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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an 03. 2023

레몬빛 모과가 있는 풍경

- 양귀자, 『부엌신』

저자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저자가 식당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소설가가 음식도 잘하나 보다고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이 식당을 차린 사연을 쓴 책이『부엌신』입니다.


이 책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란 상호의 식당 개업까지의 경험, 사연, 식당 경영에 필요한 것들과 마음가짐을 쓰고 있습니다. 식당 개업스토리인 이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통유리 댄 카페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커피 한 잔 팔거니 눙치면서, 오히려 내가 통유리 밖에 펼쳐지는 사계절 경치를 공짜로 실컷 보며 커피를 마시리란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니라 저자도 했던 모양으로 내 소박한 소망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꿈꾸는 풍경 중 하나에 불과한 것임을 금세 눈치챕니다.


저자는 어머니의 밥상차림을 보고 자란 과정에서 이 식당을 용기 있게 꿈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김치 한 보시기 담아내어도 김치대궁과 잎사귀가 어울리게 담아내고, 반찬 한 가지라도 담아내는 정성을 더 친 사람이었다니. 식당 간판의 이름도 어머니의 이름과 마음을 걸고 차린 식당이라니 누가 그 정성을 흉내라도 내겠습니까. 저자가 어머니나 주방 요리사를 보면서 깨달은 것도 접시에 음식을 잘 차려내는 사람이 음식도 잘하더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집에 모시는 신도 많습니다. 대청에 성주신, 안방에 삼신, 부엌에 조왕신, 변소에 측신, 대문에 수문장신, 마당에 노적지신이 있습니다. 조왕신을 모시기 위해서 가마솥이 걸린 부뚜막 곁에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아침마다 떠놓습니다. 나도 어릴 때 부뚜막에는 쌀이 담긴 놋쇠 주발에 양초가 꽂혀 있었고, 그 곁에는 흰 사기사발에 우물물도 떠놓은 광경을 늘 보았습니다. 그 광경만으로도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외경심을 가졌었습니다.

우리의 민간신앙에서 대청의 성주신과 안방의 삼신 다음이 부엌의 조왕신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엌신은 우리의 식문화를 관장하던 주요 신이었습니다. 조왕할머니, 조왕대감으로 불리면서.


저자가 서양식 요릿집을 운영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스테이크 집, 파스타 집, 피자집을 했더라면 소박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목소리로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를 열심히 말하는 저자의 작품에 대한 인상마저 달라질 뻔했습니다.


저자는 식당의 성공요인으로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중요하다고 적습니다. 고심한 부분은 식단 가격으로 질 좋은 식탁을 어떻게 누구나 즐기게 하느냐로 고민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혹자는 저자가 이름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도 먹고살아야 하고, 작가라면 다 가난해야 하고 물질과 멀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입니다.


저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다고 하니, 사진으로 보아도 레몬빛의 모과가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을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습니다. 그 곁에 가을이면 낙엽이 뚝뚝 떨어져 툭 떨어지는 우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겠습니다. 그 뒤로는 장독대를 세워두고.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구입하는 백자그릇에 새겨진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 이란 새김은 상호이기보다는 시 한 구절 같습니다. 음식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차려 먹는 식탁이라도 플라스틱 통에 담긴 채로 먹거나, 프라이팬을 올린 채로 먹는 것은 사절입니다. 음식은 남을 대접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는 가장 섬세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먹어야 하는 반찬이라면 그런대로 좀 예쁘게 접시에 덜어서, 어제 끓인 국이라면 따끈하게 데워서, 국수 한 그릇도 고명을 얹어서 먹는 맛에 길들인다면 혼자 먹는 식탁도 그렇게 쓸쓸하지 않을 것입니다.




밥 짓는 일이나 글 짓는 일이나 모두 한 마음입니다.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 기구들이 구비되고 사람들의 호흡이 맞아야 하듯이, 글 짓는 일도 그 구성이 제대로 맞물려야 좋은 글이 나옵니다.


지금 부엌은 남녀 구별이 없이 개방된 공간입니다. 부엌이야 말로 사람을 존중하고 존엄하게 대할 수 있는 가장 첫 공간입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부엌과 우물, 장독대에다 대고 절했고, 마을에서 해마다 동제를 지낼 때면 집집의 부엌마다 돌아가면서 절을 했습니다. 동네 우물도 고사를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먼저 우물 주변과 안을 깨끗이 쓸고 새물이 올라오게 한 후 지붕을 씌우고 금줄을 우물 둘레에 쳤습니다. 그럴 때는 며칠 동네 우물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만큼 먹는 것을 신성시했고, 부엌은 소우주였습니다.


부엌에 서는 일만은 행복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음식에 이미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양념처럼 스며들어서 음식의 맛이 결정됩니다. 누군가 내놓는 음식이 맛있다면 그건 대접하는 그 사람의 행복한 마음이 햇살처럼 버무려진 것입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의 요리 축제의 특별메뉴판을 보고 한번 따라 해 보고 싶습니다.


# 다림장 소스를 얹은 달팽이요리

가늘게 썬 감자채를 짧은 시간에 기름에 튀긴 다음 일일이 구멍을 뚫어 만든 감자바구니에 달팽이 요리를 담고 시소 잎과 장미꽃잎 등으로 장식한다.


# 오월의 식사

하얀 무를 사각으로 자른 다음 일일이 속을 파내고, 파슬리를 파릇파릇하게 다져서 무 화분에 잔디로 깔고, 마악 봉오리를 펼치려는 꽃 한 송이를 심어서, 접시의 한가운데 싱그러운 꽃밭을 만든다.



양귀자, 『부엌신』, 살림,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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