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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Feb 28. 2021

흘러간 시집이 뜻밖에  호사스러운 옷을 입다

- 공동우물가에 모였던 젊은 여인들과 아버지에게 바친 시집이었다

지나간 추억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분에게 감사드리며



'그리운 건 너만이 아니다' https://brunch.co.kr/@yhchoi90rw/459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제 시집이 요즘 뜻밖의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영문과에 재직하고 계시는 교수님이 제 시집을 브런치에 소개해 주시고 제 시도 영역해주셔서 얼마나 감동인지 모릅니다. 사실 저도 시집을 내고는 사는 게 바빠서 잊고 살던 일입니다.


게다가 제 시 중에서 <그리운 것은 언제나 평행이었다>를 먼저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시집을 낼 당시 그 제목으로 꼭 붙이고 싶다고 출판사에 말했는데, 출판사에서 다른 시인 <그리운 건 너만이 아니다>를 제목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제가 시집의 제목으로 붙이고 싶었던 시를 먼저 언급해서 놀랍고 반갑고 더욱 뜻밖입니다.


요즘은 강산이 변하는데 3년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그렇다면 강산이 3번 변할 동안의 시간이 지난 시집을 교수님이 다시 들추어주셔서 제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위로를 받는지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격려와 용기와 힘을 얻는데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껴 정말 삶이 다정하고 행복합니다.



임종 직전의 아버지께 드린 선물



시집을 낼 당시 출판사에서 내자고 한 책은 『맛있는 문학』입니다. 음식으로 책을 읽었던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고 내고 싶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약하러 온 당일에 관계자분이 뜬금없이 시집을 먼저 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 올리던 시들을 봤는데 꼭 내고 싶다고 해서, 잠시 망설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시집 한 권을 선물하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랴 사랴 냈던 것입니다.


시집을 내고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 빨리 갖다드려야 하는데 시집이 발간되자 바로 판매가 되어버려 저도 좀 있다 받았으니, 시집이 나오고 아버지는 불과 2주도 못본채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에 선물은 드린 셈입니다. 어쩌면 시집을 간호사에게 읽어달라시면서 단 며칠이라도 임종을 늦추었을지, 아니면 시집을 볼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기다렸을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늘 노래를 부르고, 아침마다 전축을 틀어서 우리를 깨우던 분이셨습니다. 감성이 너무 많은 분이라 시집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는 일도 넘치는데 동시에 책 두 권을 내느라고 너무 힘들어서 그 다음에 글도 쓰기 싫어져서 거의 10년을 모든 것이 고갈된 채 지냈습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열심히 하라는 뜻밖의 격려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낡은 집으로 들어가던 젊은 그녀들에게



시집 속의 시들은, 시집 서문에도 밝혔지만 제가 살던 동네의 공동우물가에 모여들던 젊은 여인들이 주인공입니다.  

저녁이면 하나밖에 없던 동네 우물가로 골목의 젊은 여인들이 쌀을 씻거나, 채소를 씻으러 모여들었습니다.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에 쌀과 보리를 얹어서 엄마 심부름으로 씻으러 가는 즐거움은 사실은 제가 즐기던 일이었습니다.


그  저녁시간 무렵이면 동네의 거의 대부분의 젊은 여인들은 다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결코 혼자인 적은 없습니다. 모두들 기다리던 시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우물가는 젊은 여인들의 마을 소식통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푸는 장이기도 하고, 온갖 사연이 넘쳐나던 곳이었습니다.


젊었던 시절의 꽃 같은 연애 이야기부터 슬픈 사랑, 비극적인 사랑, 아름다웠을 사랑, 아픈 이별, 마음에 담아둔 사랑,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숨들이 꽃잎처럼 날아다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문디 가시나야. 지난 이야기를 하면 머하노. 다 잊어 뿌리라 마아."

"아이고, 우짜노."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던 그 시간들. 국민학교 시절의 알지 못했던 그 나이에도 들으면 왠지 참 서럽고 슬프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촌스런 바가지에 쌀을 담아 그 얘기를 들으려고 나갔습니다.


무거워서 퍼 올리지도 못하는 두레박을 동네 여인들이 돌아가면서 한 바가지씩 퍼주면 나는 쌀을 부걱부걱 씻었습니다. 한 바가지씩 물을 퍼서 주황색 바가지에 부어줄 때면 그 촌스러운 바가지도 그때는 다홍빛 저녁노을처럼 환했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환하고 그리웠다



여인들은 다들 저녁밥을 짓기 위해 웃음과 그리움들을 거둔 채 낡고 어둡고 컴컴한 골목 안 집의 일상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어두운 낡은 골목들에서 나와서 또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아련한 눈짓을 건넸습니다.


아, 그들도 한때는 그렇게 아름답고 환한 시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 저켠에 묻어버린 그리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들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물처럼 차오르던 느낌에 대해서 하나씩 시를 써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의 마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녀들은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되었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순간이나 시간이던지 모두 행복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누구나 참으로 찬란했고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쓴 시들.

낡고 오래된 시집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는 젊은 여인들로 살아있는 그녀들입니다.

골목 안 집에서 사니 그 추억들이 더 새록새록 합니다.


그런 추억들을 다시 들추어주시고 기억하게 해 주시는 교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더군다나 처음에 제가 교수님 브런치 구독자도 아니었는데 시를 소개해주셔서 더욱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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