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 실측 후 내린 결론
대수선 증축으로 결론
결론부터 말하면 집 짓기는 대수선 증축으로 이루어졌다.
집 지을 주택을 계약하면서 도장을 쾅 찍을 때만 해도 당연히 단순 리모델링 개념으로 생각했다. 이때 리모델링 개념은 구옥을 살짝 손봐서 레트로 한 느낌이 나게 꾸미고, 1층은 가게로, 2층은 주거로 하겠다는 매우 순진하고 무지한 생각이었다. 한창 대세인 구옥을 레트로 하게 보존하는 모습이 향수를 자아내고 왠지 멋져 보였다.
제인 제이콥스의 '도시도 하나의 생태계'란 말에 공감했고, 더구나 서울에서 한강변은 거의 공룡 같은 아파트 등이 잠식하는 상황에서 상수에 오니 골목길의 정취가 아직 살아있어서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땅땅 부수면서 무언가를 짓는다는 생각이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설계 사무소 PT자료
이 문제는 건축가를 만나는 순간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건축법을 모르는 매우 무식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단독주택을 사서 1층 만을 상가로 만들더라도 반드시 설계사무소의 설계를 거친 허가가 필요했다.
만약에 상가주택을 샀더라면 순진한 리모델링이 가능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상가주택을 사게 되면 단독주택과 가격이 정말 달라진다.
내가 상수에서 집을 구할 때는 상가주택 매물도 없었지만, 있더라도 이런 사안도 몰라서 아마 똑같은 결과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주택을 상가로 만들려면 무조건 건축가의 설계가 들어간 허가가 필요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구청의 허가를 통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리모델링 절차가 필요했다.
실측과 구조설계사 현장 방문
건축사무소와 계약한 이후 집을 실측하기까지 열흘이 걸렸다.
매도자에게 요청하기가 가시방석이 되지 않으려면 매매 계약서에 미리, 잔금 전이라도 매도자는 매수자의 설계 허가와 관련된 요청에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구절이 특약 사항으로 들어가면 좋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이런 특약조항을 몰랐기 때문에 설계 미팅을 할 동안 일일이 매도자에게 요청할 때 선물을 사 가지고 가면서 늘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실측을 미리 해야 설계를 구상한다. 그래야 부동산 매매 후 잔금이 이루어지는 3개월을 그냥 허비하지 않는다.
실측은 설계사무소의 팀장님 외 또 한 분이 1시간이 더 걸려 한 번으로 끝냈다. 자로 일일이 모든 치수를 다 재었다. 신기해서 물어보니 적외선 레이저가 나와서 정확하게 재는 것이라고 했다. 빨간 불빛이 재는 곳까지 정확하게 닿았다. 안 그러면 옛날처럼 줄자로 재면 어떻게 되겠는가.
리모델링을 할지 신축을 할지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실측은 집의 정확한 도면이 있으면 아주 쉽다. 맞추면 되니까. 집이 지은 지도 오래되었지만, 또 매도자에게 물어보니 자신들도 집을 고친 업자들이 행방불명되어서 찾을 수도 없어서 정확한 도면은 없다고 했다.
구청에 제출된 도면은 현재의 집과 너무 달라서 구청에서는 현재와 똑같이 다시 실측해오라고 했다.
설계사무소 실측 3D
리모델링을 위한 허가사항이었다. 새로 도면을 그려야 했다. 전부 일일이 실측이 필요했다. 실측은 설계사무소에서 하지만 실측하는 중간에 구조 안전 기술사도 방문했다.
기술사는 그날 와서 마당 타공을 해서 집 기초를 보기로 했지만, 거주 중인 집을 뚫을 수 없다며, 잔금을 치른 후에 타공을 하고 기초를 살피기로 하면서 돌아갔다.
사실 이때 구조기술사는 쳐다만 보고 갔어도 이미 집은 도저히 그대로 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표정으로 웃고 갔으니. 집을 실측하는 전문가들도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 도저히 이 집을 살릴 게 없다.
신축과 리모델링의 갈림길
신축과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일이 남았다.
신축을 한다면 4층까지 지을 수 있었다. 1층은 의무사항으로 반드시 주차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필로티가 되면 가게가 2층, 주거는 3층 이상이어야 했다. 또 도로선에서 후퇴하여 현재의 건축면적마저도 줄어들었다.
4층까지 엘리베이터 없이 일상생활을 하느라 오르내린다는 것은 너무 가혹했고, 대지가 협소하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리모델링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건축물이 지어진 때의 완화된 법 적용으로 법의 기득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점이다. 따라서 설계사무소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처음의 계획대로 리모델링이 최선의 방법이었고, 그냥 '리모델링을 하시라'고 권했다.
추후 알았지만 건축가나 시공사 측으로서는 신축이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권유했던 것은 대지 요건 및 건축주의 의견 등을 충분히 반영하고 배려해준 설계사무소 덕분이었다.
이외도 리모델링은 비용 산출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설계가 시작되고, 또 시공이 되면서 알았다. 안전진단, 기본구조, 골조, 설비를 얼마나 다시 활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우리는 기본구조인 벽체 전부를 활용하지 못해서 신축 같은 증축이란 말이 집을 짓는 내내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그 비용은 단순 리모델링만으로 끝날 때의 비용과는 천양지차였다.
설계사무소 실측 시 집 전경
신축은 규모에 따라 약 6개월 정도로 잡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기초 공사 및 골조 공사기간이 포함되고, 또 설계의 중간 변경 등이 겹치면서 3개월이 되겠다던 공사가 결국 신축을 할 기간만큼 더 들어갔으면 갔지 덜하지 않았다.
구옥을 리모델링하는 뉴트로 열풍에 잠시 마음을 두었지만, 그냥 지나치면서 관전하는 것과 실제 경험의 문제는 전혀 별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리모델링은 단순히 있는 것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건폐율과 용적률 산정, 일조권 사선 제한의 문제, 주차장 의무 설치 등의 지난한 문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리모델링에서 성공하려면 철거해봐야 건물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리모델링을 선택했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었다.
결국 철거가 진행되면서 추가 비용이 더 들었고, 구조와 단열 보강, 측량 후 구조 변경이 불가능한 내력벽을 이동해야 하는 일, 기초 바닥, 기둥, 보 등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야 했다.
벽 자체가 기둥과 보의 기능을 하는 내력벽은 이미 오래된 건축 연한을 가진 주택은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보면 맞다. 특히 조적조 건물은 이미 벽체가 약해져 있어서 보강해야 하지만, 그 보강이 사실은 새로 쌓아야 하는 문제였다.
골목과의 화음, 그래도 리모델링
리모델링에서 철거는 신축 철거와 달리 기계를 이용하기보다는 수작업에 의지해서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철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철거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서 구조 보강이 먼저 있어야 했다. 1층을 구조 보강을 한다고 해도 2층이 또 버텨야 하는데, 1층을 구조 보강할 동안 도저히 버틸 수 없는 2층이 또 문제였다.
70년대식 집들이 그렇듯이 추후에 구조 검사를 하니 내력벽이 하나도 없고, 다 보강을 해야 했다. 1층을 먼저 보강하지 않고선 철거조차 위험한 그런 집이었다. 그 무렵에 지어진 집들이 다 그렇다고 하였다.
집은 옛날 아궁이 자리인지 아주 좁은 평수의 지하까지 있어서 잘못하면 다 푹 꺼질 판이었다. 맨땅에 헤딩도 아니고, 맨땅에 그냥 벽 세우고 위로 올린 집이었다. 이층은 무너지지 않게 몇 가닥의 쇠막대기로 옆쪽의 골목에 쭉 늘어 세워서 2층을 받쳐두고 있었다. 집을 살 때는 그런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계약 후에 실측을 하러 가서 다들 2층의 형편을 얘기하면서 보니 그렇게 쇠막대기로 기울어지지 않게 받치고 있었다.
결국 설계사무소의 배려가 포함된 리모델링으로 결정했고, 그것마저도 짓는 중에 대수선 증축으로 가게 되었다. 법적인 문제는 건축 사무소서 알아서 설계에 반영하고, 감사하게도 구청에 뻔질나게 발품을 팔아주면서 건축주는 그 엄청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건축설계사무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축과 리모델링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건축주가 결정해야 한다.
건물의 용도, 어떤 공간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데, 그 최선마저도 설계, 시공, 거주의 단계까지 갔다고 해도 과연 다 알 수 있을까.
도시도 하나의 움직이는 생물이고, 생태계의 순환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제인 제이콥스의 말은 늘 감동적이다.
설계사무소에서 건네 준 자료를 보는 순간, 저 조밀하고 가득한 삶의 한 복판에 내가 들어가고, 마치 제인 제이콥스의 '미세 블록에 의한 경로'를 걸어가듯 여러 방향에서 소통의 자리가 생성된다고 생각해보면, 그때 신축을 하지 않고, 리모델링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