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에선가 건축가는 전업 주부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읽은 기억이 난다. 그만큼 건축가는 집을 짓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배려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함께 설계를 검토하면서 건축가야 말로 삶의 총체적 경험을 겪거나 깊은 성찰과 원숙함이 어우러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실내 설계가 시작되면서 더욱 그랬다. 실내 설계는 적어도 주부 9단은 되어야 했다.
집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살림과 정서까지 교감할 수 있을 때 건축가는 편안하고 안전한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살림살이에 능숙한 사람일수록 좋은 법이다.
살림이란 의미는 결국 무엇인가. 살린다는 의미를 넘어서 생활의 숲에서 정돈을 치밀하게 잘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설계 변경 전의 콘센트 배치 설계
그만큼 설계는 깊었고, 치밀했고, 조밀해서 아직 집에 들어가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온갖 연상과 상상의 집에서 놀듯이 우리는 도면 속의 집으로 수도 없이 들락날락해야 했다.
실내 설계 도면이 마련되고 건축주로서 검토를 해야 하면 해리포터의 9와 3/4 정거장, 마법의 저쪽 공간에 한 발을 넣어 보듯이 이미 그 공간 안에 휙 담겨서 마음대로 걸어 다녀야 했다.
전기 전열 도면 체크는 아무리 꼼꼼해도 모자라지 않아
집 짓기에서 전기, 전열 공사가 까다로운 내부 설계 및 시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방 전기공사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당연히 시공 전에 모든 설계가 잘 짜여야 이상 없이 시공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실내 설계로 들어오면 건축가와 건축주가 머리를 맞댈 일만 남는다. 주부로서 어떻게 해야 동선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주공간의 역할과 개인 공간을 설정할지, 어떤 가구나 제품을 써야 할지 정해야만 설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내 전기 전열 설계는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부터 즉시 논의되었다.
설계 계약서를 쓰면서 어떤 전자제품을 쓸 것인지, 사용하는 가구를 이용할 것인지 질문이 나왔다. 이때는 당시 사용하던 모든 제품과 가구를 다 사용하고 이용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결국에는 세탁기와 텔레비전만 들고 올 것이면서.
실내 설계서 당장 중요한 것은 전자제품의 종류와 사이즈였다. 전기 배선 설계와 물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배관 설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벽을 세우면서 바로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어서 정말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검토해야 시공 후에 다시 뜯고 부수고 하는 일을 방지한다.
오븐 자리에 냉동고는 탁월한 결정 중의 하나, 한쪽 벽면이 곡선으로 처리되었다
전자제품에서는 다른 제품들은 다 쓰던 것을 가져온다는 전제 하에 오븐 자리가 추가되었다. 사용하던 냉장고는 아파트 용에 어울리는 생뚱맞게 큰 냉장고여서 설계팀과 얘기하다 바꾸기로 했다. 주택으로 오면 크기가 달라져야 하고, 이삿짐 보관창고에서 동파가 되면 어차피 사용하지 못한다는 글을 봐서 처분하기로 했다.
실내 설계가 잘 되려면 우선적으로 사용할 전자제품을 잘 정리해서 제품 모델명과 사진까지 첨부해서 건축사무소에 주어야 했다.
기존 사용하던 붙박이장과 가전제품들의 치수를 건네준 것은 2차 설계 미팅 직후였다.
가구나 가전제품의 사이즈 등에 따라서 문의 크기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실내 설계를 위한 제품들을 선택할 때는 건축주도 완전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가구점들과 가전제품들을 보러 다니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다.
처음 계약 당시에는 1층이 주방으로 설계가 되어서 가전제품들을 선택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현관으로 바로 들어와서 배치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후 2층으로 주방이 설계 변경되면서 정말 많은 부분에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바쁘기 시작했다.
3차 미팅에 가서 리모델링 집이어서 층고가 2.3~2.4미터로 고정이 확실시되니 냉장고도 빌트인으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추천을 받았다. 집이 아파트처럼 높지 않아서 빌트인 냉장고가 적격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이후 가전제품을 사러 다니면서 빌트인 냉장고가 콤팩트 하게 작은 집에 어울리겠지만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용량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도저히 먹는 거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그냥 냉장고를 사고, 오븐 자리로 설계된 곳에는 에어 프라이어라는 제품이 있다고 해서 냉동고를 사게 되었다.
입주 후에 반신반의하면서 처음으로 에어 프라이어를 샀는데, 지금까지 제일 많이 쓰고 있다. 왜 이렇게 늦게 알았냐고 사용시마다 후회하는 중이다. 오븐은 예열과 또 후처리인 청소가 성가시다. 그래서 그동안 빌트인 오븐으로 제일 많이 사용한 것은 군고구마 구이였다.
오븐을 살지 어떨지 고민하는 중에 사람들의 후기도 읽곤 했다. 대부분 창고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많아서 웃기도 했다.
이때 오븐을 사는 것에 심각한 우려는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아파트 빌트인 오븐은 가스 쿡탑 아래 들어있다. 그래서 가스와 동시에 오븐을 사용하지 못한다. 우리의 설계에서도 가스레인지와 오븐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으로 얘기되었는데 이 부분에서 직접 사용해보기도 했었지만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비스센터에 문의까지 해보았다.
답변은 당연히 함께 쓰지 못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오븐은 상부장용으로 사기로 하고, 따로 설계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는 냉동고가 들어갔지만.
주방 위 콘센트는 커피 머신용이 되었다
다행히 오븐 자리에 냉동고가 들어가게 되어서 전기 배선상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넉넉한 전기 배선 설계는 그래서 꼭 필요했다.
그러나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압력밥솥이 함께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나란히 한 벽면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용량이 부족해서 함께 쓰지 못하고 현재 하나를 쓰면 다른 것들은 끄면서 쓰게 되어서 불편하다.
전기 설계에서 그런 것까지 결국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주방의 콘센트 부분이 이 제품들을 쓸 수 있는 위치도 달라서 결국 코드를 연결해서 쓰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실내 전기 배선 도면을 보았어도 나중에 입주하면서 설치가 달라질 때는 불편한 상황이 생겼다. 더 빼놓을 것을 하는 후회가 있지만, 바로 옆 벽면에 다른 콘센트가 있어서 큰 불편은 없다.
주방 부분에 결국 가장 많은 전기기기를 사용하니 어떤 전자제품을 어디에 설치해서 사용할 것인지 다양한 배치를 상상해보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집들은 식기건조기, 전기오븐, 전자레인지, 믹서기, 정수기, 토스트기, 에어프라이어, 밥솥, 냉장고, 김치냉장고, 커피머신 등을 다 써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냉장고 자리는 처음부터 설계되었고, 오븐 자리에는 냉동고를 넣었지만, 다른 전자제품들인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밥솥만 쓰는데도 그쪽으로 코드를 하나도 마련하지 못해서 결국 선을 빼서 쓰다 보니, 용량도 부족해진 경우가 되어서 불편하고 아쉽게 되었다. 코드를 싱크대 쪽으로 뺀 것은 커피머신이나 겨우 쓸 뿐이다.
협소한 집에서 주방도 따라서 작으니 싱크대 쪽으로 전기 배선이 된 경우는 작은 전자제품이나 올려놓고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함께 고려했지만 결국 조금의 착오는 이렇게 나오는 법이다.
논현 가구거리만 가면 힘내자고 먹은 삼계탕
딸과 둘이 열심히 다니면서 강남 학동역에서부터 시작하는 논현 가구거리 등을 뻔질나게 다녔는데 비싸기는 왜 그리 비싸고, 수입산에 대형 제품들이어서 우리 같은 주택에는 별 쓸모없어 보이면서, 헛걸음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아직도 구경했던 가구들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영동시장의 '용'삼계탕 집에 꼭 들러서 힘은 내자는 취지로, 잊지 않고 삼계탕 먹은 것만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