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레트로에서 헤밍웨이적 설계로 변경되다

- 설계 변경이 생기는 이유

by 이지현


추상적 레트로 설계는 사라지고



설계사무소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설계변경 비용은 '허가를 득한 후 현장 사정이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변경이 있어야 할 경우를 제외한 단순 변심에 의한 경우에만 청구한다'는 것으로 서로 확인했다.


설계 비용은 더 들일 수 없으니, 리모델링이라 너무 뻔한 설계, 방, 주방, 상가 등 이런 것들이 다 제 자리 잡으면 더 이상 변경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먼저 다졌다.


건축가 김중업은 주택설계에서 ‘집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라고 했고, 대지가 주는 시적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남향을 중시했다. 따라서 리모델링 설계지만, 이미 집은 남향이고, 문학적 감성을 덧대어 헤밍웨이를 그리고 있으니 그 반은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 그것도 홍대 앞에서 대지의 시적 영감을 운운하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싸니 대지로 그런 사치를 부릴 수는 없지만, 수십 년간 수집한 시집들을 현관 앞에 두지, 하는 위안을 삼키며 어떤 설계 상황이든 감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는 설계 변경이 발생하면 거액의 비용도 들지만, 집 짓는 기간이 엄청나게 연장된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런 아찔한 충격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어느 누가 설계 변경을 하고 싶겠는가.

그런데 설계 변경은 예고도 없이 밀물처럼 급습하기 시작했다.

1차로 소박하고 레트로 한 머릿속 설계가 변경되었다. 구옥을 구입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 낡은 시간들이 두고 간 것들을 그대로 남긴 채 1층은 가게로 그리고 쪼르르 올라가면 편하게 쉴 주택을 두겠다가 내 머릿속의 추상적 설계도였다.


정말 우연히 만난 건축가를 다시 방문한 다음날, 소박하고 레트로 한 머릿속 설계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미 건축가는 하루 만에 뚝딱 계획 설계를 해놓고 있었다.

주택이 가게로 치환되려면, 건축설계사무소의 설계 도면이 필요하고 허가도 득해야 했다.

연스레 추상적 설계도에서 새로운 설계로 자리를 바꿨다. 건축가는 작성된 설계도면대로 시공이 되면 얼마가 들어갈 예정이라는 예측까지 해주었다.

시공비가 처음과는 당연히 달라져서 허둥지둥 대출도 변경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더 이상 설계 변경이 일어나면 곤란할 지경이 되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1주일 후에 다시 설계 미팅 때는 지하실을 그대로 두고, 기존 주택의 나무계단을 그대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이후에 생각하면 참으로 뭣도 모르는 소리를 했다.

물론 이때만 해도 설계사무소조차 추후 대대적인 설계 변경이 일어나게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던 셈이다.


계획 설계는 1층에 주방, 방 1개, 욕실을 두고, 2층은 주거, 3층은 근생 사무실로 설계되었다. 주방과 생활공간이 분리되면 굉장히 불편할 텐데 하는 생각에 잠시 걱정되었지만, 3층이 근생 공간으로 설계되려면 2층은 방이 들어서야 하니 주방 설계를 할 수가 없었다.


건축가는 3층을 에어비앤비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아마 건축주들이 임대를 두는 편을 선호하니 그런 듯했고, 홍대 앞이라는 특수한 문화 환경으로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나 싶지만, 우리는 다들 너무너무 바빠서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3층은 임대 사무실로 설계도면에 굳어졌다.



3층 근생 설계도


다소 떨떠름한 상태에서 사무실이면야 신경 쓸 일이 그리 많겠어, 하는 마음으로 일단 동의했다. 어쩌면 사무실 임대료로 대출 이자 갚는데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설계사무소에서 임대공간이 생기는 것을 건축주들이 다 좋아한다고 하니 거주에 큰 지장이 없는 한에서 설계가 된다면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건축가로서는 불가피한 일이 생겨서 집을 다시 매매할 일이 생기더라도 임대공간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듯했다.(강 가까이 있는 집을 팔일은 절대 없겠지만)




계획 설계에서 계획된 것들



1층이 카페 겸 근생 공간이 되면 정화조 용량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정화조 무관 업종도 다수 있지만 우리는 1층이 책방과 휴게음식점으로 허가를 받기를 원했으므로 정화조 변경이 불가피했다.

이때는 실측이 끝난 상태여서 건축물 현황도면과의 대조도 불가피했다.



1층 근생 공간의 책방


기존주택이 뒷마당에 임대인을 들일 수 있도록 방을 두었다가 적발되어서 창고로 사용하게 된 불법건축물이 있어서 철거를 해야 했다. 불법 건축물의 기준은 기둥과 벽, 천장이 갖추어져 있으면 해당된다. 그런데 이 조건은 각 지자체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고 하니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결국 지나고 보니 이런 기준은 주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상황을 고려하여 감안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1층 상가는 책방 공간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책방도 이때 설계가 고려되었다.

3층 근생 사무실 계단을 건축가가 꼭 해보고 싶은 모양이 있다고 보여주었는데 유럽의 어느 건축물에서 익히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우리도 아주 좋다고 했지만, 이는 추후 전부 주문제작을 해야 해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기도 하고, 공간도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무산되었다.

계획했던 외벽 핑크색과 계단


집 입주 시에 사용할 가전제품의 모델명 및 사진과 이전할 가구 사이즈와 사진도 설계사무소에서 요청했다. 이 모두를 다 고려하여 정확한 설계 도면이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때의 설계 미팅 시는 기존 주택 실측 후의 평면도, 측면도, 입면도, 단면도, 3D view까지 보면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의논이 되었다.

결국 용도변경 허가대상이었고, 1972년에 사용승인이 된 기존주택은 구조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 났다. 기초검사를 위해서는 바닥 타공이 필요했고 경계측량도 해야 했다.


설계사무소와 설계에 대한 논의가 오갈 때 주택과 근생의 비율을 맞추는 것도 이때는 중요했다. 주택의 비율이 높아야 1가구 1 주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전세를 주고 있던 아파트는 팔 계획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층을 근생으로 넣었을 때 어떤 조감도가 나올지는 여러 방면으로 서로 의논하면서 몇 가지의 집 스타일이 나왔다. 물론 그에 따른 설계 도면도 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를 각 방향으로 넣어보거나 혹은 없애거나 하면서 총 5가지 정도의 안이 논의되었으나 이 모든 것이 결국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어쨌거나 의욕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도면을 연구한 설계사무소의 노고가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새삼 감사하다.




허가제출 도면이 반려되다



시공사도 설계사무소에서 정하는 것으로 논의된 후에 시공사, 설계사무소, 건축주가 만난 날에 설계가 변경되었다. 이때는 시공사를 일단 정하는 것으로 했지만 완전히 결정이 난 상태가 아니어서 다 함께 만나만 보기로 한 날이었다.


허가제출 반려 도면


허가제출 도면이 반려되어서 새로운 설계가 필요했다. 이때가 6차 설계 미팅에서였다.

주택 위는 근생이 불가한 것으로 판명이 남으로써 그동안 모든 설계가 다 물거품이 된 것이다. 2개월여 동안 열심히 미팅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안으로 설계를 했었는데 그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되어 버려서 마음이 아팠다. 특히 팀장님이 너무 수고를 하는 것이 눈에 선연히 보였는데, 설계가 반려되어서 시공이 미뤄지고 순행되어야 할 일들마저 다 어긋나기 시작했지만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근생은 주거 위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주거 위 근생 불가라는 것을 설계사무소에서 몰랐었던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그 외도 반려된 이유는 더 있었다.

리모델링 전에 베란다로 허가가 난 곳은 용도 외는 다른 것으로 허가가 불가했다.

따라서 그 방향으로는 반드시 창문을 내야 했다. 창문을 내어야 벽을 만들지 못해서 주거 등의 불법 공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모델링에서는 두 벽은 허물면 안 되고 유지되어야 했다.


또한 층고 높이의 변경도 리모델링에서는 불가했다.

담당부서에서 건축물 현황도와 대조하면서 가차 없이 설계는 반려되고 1달 정도의 기간이 그로 인해 밀리기 시작했다. 시공은 계획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건축가가 설계 도면이 반려된 후 다시 설계를 해야 하는데, 어떤 설계를 원하는지 생각하는 대로 다 말하면 해주겠다고 해서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주방은 2층에, 1층은 근생 확장, 3층은 방, 1,2층 욕실은 어차피 도면에 계획되어 있어서 그대로, 이렇게 주 요점으로 강조하면서 논의되었다.



완전히 바뀌는 설계 도면


완전히 바뀌는 설계도면은 7차 설계 미팅에서 진행되었다. 이때 건축가는 참석하지 않았다. 3층은 근생 대신 방이 들어서고, 주방은 2층으로 오면서 더 편리한 쪽으로 설계가 되긴 했다.


완전히 바뀌는 설계 도면


건축가가 근생을 강조하면서 집을 설계한 부분도 건축주 입장에서는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집이 아니라 상가를 강조하면서 내가 바라던 집의 목적에서 다소 벗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설계가 구청에서 반려되면서 오히려 집의 지위를 가지게 되어서 불만은 없었다. 그 대신 1층 근생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시공이 늦어져서 모든 계획에 차질이 심각하게 오기 시작했다.


설계가 완전히 바뀌면서 2층은 증축으로 변경되고, 대수선 증축이 되었다.

그리고 시공사가 결정되었다. 시공사는 우리가 따로 정하지 않고 설계사무소에 맡겼다. 설계사무소가 예전에 다른 곳에 건축을 할 때 서로 하고 싶어 했던 시공사였는데, 그때는 건축주가 다른 시공사를 데려온 바람에 못했던 시공사라고 해서 나는 그럼 같이 해보라고 승낙했다.

시공사도 설계사무소처럼 3군데 정도 견적을 넣어본다고 하던데, 나는 건축가나 시공사나 그냥 정했고, 설계사무소에 다 맡겼다. 그래야 일을 할 때 서로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한번 바뀌는 설계



그런데 다음 설계 미팅에서는 3층의 설계가 다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당연히 계단 위치와 창호 변경도 있었다.

베란다 확장 부분은 창을 내야 허가가 되어서 창문이 변경되었다.

다시 설계가 되면서 다른 집들과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창문의 위치나 창을 없애는 것으로 제안했다. 그 덕분에 옆집들과 창문으로 서로 보이는 부분들이 일절 없어서 생활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이제 완전한 현재의 집 구조로 설계 도면이 작성되었다.

물론 시공을 하면서 끊임없이 설계는 변동이 있었다. 막상 시공을 들어가면 현장 상황이라는 것이 발생하여서 시공사와 설계사무소가 서로 조율하면서 수정해가면서 집을 지었다.


설계변경이 있을 동안 구청의 원래 담당자는 전근이 되고, 새로운 담당자가 오느라고 그동안의 한 달이 또 비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담당자가 오니 더 까다롭고 '절차대로'라는 상황이 되었다.

완전히 바뀌는 설계와 담당자의 교체로 인해 건축까지의 기간이 근 2달 정도 지체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설계변경에 가서 오히려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임대가 없는 거주와 상가만 남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훨씬 바람직했기 때문에 설계사무소를 믿고 서로 조율하면서 도면을 수정했다.


흔히 설계변경이 되면 다른 건축주들의 책이나 글들을 보면 설계비가 추가된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리모델링 개념을 건축 사무소서 잘못 인식해서 구청에서 설계도면이 반려되어 건축사무소의 문제가 적잖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런 문제가 없었어도 설계사무소서는 그런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만큼 좋은 설계사무소를 만났다고 아직도 생각한다.


2020년 1월, <전원 속의 내 집>에 소개된 사진, 인테리어는 전부 깊은 바다색, 오른쪽은 쿠바의 바다



처음에 건축가에게 보여준, 헤밍웨이가 집필을 했던 쿠바의 그 호텔처럼 핑크에 박공지붕을 가진 설계와 많이 닮았다. 그리고 자재 등을 고르면서 쿠바의 그 깊은 바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를 잡던 그 바다를 생각하면서 짙은 군청색으로 선택했다.


레트로 한 감성 주택으로 짓겠다고 시작했던 머릿속 설계는, 이제 헤밍웨이가 글을 쓰던 그 쿠바의 핑크색 공간과 산티아고 노인의 깊은 바다색이 있는 공간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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