맛있어지길 바라면서,   '커피야 맛있어져라'라는 주문을 걸곤 했다.


커피와 어울리는 시나몬 롤을 굽는다. 갓 구워진 시나몬 롤의 향기와 어우러지는 커피 한 잔. 카모메 식당을 열었다면 달려가서 먹고 싶을 정도다.

고대 로마에서 시나몬은 거대한 흡혈박쥐가 지키는 늪지에서 자란다고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방부제로 사용했는데,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빼낸 공간에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었다. 중국에서 계피는 가장 오래된 향신료 중의 하나로 기원전 2700년의 약초학에 처음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카모메 식당'에서도 계피는 진정 효과와 고대의 주술적 효능이 함께 다 있을 듯하다. 그래야 삶에 지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테니까.

시나몬 롤 곁의 요리는 삼겹살을 데리야키 소스에 볶아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정말 맛있다. 달콤 짭짜름한 맛이 돼지고기의 포근함에 젖어 한 입 가득 그리움이 번져나갈 테니.



마을 사람들, 세 여인의 주방, 핀란드 시장


이제 세 여성이 함께 식당을 꾸린다. 사치에는 어떤 갈등도 없이 그냥 무덤덤히 다 받아준다.

핀란드에 오면 왜 편안해질까고 물어볼 때 일본 만화 광인 핀란드 청년이, 핀란드의 숲 때문이라고 말한다.


핀란드의 숲.

마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불러보는 듯하다.




문화를 알리는 상징


식당의 흰 국화는 일본 황실의 문장을 상징한다.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에 나온 그릇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는 편안한 여성들, 인생의 마지막은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여성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제 네 여성은 편안한 시간을 맞이한다. 각자 무엇 때문에 힘든지 알게 된 사람은 핀란드 여성에만 해당한다. 남편이 혼자의 생활을 해보겠다고 집을 나갔다가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온다.


미도리가 물어본다. 인생의 마지막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사치에는 대답한다.

음식이 인생의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갓차 맨(독수리 오 형제)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갓차 맨의 주제가 가사를 다 아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없다고, 사치에가 미도리를 서점에서 처음 만날 때 말한다.


영화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일본다운 영화다. 일본의 문화, 일본의 음식, 일본의 생각을 은연중에 시청자들은 받아들인다.

 우리도 저런 담담한 수채화 같은 영화 한 편 어디 없을까 하면서 보았다.





           -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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