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철학적 의미도 깨닫게 한 가구 설계

- 새집서 사용할 가구 알아맞히기는 퀴즈대회 감이었다

by 이지현


기존 가구와 입주 가구 사이의 무한 거리



설계 2차 미팅을 한 후에 리모델링 집에 가져올 가구에 대한 치수를 설계사무소서 요구했다.

그때만 해도 설계가 변경되기 전이라서 그동안 집에서 사용하던 모든 가구를 다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전제품을 위시한 모든 가구 목록을 적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와서 보면 기존에 사용하던 것은 드럼세탁기와 침대 매트리스들, 그리고 책상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기존 가구와 입주 후 가구의 거리는 마치 남남이 되는 사이처럼 너무 멀었다.


드레스룸 뒤 벽은 비스듬하다. 드레스룸 사이 문은 설계에 없었는데 현장소장님과 고민 끝에 결정해서 만든 것이다


리모델링 집이어서 원래 있던 벽이 일직선이 아니었다. 약간 사선으로 되어 있는 벽은 추후 주방가구나 드레스룸을 달면서 모두 감춰지면서 사선인 것이 감쪽같이 숨겨졌다. 리모델링 집은 두 벽을 허물수가 없으므로 약간 비스듬한 채로 남았지만 가구들로 커버가 되니 아무도 벽의 비스듬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사선의 벽은 가구를 들일 때나 주방가구를 짤 때나 고민거리였다.


궁극적으로 가구 등은 전부 집의 크기에 맞게 싹 교체되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벽 꽂이 책장이 생겼다



집을 시공할 동안 현장에 다니면서 볼 때만 해도 이삿짐 보관센터 창고에 들어가 있는 가구들이 그대로 다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다.

제일 큰 문제가 책꽂이였다. 시공 중에 와서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책꽂이를 하나 세울 곳이 없었다. 평면의 아파트와는 달리 주택의 벽들은 면적이 좁아서 한 벽은 에어컨, 한 벽은 미싱, 나머지 한 벽은 텔레비전,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놓으면 책꽂이 들어갈 때는 어디도 없었다. 또한 비었다 싶은 곳은 창이나 문이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미 대학도서관과 동네 작은 도서관에 50박스도 넘게 기증하고도 남은 책은 내가 글 쓸 때 참고해야 하는 필요한 것들이어서 걱정만 태산으로 시공과정 중에 오기만 하면 다른 시공 걱정은 하지도 않고, 책 타령만 하니 현장소장님이나 설계사무소 측에서 귀담아듣고 있은 듯했다.

그거야 당연한 것이었다. 책을 놓아둘 일은 내 일이지만, 시공 일은 내가 본다고 딱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공 등은 음, 그렇군요.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2020년 1월 <전원 속의 내 집>에 소개된 책꽂이, 지금은 전부 다 책이 빽빽이 꽂힌 상태로 정리되었다


현장분들이 중지를 모았는지 한 번은 시공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왔더니 1층부터 2층까지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의 한 벽에 책꽂이가 완성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다. 마치 깜짝 선물 같았다. 왜냐하면 소장님이나 설계사무소 팀장님이 일절 책꽂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계사무소 팀장님이 웃으면서 현장소장님이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디자인을 전공하신 현장소장님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책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길게 뽑는 사다리를 두고 필요한 순간에 이용하고 있다.


작은 집에서는 책이란 정말 필요한 가구를 놓고 나면 그냥 걸치적거리는 장식품조차도 안 되는 상황이 될 뻔했는데 순식간에 책이 해결되고 나니 이제는 어떤 가구에 대해서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듯했다. 물론 입주 전까지에 국한되었지만.


새로 집을 지으면 그 집에 맞는 가구를 들이는 것이 나중에 생각해보니 맞았다. 공연히 버리지 못하고 아까워하다가 쓸데없는 욕심으로 창고 보관료, 이사비용, 나중에 억지로 싣고 와서 버린 비용, 또 억지로 구겨 넣고 사용하다 도저히 불편해서 못쓰게 된 뒤 다시 버려야 할 때의 말도 못 할 고생과 폐기물 비용 등, 참 여러 가지로 이런저런 고생을 사서 했다.


설계 변경 전이지만 침대 등 가구 배치가 설계


좁은 집에서는 일단 한번 가구가 들어오면 나가는 것은 꿈꾸기도 벅찼다. 아파트의 평면적인 구조에서 가능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가구들은 생각해보면 정말 편리한 이사였다. 주택에서는 좁은 계단을 통과해서 올라올 수 있는 가구에 대해서만 궁리해야 하고, 문의 규모도 가구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사이즈인가, 설계하면서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입주 후에는 이케아 가구를 수납용으로 많이 구입했다.

부족한 신발장, 재봉하고 남은 천들을 두는 수납장, 서랍장 등, 조립할 수 있는 가구인 이케아가 제일 만만했다. 계단으로 운반해서 조립을 하면 되었다. 물론 이케아 가구 조립은 너무 힘들다. 오죽하면 조립까지 다 책임지고 풀로 해주는 직원이 있을까.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조립의 귀재인 딸이 있어서 뚝딱뚝딱 조립도를 보면서 잘도 만들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게 아귀가 안 맞으면 가구가 비뚤어지고 할 텐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신기하게 잘해서 대학 등록금이 아깝지 않군,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케아가 조립도 할 수 있어서 간편했지만 부피가 작아서 작은 집의 수납에는 맞았다. 간편한 수납용으로는 이케아 가구를 쓰면서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케아는 유럽 가구인데 우리보다 훨씬 큰 사람들인 유럽인들은 어떻게 이 작고 얇은 가구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쓰던 우리식 가구들은 사실 다 컸다.

50평대의 아파트에서 놓고 산 가구들은 주택에 맞는 것이 아니었다. 대형 옷장과 붙박이장, 대형 소파, 대형 탁자. 대형 냉장고, 뭐든지 대형이었다. 이런 것들과 나는 그동안 더불어 살았다. 그것도 비싼 돈을 들여서 좀 이름 있는 가구점의 가구들을 사용했다.

그런데 막상 주택을 짓고 이사를 하자 그런 가구들이 얼마나 소용없는 것이었는지 즉시 깨달았다. 미니멀리즘의 추구가 주택에는 맞았다. 그렇지 않고 다 늘어놓으면 집은 바로 창고를 방불케 할 준비태세를 언제든지 갖추고 있었다.


집으로 입주하는 날, 이삿짐 사장님이 내려놓지도 못하고 도로 싣고 간 가구가 2.5톤으로 2대가 되었고, 나는 순수하게 버리는 비용만으로 거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관했던 창고비용까지 하면 거금이 더블로 나간 셈이다. 인간의 쓸모없고 무모한 욕심에 대한 경계를 배운 셈이다.


주택에 이사하면서 나는 도를 닦는 사람처럼 변해간다. 그동안 모아두던 쓸데없는 것들도 이제는 열심히 버린다. 원래 정리를 잘하기로 자타가 공인(?)하지만 주택에 살게 되니 저절로 반쯤의 무소유가 되어 간다. 그래도 아직 멀었지만 매일 매시간 안간힘을 쓴다.




주택에서는 침대도 설계하다



방들도 작다 보니 어떻게 쓸모 있게 쓸지 조조 정도의 뛰어난 지략이 필요할 지경이 되었다. 딸은 스스로 침대를 설계했다. 아래에 여러 가지 수납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야심 찬 결과였다.

그리고 현장소장님이 침대 설계도를 가져가서 퀸 사이즈 침대를 자작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딸이 설계한 자작나무 벙커 침대 퀸 사이즈. 현장소장님이 목수 장인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놓다

이사하고도 억지로 가구를 들이밀었는데 그러다 보니 집은 작아지고 균형이 맞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게 되었다. 마치 위아래가 각자 따로 노는 옷을 입은 격이었다.


아파트는 평면이라서 가구를 놓아도 넓어서 가운데 플로어에서는 우스갯소리지만 춤을 추어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리모델링한 집은 작아지면서 또한 층별로 나뉘니 가구가 맞지도 않고 크기도 다 큰 것이어서 작아진 주택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신축이거나 리모델링이거나 새 집과 기존 가구와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입주 시에 그래도 억지로 들여온 가구는 운반하면서들 모두, 이거 들어오기는 하지만 나가지는 못합니다, 고 했다. 결국 그 가구들도 아무리 보아도 너무 부조화여서 결국 다 버리게 되는데, 운반하시던 분들 말대로 그대로 나가지 못하고 하나하나 해체해서 버리게 되었다.


주택살이를 하면서 가구 생각을 할 때마다 법정 스님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 키우던 난 하나도 결국 소유에의 집착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하더라는 말씀을 새긴다.

그런데도 나는 쓸데없는 화분을 마구 들였으니 다음에는 이 화분들을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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