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Jan 26. 2021

꽃집이 있는 풍경

- 꽃집에서 누가 꽃을 사나 했다


그 꽃집에서 산 꽃다발



오랫동안 그 가게는 비어 있었다. 그전에 어떤 가게가 있었던지도 사실 알지 못했다.

이사 오기 전부터 비어있던 곳인지, 아님 그 이후 인지도 생각이 안 났다.  

3평 정도 될까. 아주 작은 가게여서 그런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텅 빈 공간을 보면서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궁금한 정도였다.


그런 어느 날 그 자리에 꽃집이 생겼다.

꽃집이 문득 생긴 것을 본 순간 참 생뚱맞은 생각부터 들었다.


'요즘 누가 꽃을 사나.'  


꽃집으로 바뀐 건 불과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상수역 4번 출구를 나와서 쭉 걸어오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막 들어서기 직전에 있다.

그러나 한밤중에도 불을 은은하게 켜놔서 마치 여성 안심이 기능을 하는 풍경이다. 골목을 들어서기 직전에 꽃집 안을 흘깃 쳐다본다. 그러면 알 수 없는 향기가 유리문 밖으로 흐르는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누가 꽃을 산다고',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한밤중에 퇴근해서 오니 한 번도 꽃집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더욱 안쓰러워서  '누가 꽃을 산다고 꽃집을 열었을까' 하면서 마음 한쪽이 아련해진다.  


그 길은 늘 번화했다. 홍대 앞이고, 상상마당과 쭉 이어지고, 합정으로 걸어갈 수도 있는 길이어서 한밤중에도 젊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쭉 이어진 술집과 음식점들은 자정이 훨씬 넘어서도 시끌벅적했다. 그 끝에 꽃집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생기자 그 길에 발길이 끊겼다. 그리고 꽃집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얼마전 내 생일에 아이들이 치즈케이크와 꽃다발을 사왔다.


진짜 엉뚱하게도 아이들이 내 생일에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무슨 꽃다발, 이라고 묻자 엄마가 그동안 셋 키운다고 고생했고, 마지막으로 이제 아들을 행시까지 마치게 했으니 엄마가 꽃다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 평생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받아본 적도 없는 꽃다발을 엉겁결에 받아 들면서 속으로는, '이거 비쌀 텐데, 계속 살 수 있는 화분으로 사 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고맙다, 근데 이거 어디서 샀냐"라고 대뜸 물었다.


"아, 집 들어오는 그 꽃집에서 샀어요."라고 아이가 말했다.

'아하, 그 꽃집에서 꽃을 사긴 하는구나.'

그리고 우리도 그 꽃집에서 꽃을 사는 일이 생기는구나. 그제야 왜 그 꽃집이 계속 그렇게 버티고 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그렇게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 꽃집을 누군가는 이렇게 꽃을 사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 꽃집에서 꽃다발을 받았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그만큼 작은 꽃집이어서 내가 혼자 걱정을 너무 많이 했던 거 같다. 오지랖도 이쯤 되면 병이다.


밤의 꽃집, 낮의 꽃집


낮에 모처럼 오다가 보니 간판이 있길래 꽃집 안을 기웃거렸지만 역시 낮에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간판이 나와 있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꽃다발이라고 하면 먼저 졸업식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졸업식에는 꽃들이 없었을 것이다. 각자 집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졸업식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서 보니 별반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졸업식이라고 하면 그래도 그렇게 다니기 싫은 학교였지만 조금은 눈물 콧물 짜지 않았던가. 아니면 무사히 졸업해서 즐거워서 웃기라도 하던지.


그런데 아이들은 전부 졸업식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꽃다발도 잃었다.

꽃다발을 한 아름 받으면서 그동안 겪은 학교 생활이 얼마나 향기로웠던 것인지,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한 순간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다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 향기처럼 아름답게 시작할 순간을 잃어버린 셈이다.


하긴 한동안 윤석열 검찰총장 추미애 전 장관이 대결할때 화환들이 즐비했, 그래, 꽃들이나 열심히들 팔아주네, 하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왜 그렇게 집으로 꺾어지는 그 길의 꽃집을 쳐다보면서 걱정을 했는지 알 것만 같다. 코로나로 사라진 졸업식, 입학식의 꽃다발. 학교앞의 꽃다발 사라던 호객행위조차 문득 그리울 지경이다.  그리고 팍팍해진 마음에 누가 꽃다발을 사서 안고 갈 건지. 혼자서 별별 걱정을 다한 셈이다.

 

그래도 다른 가게보다 꽃집이 골목 풍경의 하나로 정물처럼 놓여있어서 훨씬 좋다.

올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전에 코로나가 끝나서 꽃집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면서 아름답고 향기 좋은 꽃을 사들고 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는 날에는 청춘의 교향시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