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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Feb 01. 2021

애틋하고 다정한 삐뚤빼뚤 편지 한 통

-맞춤법 때문에 글쓰기가 힘드시다고요

맞춤법 때문에 부끄러워요



얼마 전 맞춤법이 어려워 글쓰기가 두렵고,  쓴 글도 남이 볼까 부끄럽다는 말을 어떤 시니어분께 들었다.

시험 치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이나, 주부들에게서 종종 듣던 하소연이다.

그럴 때면 맞춤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맞춤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자못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맞다.

그들이 사용하는 글자들은 맞춤법 개정 이전에 그들 나름대로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받아쓰기하며 배웠던 것들이다.


우리말은 1933년 일제 시대에 처음 맞춤법이 개정되었고, 다시 1988년에 두 번째로 맞춤법이 개정되었다.

맞춤법을 빈번하게 개정할 수는 없다. 대혼란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서적들, 간판, 상호, 등등, 맞춤법이 한번 개정되면 바뀌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 경제적인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일 것이다.




니무슨주변에고기묵건나콩나물무거라참기름이나마니쳐서무그라순이는시집안갈끼라하더라니는빨리장가안들어야건나돈조타그러나너거엄마는돈보다너가더조타한다.


압논벼는전에만하다뒷밧콩은전해만못하다병정갓던덕이돌아왔다니서울돈벌레갓다니까소우숨하더라.

니떠나고메칠안이서송아지낫다그녀석눈도큰게 잘자란다애비보다제에미를더달맛다고덜한다.


 우물집할머니하루알고갔다모두잘갓다한다장손이장가갓다색씨는너머마을곰보영감딸이다구장네탄실이시집간다신랑은읍의서기라더라앞집순이가어제저녁감자살마치마에가려들고왔더라순이는시집안갈끼라하더라니는빨리장가안들어야건나.



이 글은 이범선의 <표구된 휴지>라는 소설의 일부다. 맞춤법 공부를 하라고 국어 교과서에 실은 것은 아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엉망인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그저 순박하고 성실한 아들이 그 아버지가 부친 편지에 지게꾼으로 살아가면서 번 돈을 싸가지고 은행에 가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은행에 다닌 중역이 이 편지를 집어서 표구를 해서 걸어놓고 보는 이야기다.



이런 글을 보면서 누가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못하냐고 질타를 하며, 무시를 하겠는가. 오히려 따뜻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시험 보는 일이 아니면 좀 틀리면 애교라도 부린다고 봐주면 어디가 덧나는가(국어를 가르치면서 이런 말을 하면 사실 안되는데, 그래도 해본다)


 

상표들은 왜 맞춤법과 다른가



'오뚝이'로 표준어가 된  '오뚜기' 에 대해 질문이 들어올 때가 있다. 오뚜기 케첩에는 왜 오뚜기인가. 오뚜기 회사가 맞춤법도 모르냐는 것이다.

1988년 두 번째의 맞춤법 개정 이전에는 표준어가 오뚜기였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그러니 오뚜기 회사는 그 상표를 썼을 것이고, 애석하게도 맞춤법이 개정되면서 오뚝이로 바뀌었지만 상표로 이미 사용되고 있어서 아마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시험에 많이 나오는 표기 중에 '설렘'이 있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중에 '설레임'이 있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다 보니 시험에 나오기만 하면 이 문제가 틀리고 만다.

아무리 설렘이라고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설레임으로만 기억한다. 가르치는 것도 일상적으로 대하는 것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맞춤법이 어렵다는 사람들도 1988년 이전의 맞춤법으로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맞춤법이 뇌리에 박혀 있으니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설레임과 오뚜기



우리가 잘 먹는 자장면이 있다. 그런데 이 자장면이 이전에는 짜장면으로 표기되어 그 단어에 익숙해져 있다.

자장면하니까 마치 졸면서 먹어야 하는 느낌이 들어 영 별로다. 그런데 자장으로 한번 바꾸더니 다시 짜장과 복수 표준어로 쓰라고 하지만, 짜장면하니 훨씬 엑센트가 가해지면서 입맛이 팍 돈다. 더구나 짜장면 곱빼기요, 하고 소리치고 나면 벌써 배가 부른 느낌이 들 정도로 어휘의 힘은 막강하다.  



외래어 표기는 더욱 우왕좌왕



우리말 표기법에도 모자라 외래어 표기까지 물밀듯 밀어닥치고 있으니 신세대가 아니고서는 따라잡기도 힘들다.

초등학교 시절의 받아쓰기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받아쓰기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필수 시험이다. 선생님께서 우리말만 받아쓰기를 부르다가 갑자기 외래어 '버스'를 불렀다.

나는 그때 '뻐스'라고 썼다가 그 문제가 틀렸다.

그런데 나는 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받아쓰기가 맞다고 계속 우겼다. 선생님께 정류장에 가보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하도 우기니 선생님께서 정말로 정류장에 다녀오시더니, '뻐스 정류장'으로 쓰여있더라고 했다. 그렇지만 시험이니 내가 틀렸다고 했고, 그때 나는 시험용 맞춤법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말하자면 맞춤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 사람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도 초등학교부터 받아쓰기를 죽으라고 했던 그 모든 이들이 맞춤법이 개정될 때마다 그 뒤의 세대에게 무식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더구나 그 세대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과는 다른 맞춤법으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편지 하나를 쓰거나, 글 한 줄 쓸 때도 자식 눈치를 슬슬 봐야 할 정도로 맞춤법으로도 세대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이전 세대들은 지레 주눅이 든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글 쓰는 데서 멀어진다. 아이들조차 우리 엄마가 글도 틀려요,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그 사소한(?) 일로 부모를 업신여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맞춤법은 쉽지 않다. 띄어쓰기, 받침의 정확한 표기, 소리 나는 현상과 글을 쓰는 데서 벌어지는 그 간격들이 저마다 달라 복잡하게 느껴지는 일이 허다하다.

나이 많은 분들이 쓴 편지들을 보면 무슨 고전소설의 한 페이지를 받는 것처럼 맞춤법이 없이 그대로 소리 나는 대로 글이 써져 있다. 마치 <표구된 휴지>처럼.



맞춤법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안하무인 글



인생사가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여서 그러잖아도 신세대들의 눈칫밥에 주눅이 들고 모르는 게 많아 그걸 다 배우기에는 기력도 딸리고, 적응도 힘든 세대가 더 이상 맞춤법으로 기가 죽어 글에서 멀어지고, 책에서 멀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오래전에 교과서로 배우고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은 이쪽의 사정을 알 길도 없고, 그때 배운 대로 쓴다.

그러니 맞춤법을 가지고 외국 이민자들을 비웃거나, 위 세대를 비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혹자는 요즘 컴퓨터에 글을 쓸 때 일일이 맞춤법도 맞게 작성되는데, 굳이 맞춤법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쓸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 글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그리고 글 몇 줄 써자고 일일이 한글 맞춤법 검사기에 대입하며 글을 쓴다면 그 번거로운 일 때문에 정말 쓰고 싶고, 쓰려고 하는 글이 막히기 일쑤일 것이다.

더군다나 한글 맞춤법 교정기조차 글 쓰려는 사람의 의도와 맥락을 읽지 못하므로 일일이 알맞은 대응을 못한다.


맞춤법은 그저 수능을 볼 때, 내신 시험을 볼 때, 그리고 공문서를 작성할 때 등등, 규정대로 지키면 되지 않을까. 웃어른이나 외국 생활자들이 좀 맞지 않게 쓰더라도 내용상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애교로 봐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꾸 주눅 들지 않고 글 쓰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불쌍한 백성이 쓰려고 해도 쓸 글자가 없어서' 만든다고 했다. 즉 글자를 잘 못쓰는 사람들이 편히 쓰게 한 것이다. '세종어제'에 보면 맞춤법 맞추라는 호령은 없다.


이제는 맞춤법이 무서워 글을 쓰지 못하다는 말은 듣지 않았으면 한다. 바뀔 때마다 그 모든 것을 배워야 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쉽고 빨리 변한다. 그럴 때마다 개인의 의지는 쉽게 절망하고 꺾일 것이다.


맞춤법 틀리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글 한 줄이 다른 사람을 상처 내고 무시하며, 어쭙잖은 글로 안하무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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