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져 당시 일본의 최고 시청률 21%의 성공을 거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참자>는, 영화로도 상영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추리소설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매우 따뜻합니다. 그 따뜻함은 사람들 사이의 음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도쿄의 오랜 가게 거리인 닌교초와 가까운 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던 40대 여성 미쓰이 미네코의 시체가 발견되며, 사건의 열쇠는 교살에 사용됐던 의문의 끈을 신참자라고 자처하는, 그러나 실제로는 실력 있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닌교초의 가게를 일일이 탐문하면서 풀어나갑니다.
닌교초거리는 일본식 가게 거리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일본에서 살아보면 일본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신주쿠 등의 번화가가 아니면 대개 그만그만한 가게들이 비슷한 모양새로 서 있습니다.
일본의 가게들은 오래된 냄새들이 풀풀 납니다. 3개월마다 새로 등장하는 전자제품이나 패션 잡지의 새로운 유행 옷들과는 매우 이질적으로 거리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100년 된 가게입니다, 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은 예사며, 3대째, 2대째는 자주 보는 문구입니다.
그리고 그 가게들은 100년은 되었음직한, 3대 전에도 똑같았을 그런 문들과 창문들, 낡은 먼지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가가형사는 이런 가게를 사건 해결을 위해 일일이 방문합니다. 미쓰이가 살해된 고덴마초와 가장 가까운 거리며, 미쓰이 집에서 발견된 물건들이 닌교초의 가게들과 관련 있기 때문으로 가게들은 용의 선상에 올라있으며, 각자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거짓말을 합니다.
살해자인 미쓰이의 집에서 발견된 센베이, 닌교야끼, 전복을 자르기 위한 가위, 아몬드 푸딩 위에 패션 프루트젤리를 얹은 케이크, 천연 조개에서 나는 은색으로 벚꽃 조각이 된 젓가락 등은 닌교초 거리의 가게들에서 파는 것들입니다.
용의자인 보험 영업사원 다쿠라는 미쓰이가 살해된 시간 직전에 센베이 가게에 들릅니다. 파래 가루가 흩어진 부채꼴 모양의 센베이는 사놓으면 단숨에 먹어치울 정도로 나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닌교초 거리의 센베이 가게엔 마요네즈 맛도 판다는데 어떤 맛일까요.
센베이는 우리도 전병이라고 써 붙여 놓고 파는데 둘은 좀 다릅니다. 우리의 전병은 곡물 가루를 물에 개서 기름에 지진 떡으로 밀전병, 화전, 부꾸미, 주악 등을 말합니다. 주악은 찹쌀가루로 송편처럼 만들어 소로 팥을 넣는 것으로 <임원경제지>에서는 전병의 최상품이라고 한다고 하네요. 따라서 우리의 전병은 기름으로 지진 떡에 가깝습니다. 현재 전병이라고 파는 구운 과자는 일본 과자인 센베이에 가깝습니다.
일본에서는 떡과 과자를 모두 화과자라고 통칭합니다. 화과자는 7세기말에 당나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4~15세기 경인 무로마치시대에 일본 고유의 화과자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화과자는 일본의 독자적 기술로 개발한 전통 과자가 아닌 중국의 당 과자와 우리나라 전통 음식인 떡이 일본에 전해져 발달하게 되었고, 그리고 유럽 과자가 일본식으로 변형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일본에 가보면 먹기도 아까울 정도의 예쁜 화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센베이는 이런 화과자 중에서도 8세기말의 헤이안부터 있었던 역사가 오래된 과자입니다.
닌교초거리의 전통과자점인 센베이 가게의 아들 후미다카는 어머니 사토코에게 담관암을 숨기기 위해 다쿠라에게 진짜 진단서와 가짜 진단서를 건네줍니다. 보험영업인 다쿠라는 이로 인해 졸지에 살해 시간과 근접한 시간대에 센베이 가게에 들름으로써 용의자의 선상에 올랐던 것입니다. 따라서 센베이 가게의 인물들은 가가형사에게 거짓말이 불가피했습니다.
피살자 미쓰이의 방에서 나온 닌교야끼에 요릿집의 종업원 슈헤이와 여주인 요리코 등의 지문이 나오자 가가형사는 이들을 용의 선상에 두고 탐문합니다. 닌교야끼 하나에는 고추냉이가 들어있는데, 요릿집 여주인 요리코가 남편의 바람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남편 다이지에게 알리는 방법이었지만 다이지의 애인은 이웃이던 미쓰이에게 먹으라고 줍니다.
요리코는 남편의 외도 상대인 여성의 아이가 남편의 아이가 아닌데도 남편이 모른척하고 자신의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역시 모른척하고 있습니다. 요릿집도 가가에게 거짓말이 불가피했음이 밝혀집니다.
차를 즐겨 마시는 일본인들은 단 음식을 좋아합니다. 닌교야끼는 소를 팥으로 만드는 만주와 같은 종류의 음식으로 여기서는 고추냉이도 소로 넣습니다.
동경서 살 때 마트에 가면 떡 파는 코너가 따로 있었는데, 우리의 떡집처럼 금세 한 떡이 아니라 모찌라고 써 붙인 것도 너무 딱딱해서 도대체 이빨이 시원찮은 사람은 먹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네모나거나 동그랗게 만든 모찌는 팥소도 없이 그냥 찹쌀로 만들었는데, 조그마한 크기로 한 개씩 포장해서 팔아, 일본인들의 떡이나 과자 개념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닌교야끼도 우리의 국화빵보다는 맛있지만, 팥이 더 달다고 느끼면 될 것 같습니다.
사기그릇가게 며느리 마키와 시어머니 스즈에는 고부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가가형사는 센베이를 사들고 이들을 찾아오는데, 살해자의 집에서 나온 가위가 마키가 산 가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키가 시어머니가 시마로 전복 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고 전복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주방가위를 산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시마의 전복스테이크는 유명하지만, 이가 안 좋은 사람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복은 회로 먹을 때는 이빨로 씹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익혀서 먹을 때는 부드러워집니다. 특히 전복을 우유를 넣어 삶으면 아주 부드러워지는데, 일본 시마는 전복이 유명한 모양으로 고부간의 갈등도 이쯤 되면 이제 사라질 것입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전복 진주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으며, 전복 진주의 산지를 조선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산어보>에도 진주를 품고 있는 전복일수록 그 등껍질이 거칠다고 했습니다. 이는 전복이 진주를 품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역설적 의미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전복도 고부갈등을 해소시키는 대상으로 차용되었을까요.
살해된 미쓰이는 케이크 가게 점원 미유키를 며느리가 될 여자로 착각해서 케이크점 콰트로에 아몬드 푸딩에 후루츠를 장식한 케이크를 사러 다닙니다.
가가형사는 콰트로의 케이크를 사서 미쓰이의 친구 다미코를 찾아와 살해된 미쓰이가 교초의 명물인 젓가락을 친구 다미코의 결혼 선물로 샀던 것이라면서 전해줍니다. 미쓰이와 다미코의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입니다. 이미 미쓰이가 살해된 후라서 애석하지만.
용의자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닌교초 가게 거리의 가족들은 실제로는 애정으로써 서로서로 이해하고 있었음이 밝혀집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었지만 이 소설은 가족 간의 화해와 이해를 그리면서 음식이 등장합니다. 음식이란 가족이 서로 모여 앉아 먹으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 솥 밥을 먹는다’는 관용구는 한일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음식 관련 관용구로, 가족이란 바로 한 솥 밥을 먹는 사이인 셈입니다. 그러면서 애증을 풀어나가는 존재입니다.
살해된 미쓰이도 살해된 후에야 아들과의 갈등이 해결되는 슬픈 아이러니의 소설입니다.
생텍쥐페리는 ‘내 비밀은 바로 이거야. 정말 간단해. 마음으로 볼 때만 진정으로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문득 누군가와 오해를 풀고 마음으로 봐야 할 때, 혹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 볼까요.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사 먹는 것도 좋겠지만, 뜨끈한 막 지은 쌀밥에 볶은고추장과 몇 가지 나물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