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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14. 2021

인어공주의 해초 수프

공주는 용궁 음식 전수자



혼자 남은 모래사장 위에서 인어공주는, 마녀와의 계약서처럼 왕자의 입맞춤을 받지 못해 해가 뜨면 물거품으로 변할 거예요. 이미 몸은 모든 힘이 빠져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었어요.

 

'아, 어떻게든 저 바닷속으로만 들어가면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인어공주는 조금이라도 바다 물결 쪽으로 가려고 손을 뻗었어요. 파도는 마치 인어공주를 놀리듯 가까이 왔다가 다시 그만큼 물러서곤 했어요. 사라질 자신을 생각하니 부모님과, 친했던 바다거북과 돌고래들이 주체할 수 없이 그리워졌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잔잔한 바다가 크게 요동치며 인어공주가 손을 뻗는 곳까지 밀려와서 조금 더 큰 파도가 온다면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드디어 파도가 점점 거세지면서 밀려온 물결이 공주를 끌고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바닷속으로 들어오자 힘을 찾은 인어공주는 그때 흰 물체가 깊숙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어요. 깊은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인간에게 헤엄쳐갔어요.

인어공주는 제 또래 소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얼른 물거품들을 끌어 모아 크고 둥근 방울을 만들어 소녀를 감쌌어요. 인어공주를 찾아 헤매던 돌고래 떼와 바다거북인 별주부가 마침내 공주를 발견하고 모두 몰려들었어요.

모두들 힘을 합쳐서 소녀를 감싼, 풍선처럼 둥근 방울을 받쳐 들고 용궁으로 향했어요.

그 소녀가 바다에 풍덩 뛰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큰 파도는 밀려오지 않았을 것이며,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예요.


인어공주를 애타게 찾던 용왕은 공주가 용궁에 무사히 도착하자 한없이 기뻐했어요. 방울 속의 소녀 덕분에 공주가 물거품으로 변하지 않은 것도 알게 되었죠.

소녀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지만 공주의 비법 음식인 불사의 해초 수프를 마시고 눈을 반짝 떴어요. 사실 인어공주는 용궁의 음식 비법을 전수받는 공주였어요.

 

인어공주는 바다로 떨어진 소녀의 이름이 심청인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신을 희생한 것도 알았어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눈물을 한없이 흘렸어요.

심청이 떨어진 인당수 아래는 사실 용궁이 있는 곳이었어요. 배들이 용궁 위를 지날 때면 용왕의 노여움으로 풍랑이 거셌어요. 용왕도 심청의 착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는 풍랑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게다가 용왕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인어공주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던 생각을 하자 아버지의 마음을 더욱더 알게 된 거죠.    



 

은혜의 해초 수프



한편 인어공주가 사랑했던 왕자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으로 안 여성을 궁으로 데려와서 극진한 대접을 하는 중이었어요.

어느 날 왕자는 죽을 뻔했을 때 먹고 살아났던 해초 수프가 너무도 간절히 생각나서 그 여성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여성은 '어렵지도 않은 부탁이군', 이라고 생각하며 바닷가에서 해초들을 따다가 수프를 끓였어요.

그러나 왕자는 단번에 원하던 맛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먹었던 그 신비한 맛을 절대로 잊을 수 없죠. 그것은 깊은 바다의 맛이기 때문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던 맛이었어요. 오로지 용궁의 음식 비법을 전수받던 인어공주만이 만들 수 있는 수프였어요.


왕자는 몹시 실망했지만, 다시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준 여성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맛있는 해초 수프를 끓여오면 후하게 보상하겠다는 방도 계속 붙였지만 그 어떤 수프도 왕자가 먹었던 수프 맛을 낼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은인을 찾을 때까지 왕자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해 준 사람의 은혜를 외면한다면 왕이 되어서도 백성을 잘 보살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정과 사랑의 해초 수프 선물   



용궁에서 심청과 친구가 된 인어공주는 비로소 인간세상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만이 살아가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친구와의 우정과 부모 형제와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한 것을 알았어요.

마녀에게 빼앗겨서 사라진 인어공주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용궁의 부엌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만드는 게 취미였던 공주가 이제 노래를 부르지 못해 가끔 한숨을 쉬자 어느 날 심청이 말했어요.  

    

"공주님, 저의 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저를 이렇게 잘 길러주셨어요. 인간 세상에서는 누구나 한 가지는 부족해도 또 잘하는 한 가지도 있죠. 공주님은 말은 못 하지만 음식을 잘 만들고, 누구보다 아름다워요. 제가 글을 가르쳐드리면 말 못 하는 것도 문제가 안될 거예요"


"정말인가요. 사람들이 말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었어요?"

   

공주는 그날부터 심청에게인간 세상의 글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심청과 공주는 글로써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더욱더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용왕은 그런 두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마음이 고운 심청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인간 세상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했어요.

정원에서 커다란 연꽃을 따서 심청을 태우고, 공주가 돌고래와 별주부와 함께 배웅하게 했어요.      

큰 배의 선원들이 넓은 바다 위에 거대한 연꽃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파도에 뒤집히지도 않고 물방울도 미끄러지는 연꽃을 신기하게 생각한 선원들은 그 나라의 왕에게 선물했어요.


그런데 그 연꽃에서 심청이 나와 왕은 심청의 사연을 들은 후에 고운 마음을 알게 되어 황태자비로 맞이했어요.

심청은 바닷가로 가서 돌고래들에게 부탁해 공주를 초청했어요.

용왕은 심청의 잔치에 참석할 공주에게 마법을 써서 인간의 다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전에는 인간 세상의 사람들은  용왕의 백성들인 온갖 생선과 문어 등을 다 잡아먹어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심청을 안 이후로 착한 인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주가 세상에 나가도 좋다고 생각한 거죠.


공주는 황태자비인 심청의 친구로 혼례식에 참석했어요. 그 잔치에 바로 인어공주가 목숨을 구해준 왕자도 참석했어요. 공주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왕자를 보자 용궁의 비법인 해초 수프를 선물로 만들었어요.


해초 수프를 먹은 왕자는 너무나 놀라서 물어봤죠. 그렇게 찾으려고 애썼던 해초 수프 한 그릇을 마침내 찾은 거죠.       


"도대체 이걸 누가 만든 것입니까. 난 그 사람을 꼭 만나야 해요."     


공주를 만난 왕자는 여전히 인어공주의 얼굴을 잘 모르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공주는 심청에게 배운 글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어요. 심한 풍랑으로 배가 난파되었던 상황과 당시 왕자를 살리기 위해 불사의 해초 수프를 만들어 먹였던 것을 글로 썼어요.      


"이제야 그렇게 찾던 은인을 만났군요. 평생 제가 은혜를 갚게 해 주세요."


인어공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만나길 원했던 왕자는 공주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을 했어요. 순간 인어공주는 갑자기 아름다운 목소리를 되찾았어요. 마녀와의 계약 사항인, 입맞춤만 받는다면 목소리를 되찾는 마법이 아직 유효했던 거죠.

자기 나라로 돌아간 왕자는 극진히 공주를 돌보면서 살았어요.


심청이와 공주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고, 두 소녀의 우정 덕분에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전쟁이라고는 모른 채 모두 평화롭게 잘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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