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Sep 01. 2021

반짝이는 존재는 모두 외롭다

-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홍차와 토마토 주스가 던지는 의미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반짝반짝 빛나는』은 다루기 힘든 소재를 쓴다.

알코올 중독자이면서 조울증을 앓고 있는 쇼코는, 담당 정신과 의사가 결혼을 하면 정신병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대로 선을 봐서 내과 의사이자 호모인 무츠키와 결혼한다.

쇼코는 무츠키의 호모 애인인 곤과도 친하다.

 

서로 조금씩 외롭고 고독하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서로 조금씩 물러서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로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거리를 두면서도 그러나 그 거리 때문에 외롭다.

그래서 이 소설은 쇼코와 무츠키가 각각 1인칭으로 설정되어 번갈아가면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서술한다. 담담하게, 그러나 연민으로.   

  

쇼코의 거실에 있는 유카알레판티스페스, 곧 ‘청년의 나무’ 란 뜻의 이 나무는 무츠키의 애인인 곤이 선물했다. 쇼코는 무츠키의 호모 애인인 곤을 인정하면서도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자, 유카알레판티스페스가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심리적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쇼코는 그 나무에 홍차나 토마토 주스 등을 주면서 영양분이 많아서 좋겠다고 생각한다.  

토마토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영국에서는 최음성이 강하다고 알려지며 ‘사랑의 과일’로 불렸다. 쇼코가 나무에 토마토 주스를 주는 행위는 나무를 곤과 동격으로 보는 까닭이다. 쇼코는 나무에 홍차를 주면서 나무가 홍차광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뭇잎이 반갑다는 듯 떨고 있다고까지 느낀다.

 

곤의 나무에 홍차를 주는 쇼코의 마음은 일본 다도가 보여주는 미의식 중,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인 경(敬)에 가까워 보인다.        

애니미즘은 사물에 깃든 존재를 강조했고, 애니머티즘은 사물이 가지는 힘이나 작용을 중시한다. 전자가 정령에 관한 관념의미면, 후자는 생명력에 대한 관념으로 프리 애니미즘으로 본다.  

쇼코가 곤의 나무에 토마토 주스나 홍차를 주는 행위는 후자에 가깝다. 나무는 사람처럼 쇼코의 곁에서 살아있으며, 쇼코에게 곤의 나무는 두 사람이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 존재한다. 이제 쇼코는 곤과 대립하느냐, 친하게 지내느냐의 두 가지 길만 남았을 뿐이며,  쇼코는 후자를 택한다.

       

인간의 성의 정체성은 과연 애초부터 규정된 것이었을까. 처음은 혼돈의 상태였다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성을 깨달았듯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럴 때 우리가 만든 틀에 성을 규격화해놓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지, 근원은 프리 애니미즘의 세계였던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성의 구별이 없이 모두가 생명으로 살아있던 범 우주적 세계. 이 소설은 존재의 개별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작정하고 있다.      



슈크림처럼 달콤하지는 않지만



일본인들이 ‘주변 사람의 눈’, 즉 ‘세켄의 눈’에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하면 이 소설은 파격이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같은 일을 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사고나 행동이 다른 사람과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에의 평가를 타자의 의식 가운데서 찾는다.

실제로 동경에서 거주할 동안 이런 일본인들의 습성을 어느 정도 보면서 놀란 적이 많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이 그들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개별적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바로 일본문화의 하나인 세켄에서 벗어나려는지 모른다.  

쇼코의 친구 미즈호나 쇼코나 무츠키의 부모까지 무츠키와 곤의 관계를 알게 되지만 크게 대립하거나 심각한 갈등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세켄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카키이와 외과의사 카지베도 호모 관계로 나온다. 담당 정신과 의사도 믿지 못하게 된 쇼코가 카지베를 방문하자 카지베는 약이라며 알사탕을 쇼코에게 줄 뿐이다. 쇼코의 정신병적 요소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대할 뿐이다. 마치 호모는 그냥 호모일 뿐이라는 듯.


쇼코는 꿈속에서 전 애인 하네기로부터 슈크림을 받는다. 꿈 이후 쇼코는 무츠키에게 슈크림을 사달라고 하고, 무츠키는 쇼코가 좋아하는, 코안트로 맛 슈크림은 아니지만 플레인 레이즌 도넛을 사다 준다. 이런 사소한 배려에도 쇼코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먹지만, 무츠키의 개인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또 그대로 받아들인다.  


프랑스에서는 웨딩 케이크 대신에 다양한 형태로 만든 슈크림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 ‘크로캉부슈’를 만든다. 쇼코가 좋아하고 원하던 슈크림은 혹시 이런 웨딩 케이크 같은 것이었을까. 그러나 쇼코는 갈등보다는 존중하는 삶을 택한다.  

무츠키에게는 남자로서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면이 없다. 먼지를 싫어하는 무츠키는 청소를 좋아하고 냄비 닦는 것도 좋아한다. 쇼코의 전 애인 하네기는 쇼코가 상식의 틀을 벗어나는 사람이며, 남자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었다.

그런데 쇼코는 그런 상식적인 틀과 무관한 무츠키와 결혼함으로써 전 애인 하네기의 말처럼 정말로 상식적이지 않는 삶을 택하게 된 것이다.

   

쇼코는 무츠키와 곤의 관계를 은사자로 비유한다. 무리들과 같지 않아서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쇼코의 시아버지는 쇼코조차 은사자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조울증 환자인 쇼코나 호모인 무츠키가 서로를 받아들인 채 결혼한 것 자체가 실은 그들이 은사자와 같은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 은사자.

마침내 쇼코는 곤의 나무에 홍차를 주는 것보다는 곤과 무츠키를 자유롭게 만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집 아래층에 곤의 집을 마련하고 나무를 돌려준다. 실내도 쇼코와 무츠키 집과 똑같이 꾸미며, 이제야 간신히 독립한 부부 두 사람을 위했다고 쇼코는 생각한다.  

쇼코는 무츠키에게 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무츠키는 콜라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쇼코는 무츠키와 곤이  서로의 청량제임을 마침내 존중한다.



 길들여지는 것은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하는 것



쇼코의 시부모는 쇼코가 아들인 무츠키와 살고 있는 것을 '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물의 이미지는 고마운 존재, 친밀한 존재라는 의미며, 물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매우 가까운 사이를 나타냄으로써 남성들의 우정, 혹은 부부간의 가까운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또한 물은 수행과도 관련이 깊다. 관용표현에서는 '서로 이질적인 존재'라는 의미도 가진다.

이 모든 물의 의미가 쇼코와 무츠키, 곤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쇼코가 껴안은 물은 어떤 물일지, 아니면 그 모든 이미지를 껴안는 것일지 오래 생각했다. 쇼코나 무츠키가 욕조 안에 금붕어를 키우며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 낯설고도 불가피한 관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인지 모른다.

일본의 마츠리에 가면 금붕어 뜨기가 있다. 얇은 창호지가 찢어지기 전에 금붕어를 떠야 한다. 아주 잽싸게. 그처럼 쇼코와 무츠키도 서로의 낯선 관계를 아주 재빨리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관계로 살아가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부서지기 쉬운 그릇 같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쇼코가 무츠키를 존중해줌으로써 울고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여러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자신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로 만드는 일일지 모른다.

무츠키가 “하얗고, 조그맣고, 연약하다”라고 쇼코를 바라보면서 생각하듯이 그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는 지금은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 들이다.   

언젠가 한 번은 그 그릇이 깨어져서 우리 모두 한 가지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지만, 그때까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김난주 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