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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20. 2021

우리 동네는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사람이 산다

- 양귀자 소설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김밥 총각

소설 속 주인공 같은 김밥 총각



내가 사는 동네는 양귀자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이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밥 아줌마보다 더 예술가적인 기질을 가진 김밥 총각이 있다.

양귀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김밥 아줌마와 빵떡모자 아저씨, 그리고 긴데요 씨다. 서술자는 앞의 두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김밥 아줌마는 김밥을 말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누가 김밥 마는 것만 봐도 집중력이 흩어진다고 화를 낸다. 그런데 맛도 맛이지만 터지는 것 하나 없이 김밥을 마는 솜씨가 하도 뛰어나서 예술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빵떡모자 아저씨는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파는 물건에 자부심이 대단다. 파는 물건에 대한 전문가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이 결혼을 한다는 특별한 날만 제외하곤 늘 같은 시간에 물건을 팔러 오고, 또 가장 좋은 물건만 판다. 그래서 빵떡모자 아저씨가 파는 물건은 마치 작품 같아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긴데요 씨는 빠르고 영악한 세상에서 느리지만 선량한 사람이다. 긴데요란 말은 경상도 말로 맞다는 의미다. 긴데요 씨는 늘 '제가 긴데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제가 맞습니다의 뜻이지만, 그 긴데요에 걸맞게 김대호 씨는 키도 길지만 느리다. 그러나 일이 빈틈없고 정확하다.


우리 동네에서 긴데요 씨 같은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이사온지 얼마 안 돼서 알 수 없지만, 양귀자의 소설 속 인물 같은 김밥 총각과 트럭 아저씨는 있다.



김밥 옆구리 한번 터지지 않는 



구옥을 사서 리모델링하는 동안 현장에 들르는 길목에 다행히도 김밥집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김밥이기도 하다. 시간에 쫓기면서 강남과 마포를 오가야 하니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김밥을 사 먹는 것이 편했다. 

처음에는 김밥집의 상호인 '참 바른 김밥'에 호기심이 생겨 들어갔다. 마치 내가 바른 김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바른 김밥 집의 계란말이 김밥과 돈가스 김밥을 즐겨 사먹는다



처음 김밥을 시켰는데 그렇게 크게 말아주는 김밥을 본 적이 없었다. 입을 있는 대로 벌려야 들어간다. 게다가 그렇게 큰 김밥인데도 한 번도 김밥 옆구리 터지는 일이 없었다. 김밥 속은 제 자리에 알맞게 돌돌 말려 들어가서 딱 정좌를 한 듯이 빈틈이 없었다. 게다가 그 맛이라니. 도저히 김밥이란 게 그냥 만만한 음식이 아닌 것을 비로소 깨닫게 하는 그런 김밥이었다. 


그러다가 자주 들르다 보니 김밥 총각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김밥이 맛이 없었거나 볼품이 없었다면 한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김밥 연구를 얼마나 했는지 전국을 다녔다고 했다. 김밥이 맛있다고 소문만 들어도 다녔고, 부산까지도 다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김밥이 맛있다는 글만 보아도 그곳을 다녀와서 김밥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큰 김밥을 터지지 않게 말수 있냐고 하니, 김밥 옆구리 터지는 일이 없도록 무수하게 연습을 했노라고 한다.


메뉴판만 보아도 얼마나 다양한 김밥을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동네로 이사 와서 생각이 나서 김밥을 사러 갈 때마다 메뉴는 점점 추가되고 있다. 이상하고 낯선 김밥 이름이 있으면 누군가 특별한 김밥을 주문하면 만들어보고 그 이름을 따서 또 김밥 이름을 짓곤 한다. 



예술가를 뛰어넘는 김밥의 프로 연구가



김밥 총각은 김밥의 프로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양귀자 소설 속의 김밥 아줌마가 예술가라고 한다면 김밥 총각은 예술가를 넘어서 김밥 프로 연구가 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김밥집 CEO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갈 때마다 혼자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어서 안쓰러워서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쓰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그렇게까지는 김밥을 팔아서 나오는 비용은 아니라고 한다. 

배달도 쏠쏠하게 들어와서 하고 싶지만 혼자 하는 가게다 보니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김밥은 하긴 국민음식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가게를 하는 사람들처럼 종업원을 두고 할 처지의 음식도 아닌 셈이다. 그래서 가면 늘 혼자 열심히 김밥을 말고 음식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김밥이 잘 안 나가겠다고 하면 힘들어도 그냥 꾸려나간다고 웃는다. 김밥 총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는다. 그리고 친절하다. 


'참 바른 김밥'  CEO, 허락을 받아 찍은 사진


양귀자 소설 속 김밥 아줌마가 김밥 마는 모습을 보면 집중력 흐려진다고 화를 내지만, 김밥 총각은 김밥 마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있어도 그냥 싱글벙글하다. 자신의 김밥 말이 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코로나로 근처 건물의 헬스장은 2달간 영업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김밥 가게는 싸가지고 가는 손님들이 있으니 그래도 낫지 않냐고 하는 비범한 낙관론까지 펼친다. 


우리 동네는 김밥 총각 같은 건강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상수역 4번 출구를 밤늦게 걸으면서 김밥 집을 한번 꼭 들여다본다. 어쩌다가 낮에 지나가는 일이 생기면 김밥을 주문한다. 

김밥을 먹을 때면 아이들과 나는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일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당인리발전소공원도 이제 개장해서 꽃천지니 갈 때 김밥 한 줄을 사들고 가면 바로 소풍이겠다. 


김밥 한 줄에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 가득하다. 

김밥에 온 정성을 들이고 건강하고 맛있는 김밥을 늘 연구하면서 싱글벙글 웃는 한 젊은이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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