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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n 05. 2022

불가사의한 감정의 곡예

- 『성녀의 구제』,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의 제4탄 작품이다. 물리학자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시리즈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이론적으로 나올 수 없는 추리를 역발상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추리물이면서도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목을 처음 대할 때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인물을 위한 범죄의 은폐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는데, 결말에 가서는 인간의 목숨을 유예시킨 범죄자의 상황을 반어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알고, 제목의 특이함에 무릎을 친다.      


이 작품에는 물과 비소, 커피의 삼각관계가 나온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여성을 단순히 생식의 존재로만 파악하는 한 인간의 치명적인 오류가 깔려 있다.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인 ‘허수해’(虛數解,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라는 불가사의한 트릭에 도전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교수의 풀이는 결국은 완전 범죄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생각하게 한다.

 

허수해가 우리의 삶에서는 과연 존재할까. 수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공식이 아닌, 인간의 감정이란 허점을 늘 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사이의 교류가 멈추지 않는 한 은연중에 모든 증거물이 수합되지 않고 그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완전한 범죄는 그래서 성립하기 쉽지 않다는 결론이기도 하다.


 


      

용의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계속 수사를 해나가는 형사 구사나기에 의해 결국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감쪽같을 수 있었던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범죄는 증거물을 어떤 것도 버리지 않았을 때 성립한다는 수사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사용된 비소는 그 자체로는 독성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화합물이 될 때 독성을 보인다. 여기서도 아비산은 쥐를 잡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자살하거나 살해되는 데 사용된다.      


사실 이 비소는 중금속이 오염된 토양이나 해수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논문에서 토양에 오염된 농작물이나 오염된 해수에서 채취한 해산물은 세척이나 불림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성분이 줄어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은연중에 비소를 어느 정도 섭취하고 있다.      


독으로 인한 살해시도는 문학 속에도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독은 문학 속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온다. 말 그대로 살해도구로 나오든지, 아니면 미혼약으로 나오든지 한다.


햄릿에서 독은 사건을 전개하는 주요 소재다.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잠든 왕의 귀에 부어 왕을 독살하는 데에 이용되는 독약은 주목나무(Taxus cuspidate) 열매의 씨에서 추출한 것이다. 그리고 레어티스의 칼에 독까지 바르고, 햄릿의 술잔에까지 독을 탄다. 햄릿은 죽기 전에 독 묻은 칼로 클로디어스를 찔러서 결국 응징한다. 독에 의해 사건의 진행이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예이다.      


고전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인 독들도 나오는데, 약을 먹어 마음이 바뀌게 하거나, 망심단을 먹여 사고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게 하거나, 소미단을 먹어 상대방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독약이기보다는 미혼약으로 사용되는 경우지만 문학의 한 장치로 차용되고 실제로 이런 약의 존재는 문학의 비현실성을 돋보이게 한다.

유명한 <사씨남정기>에서는 사 씨에게 낙태약을 먹이거나, <정을선전> 등에서는 음식에 독약을 넣는다.   


여성 범죄는 특히 다른 범죄에 비해서 약물 사용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마 신체적으로 약을 사용하기가 쉬워서겠지만 독약 사용은 금세 그 사인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밀한 계획이 없는 한 오히려 더 위험한 전략이 된다.    



  

죽은 요시다카의 아내 아야네는 1년 전부터 살해를 계획했고, 어쩌면 요시다카의 행동에 의해 그 죽음은 영영 유예기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만일에 요시다카가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만 이용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목숨은 유예되었겠지만, 독살 사건은 치밀한 계획 하에서 이루어지고 지능범죄가 된다.

알리바이가 확실한 용의자와 1년 전의 계획된 범죄라는 조건이 딱 맞으면서 범죄의 실마리는 영영 미궁으로 빠질 수 있었지만, 결국 인간관계의 끈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리고 예리한 관찰은 범죄를 특정 짓게 한다. 여형사인 히로미가 처음 현장을 방문해서 샴페인 잔이 제 자리에 있지 않은 상황을 보고 사람의 심리를 판단해내는 과정도 일견 맞다. 우리도 대부분 집을 비울 상황에서는 물건을 제 자리에 정리해두고 가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허수해'라는 불가사의한 트릭에 도전하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용의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형사 구사나기, 완전 범죄를 꾀하는 용의자의 이야기가 작가의 작품들에 감성적으로 깔리면서 애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정수기에 넣은 아비산과 꽃에 물 주기, 생수로 타는 커피 등, 결국 독은 늘 이용하는 기호식품인 커피와 연결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아비산이 검출되었다는 부분에서 ‘그 독 카레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 말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의 독 카레 사건은 당시 마을 주민이 먹는 카레에 아비산을 타서 사망자도 나온 유명 사건이다. 또한 소설 내용 중에서 카레에 타는 가람마살라처럼 커피에 타는 향신료가 있지 않았을까요란 대화도 나온다. 아무래도 일본 사회에서 카레의 독극물 사건은 그 충격이 컸던 듯싶다.

도무지 범죄의 형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구구한 억측이 나오게 된다. 아비산은 이처럼 의외로 살해 도구로 사용되지만 결국 그 흔적이 단시간에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아서 범죄가 미완성된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 독을 타는 행위는 치밀한 계획과 깊은 원한의 발로에 의해서일 확률도 높지만 무작위가 될 때 매우 위험하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밑바닥에 깔려있다면 아야네의 독의 사용이 영영 유예되었을지 몰라서 쓸쓸하다.

그러나 인간의 왜곡된 사고는 끝이 없고, 인간을 그 자체로 배려하지 않는 문제가 나올 때는 범죄를 피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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