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스케줄표는 희망을 전당 잡힌 무지개

- 건축 스케줄표가 희망 스케줄이길 바라던 날

by 이지현



설계 계약서 작성한 날 건축주도 바쁘다



설계 계약서를 작성 후 공간 설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들었다. 아마 다른 건축사무소들 몇 군데 의뢰를 했으면 계획설계가 될 수 있을 그런 설계 초안이 나와 있었다.

그때만 해도 1층 가게, 2층 이상 주거란 공간분할만 생각했는데, 건축가가 설계한 도면을 보니 비로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평면이 입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하겠다고 연락했을 뿐인데 부지런하게 계획 설계를 해놓고, 건축주를 기다려주어서 감동적이었다. 다른 곳은 어떻게 하는지 의뢰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살다 보면 꼭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축주에게 집 짓기가 삶의 전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담보로 맡길 건축가를 선택했을 때, 다행히 좋은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서로 조율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설계 미팅 동안 계속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공하기도 전에 이미 삶은 조각조각 파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주도 설계사무소와 의논하고 머리를 맞대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리모델링 이전 주택 모습과 3층의 최초 설계도면


설계 계약서를 쓰는 날 바로 설계가 시작되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고 다 함께 현장답사를 갔다. 건축가가 실측 요청을 해서 매도인에게 양해를 구해 날짜를 가능한 한 빨리 잡았다.

구조안전진단에 관한 설계사무소의 요청 사항도 있어서 매도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건축주의 일이었다. (매매계약서에 특약 조항으로 반드시 넣어야 한다)


나는 매매계약서에 특약 조항을 넣지 못해 요청할 일이 생기면 매매한 부동산에 먼저 연락하고, 부동산에서 다시 매도자에게 연락하는 간접 연락 방식이 되었다. 그런 일들이 껄끄럽고 공연히 미안하게 되어 부담스러웠다.


현장 답사 시는 지하층 구조 및 정화조 용량과 위치를 확인했다. 이미 지하는 매립이 되어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었고, 이 부분은 추후 증축에서 3층 면적이 되었다.

근생 부분과 주거 부분은 분명히 주거 출입을 분리해야 한다는 구청 확인을 한 상황에서 출입문을 어디로 낼지도 현장에서 보면서 서로 의논했다.


옆집과 사이를 둔 골목에 주거 출입문을 내는 말이 오갔지만,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문은 남쪽이어야 했다. 길을 향해 있어야 방범과 우범의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다.

현재는 남쪽 출입구로 집으로 들어갈 때면 늘 밝다.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컴컴해서 앞이 잘 안보이던 골목이 입주 무렵에 가로등이 바로 집 앞에 서면서 너무 환해서 밤 같지 않을 정도다.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무엇보다도 기본 배관, 단열, 누수, 결로 문제에 신경 써달라고 강조했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분명히 최근래에 짓고 그런대로 고급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에서 살던 사람들이 취약한 단열로 인한 추위와 결로로 인한 곰팡이로 고생하던 것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배관은 집을 뜯지 않는 한 다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수는 딸이 서교동에 얻은 가게 건물이 상가주택이었는데, 건물 누수로 반지하 가게가 물에 잠긴 적이 있어서 이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다.

어렸을 때 주택에 살면서 늘 추웠던 기억이 있어서 단독주택은 추운 곳이란 선입견이 박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제 쓸데없는 기우였다. 건축 허가사항에 단열 기준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설계하는 중간에 건축허가 조건의 단열 기준이 또다시 바뀌어 더 강화되었다.

이후 시공사와 첫 미팅에서 단열 기준을 살펴보고는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라는 거네'라고 시공사 대표가 말했을 정도로 단열 허가기준은 매우 까다로웠다.

입주 후 겨울을 한 번 났는데, 난방을 일부 공간만 2시간 정도만 틀고 지내도 집 전체가 더웠다. 그만큼 단열기준이 까다로워져서 이제 단독주택의 단열은 거론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설계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건축가가 요구사항을 말하라고 할 때 단열, 배관, 누수, 결로 문제를 강조했다.




설계사무소의 질문 요청



하도 짧은 기간에 섬세한 계획도 없이 집 구매 등이 이루어진 상황이어서, 집짓기 책과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다 보니 건축가들에 대한 바람직한 이야기보다는 괴팍하고 개성이 강해서 건축주와 트러블도 많다는 쪽으로 더 읽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혼자 맘속으로 끙끙대기 시작했다. 학생이 선생 어려운 것과 같았다. 아니, 요즘 아이들은 선생 어려워하지도 않지만.


다행히도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 건축가가 먼저 어떤 집을 원하냐고 물었다. 한마디로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미리 장문의 글이라도 써올걸 후회가 되었다. 어떤 집 짓기를 한 분은 노트 한 권을 써갔다고 하던데, 생각하면서 후회했다. 건축가를 처음 만나러 갈 때는 요청 사항을 미리 잘 정리해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때 불쑥 팀장님이 집 짓기에 필요한 질문 요청 사항이 메일로 갈 것이니 식구들 각자 답변해서 보내주면 된다는 말을 했다.

설계사무소의 질문 요청 사항은 총 21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몇 가지 우리와 관련된 중요 항목은, 원하는 분위기의 집, 가족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요소, 가족 구성원별 거주 공간 내 요구되는 공간, 가족 구성원 간 집에 머무는 시간과 공간, 집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가장 신경 쓰고 싶은 공간, 집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식사 횟수, 건물의 기능성과 심미성, 기존 사용하던 가구 및 가전제품 정보 등이다. 이밖에도 질문 사항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집 짓기에는 크게 의미가 없는 부분이었다.


식구들 각자 메일로 답장을 보냈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이 설문 조사는 건축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보였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공간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딘가 하는 질문에는 다들 부엌이라고 했을 것이다.

협소한 주택인데도 촬영팀이나 오는 사람들은 집에 비해 부엌이 넓어서 놀란다. 우리는 부엌이 식사 공간이면서 모여 앉아서 떠들고 이야기하는 거실 공간의 역할로 늘 사용해서, 물어보지 않아도 부엌이 제일 중요한 공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중앙에 거실을 두어서 TV 시청도 거의 안 하는 우리에겐 늘 휑한 공간이어서 친밀도가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설계 시는 거실 공간과 부엌을 합친 기능으로 만들어주기를 원했다.

식구라는 의미도 사실 함께 밥을 먹는 관계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따라서 밥을 먹으면서, 다들 밤에 들어와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거실보다는 부엌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을 것이다.




건축 스케줄은 희망을 담보로



계약하는 날에 설계사무소에서 사용승인이 날 때까지의 스케줄표를 주었다. 그 표만 보면 매우 희망적이었다. 적어도 12월은 끝나는 공사였다. 가을에 착공이 되어서 3개월 여의 시공 기간이었다. 그대로만 된다면 모든 계획이 완벽해질 터였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많은 우여곡절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배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집 짓기의 정의였다는 것을 아마추어로서는 당연히 몰랐다.



건축 스케줄표


스케줄표만 아무리 눈이 빠지게 바라보아도 결국 입주는 계획보다 5개월 후가 되었다. 설계사무소도 당연히 전문가니 아무리 늦더라도 이 정도야 하고 넉넉하게 잡았을 터였다. 그래서 스케줄표에 계약 이후 약 5개월 후를 사용승인의 날짜로 산정했을 것이다.

가을에 이루어지는 최적의 공사를 기대하면서 건축주인 우리나 설계사무소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아니 설령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리모델링에서는 6개월이 그래도 마지노선 기간이니 무사히 안착하리라고 생각했다.


집을 빨리 짓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너무 빨리 짓는다는 것은 또 그에 따른 많은 부담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부실공사든지 어딘가 빠트린다든지. 순리대로 가기를 바랐지만 그래도 건축주로서는 스케줄표를 보고 우선적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게 되었다.


시공 자금 문제나 이사 문제(이문제가 가장 컸다) 등에 많은 차질이 오게 되었고, 결국 겨울 공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공기가 늦어지고 날씨에 좌우되는 일도 생기면서 하루하루 준공은 자꾸 늦어졌다.


담당 공무원의 인사이동이 생기면서 새 담당자가 오기까지 1달이 그냥 흘렀다. 담당자가 허가 직전에 전보됨으로써 3-4일의 기간이 한 달로 변했다. 공무원들의 적응 안 되는 융통성 문제는 언제나 있기 때문에 이것도 희망 담보에 넣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주무관으로서 허가 직전까지 간 사안은 마치고 가야 하지 않았나 싶지만, 건축 허가 문제는 또 안전 문제기도 해서 지금은 좋은 게 좋다고 이해하는 쪽으로 흘렀다.


또한 리모델링 집은 어떤 경우에도 구청에 보관된 현황도면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설계가 반려되면서 한 달이 흘렀다.


구조안전진단을 하면서 아무 기초도 없는 집이어서 기초부터 다시 하기 시작하면서 또 시간이 그냥 흐르기만 했다. 이런 문제는 외부로 드러나는 상황이어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외도 건축의 과정에서 다른 문제들도 비일비재했겠지만 건축주는 더 알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겨울 공사가 됨으로써 하자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과, 했다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다시 걷어내고 또 하는 시간 등 완벽하게 하기 위한 기간이 필요했다. 이에 따르는 비용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나중에는 안전하고 튼튼한 집이 최고라는 의미부여로 최면을 걸면서 모든 체념을 상쇄시키려고 노력했다.

결국 스케줄표를 계약 첫날 받았지만, 집 짓기에서는 희망도 너무 빡빡하게 담보를 잡히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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