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한 식탁

-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

by 이지현

크리스마스날의 선량한 음식



크리스마스. 아무리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아도 이날만은 멋진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늘 설렌다.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에는 어린 아들이 아프자 험한 눈 속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구해왔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서른 살 어른이 나온다. 산수유 열매는 해열제였고 시 속의 아이는 병이 나았다. 바로 그날이 예수의 사랑처럼 큰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든 크리스마스 날이었다고 화자는 굳게 믿는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스크루지라는 고약한 구두쇠이자 수전노가 크리스마스 전날 회개하면서 착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날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 날이다. 칠면조 고기는 아니더라도 오븐에 넣고 기름기 쪽 뺀 치킨이라도 식구들끼리 뜯어먹고 있는 크리스마스 저녁은 들뜨고 행복한 순간이다. 어두운 밤에 산타클로스가 선물 넣을 곳을 찾지 못할까 봐 크리스마스트리에 별 같은 작은 램프를 밤새 반짝 켜놓고, 미리 달아놓은 커다란 양말에 들어있을 선물을 무작정 기다려보는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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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언니 마거릿(메그), 조세핀(조), 엘리자베스(베스), 막내 에이미는 크리스마스 날, 가난한 집이라서 큰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선물을 기다린다. 그리고 엄마에게서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 받는다.

크리스마스 날 받고 싶은 물건을 통계 낸 것을 보니 인형, 게임, 장난감 등의 순서였다. 그런데 작은 아씨들은 표지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책을 선물 받아도 엄마에게 감사하고, 아침마다 그 책을 읽기로 약속한다.


작은 아씨들은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큰언니 베스가 구운 먹음직스러운 빵을 먹으려고 하다가 그 빵마저 더 가난한 아이들에게 갖다 준다. 결국 작은 아씨들은 정작 크리스마스 날은 아침을 굶는다. 그런데도 ‘아무것을 먹지 않아도 더없이 행복한 아침식사였다.’ 고 생각한다. 막내인 에이미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크림과 머핀’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작은 아씨들도 아이들이었기에 어떤 것보다도 먹는 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보다는 주는 쪽을 택한 작은 아씨들.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주는 것처럼 선량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돈이 없이 너무 가난한 부부가 고민 끝에 상대방에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씩 선물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칼을 팔아 시곗줄을 선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시곗줄을 팔아 머리빗을 선물한다.

그러나 이미 시계와 머리칼을 팔아버린 두 사람에게는 당장 필요 없는 선물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불행했을까. 아마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을 알게 된 부부였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도 크리스마스 날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아침 식사를 더 가난한 아이들에게 준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웃의 부자 할아버지 로렌스 씨가 보내준 멋진 식탁을 선물 받는다. 잘 차려진 진수성찬은 작은 아씨들이 잘 살던 이래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분홍색, 하얀색 아이스크림이 두 접시, 케이크와 과일, 눈이 돌아갈 만큼 맛있는 프랑스 봉봉과자, 그리고 탁자 가운데에는 온실에서 자란 꽃으로 만든 근사한 꽃다발이 네 개나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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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의 크리스마스 날에 작은 아씨들은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전쟁 때문에 군인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이다.

이때 작은 아씨들은 속을 채워 노릇노릇하게 굽고 멋지게 장식을 한 살찐 칠면조와 건포도 푸딩을 먹는다. 입에서 살살 녹는 젤리는 또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에이미는 꿀통 속에 빠진 파리처럼 핥아댈 정도다.

크리스마스날에 이렇게 특별한 음식들이 작품의 곳곳에 차려진다. 행복한 희망을 가지기에 꼭 맞는 음식들이다.



삶의 등대 같은 음식 만들기 수행



엄마가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엄마는 어떤 때는 아픈 것도 꾹 참고, 힘든 것도 꾹 참고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엄마가 정말 식사를 준비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는 그냥 사 먹으면 될까. 짜장면이나 피자, 치킨을 배달해서 먹으면 된다?

이 책의 작은 아씨들은 엄마 대신 각자 식사를 차리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 아침 식사로 차와 눌어붙은 오믈렛, 그리고 너무 오래 구운 비스킷을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메그가 음식 만들기에 실패하자, 생강 빵과 당밀 사탕밖에 만들지 못하는 조가 큰소리치며 이웃집 로리에게까지 점심식사 초대장을 보낸다. 조는 점심 식사로는 너무 거창한 재료인 아스파라거스와 바다 가재를 준비한다. 조의 식사계획은 불길한 예감대로 빵은 다 타버리고, 바다 가재는 양이 너무 적어서 내놓을 수조차 없고, 크림은 너무 시큼하고, 음식에는 설탕 대신 소금을 뿌려, 먹는 사람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 소동을 통해 작은 아씨들이 중요한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만드는 음식의 그 과정을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도 참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듯이 요리를 배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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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둘째인 조는 매우 적극적이고 쾌활하면서도 의지가 굳은 인물이다. 만약에 조가 음식을 잘하는 사람으로 설정되었다면 이 작품은 여성스러운 것을 강조하기만 하는 김 빠진 맥주 같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음식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작은 아씨들을 그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음식을 못한다.

그러나 하려고 노력하는 작은 아씨들을 그린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삶을 헤쳐 나가는 작은 아씨들이 등장하므로 우리는 인물들에게서 생생한 매력을 맛본다.


라임은 열매가 익기 전에 수확하고 즙액이 많으며 매우 시고 향기가 있어 레몬과 같이 사용한다. 라임은 실제로 너무 즙이 나오지 않아 라임주스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실망하게 된다.

에이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좋아한다는 표시로 설탕에 절인 라임을 서로 교환한다. 에이미는 이미 12개나 라임을 받아서 친구들에게 진 빚이 많다. 결국 메그에게 돈을 받아서 라임을 사 학교에 가져간다.


학교에서 라임을 주고받는 것은 교칙에 어긋나지만 금지된 장난을 즐기는 건 사실 더 재미있고 짜릿하다. 에이미도 교칙을 어기고 라임을 가져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아이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라이벌인 제니가 고자질해서 선생님께 들켜 손바닥을 맞고, 라임은 창밖으로 버려지고, 교단 위에 서 있는 벌칙을 받는다.

이 일로 엄마는 에이미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킨다. 엄마는 에이미가 교칙을 어긴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여자아이를 때리는 교육 방법은 자신의 생각엔 어긋난다면서 전학을 시키는 것이다.


엄마의 확고한 교육관이 작은 아씨들을 씩씩하고 의지가 굳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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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의 식탁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인물이 아니라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역할을 한다. 네 아이들에게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 아니라 하루의 식탁을 묵묵히 맡긴 것처럼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가르친다.


동화 속에서 음식은 하나의 사소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삶의 방향을 일깨워주는 맛으로 작은 아씨들의 마음속에 하나씩 자리 잡는다.

작은 아씨들은 실제로 작은 아씨들이 아니다. 작다는 의미에는 귀엽다, 앙증맞다란 의미가 들어있다. 흔히 옛날이야기 속에는 세 형제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네 자매가 나온다. 성경에서는 4라는 숫자는 세상의 수로 동서남북의 세상 전체를 가리키고, 세계의 질서와 완전성을 나타낸다. 네 명의 작은 아씨들도 완전한 삶을 이루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수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남북전쟁으로 인해 비극적인 전쟁터로 떠나고 남은 다섯 여성들은 의지를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간다. 네 자매가 잔혹하고 비참한 전쟁의 이미지와 대비되어, 각자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면서 명랑함과 친절, 양심과 효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매우 따뜻하고 아름답다.

거친 전쟁과 자칫 연약해 보이는 여성의 대비는 더욱더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성을 말하려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인간은 삶의 불행을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견뎌내 긍정적인 태도로 그 상황을 최대한 이용한다.’고 말했다.


어떤 불행이나 가난으로 인해 비참해지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상실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가장인 아버지가 전쟁터로 떠나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꿈을 잃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힘을 잃지 않은 작은 아씨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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