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의 익숙한 대문
최근 체스를 모르더라도 체스 드라마는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에 등장한 <퀸스 갬빗>을 보다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의 대문이 익숙했다.
어라~, 저거 많이 본 모양인데, 하다가 우리 집 대문과 같은 모양인 걸 깨달았다.
여주인공 하먼이 사는 미국집의 출입문과 구 소련의 체스 챔피언 보르고프와 두는 체스, 엔드 게임에서 여주인공 허먼이 승리한다. 넷플릭스 이미지
드라마 속 문은 엷은 옥색 페인트 벽에 노란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색이다. 꽤나 감성적으로 보인다. 드라마니 당연히 신경 써서 모든 배경을 구성했을 것이다.
게다가 <퀸스 갬빗>이 넷플릭스 드라마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보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여배우가 거주하는 집의 배경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허먼은 어린 시절부터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서 기숙학원에 들어가면서 약물중독과 후일 알코올 중독까지 가지만 특유의 끈기와 집념, 천재성, 담대한 성격으로 인해 마침내 여성으로서 전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이 작품은 비록 7 회지만 아주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고아 소녀를 둘러싼 세계의 단절감, 그러면서도 따뜻한 주변 인물들이 요란하지 않으면서 정겹고,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주인공을 에워싸고 있다. 혼자 세상을 걸어가야 하는 어린 소녀의 극기가 아마 전 세계 드라마 팬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그런 허먼은 양모의 삶의 비애도 보고, 죽음도 경험하면서 이 집을 물려받고, 또 이해타산적인 양부로부터 구입하기까지 집에 얽힌 에피소드도 따라가다 보면 참 쓸쓸하고도 씁쓸하다.
고아 소녀 허먼에게는 집은 마지막 보루인 가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보리 색의 대문과 푸른 페인트 빛의 벽은 희망과 따스함을 전달한다. 그리고 대문에 난 창은 바깥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다. 고아 소녀로서 가장 힘든 것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외로움과 단절이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그런 것을 은연중에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저런 대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주인공 허먼이 뛰어들어가는 문을 보니 갑자기 무척 반가우면서 마치 우리 집도 드라마 속 집처럼 급격히 이입해보았다.
문의 기능은 외부와 내부 즉 사회적인 기능과 개인적인 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우리는 집을 지으면서 기존 주택에 있던 담을 허물었다. 그리고 담은 없애달라고 요청했다.
폐쇄적인 방식을 우리는 모두 싫어해서 일단 담장은 없앴지만 그렇다고 외부의 열린 시선이 집 내부에까지 고스란히 연장이 되면 안 되어서 대문은 좀 폐쇄적인 문을 하고 싶었다.
대문속 창은 세상에 내민 손
준공 허가 서류 넣기 직전에 현관문을 달게 된다. 사용승인이 나려면 완전히 그 집에 입주해서 사는 정도가 되어야 허가가 떨어진다.
그때가 3월 중순이었다.
설계사무소에서 빨리 현관문을 골라달라는 재촉을 받고서야 건축주로서 사실 미리 다 골라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설계사무소에서 말해서야 비로소 고르기 시작했으니 미리 설계사무소에 문의해서 여유 있게 고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공이 또 언제 맞춰질지도 모르니, 준공 전에는 시공, 설계, 건축주가 정신없이 자재를 고르면서 기일을 맞추어야 했다.
처음 고른 현관도어는 단순하면서도 어느 정도 폐쇄성을 지니고, 실내 가구 색들과 맞는 철재 현관도어를 선택했었다. 수입산이어서 가격이 좀 나갔지만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설계사무소서 도어 회사에 부랴 사랴 납품을 넣으니 준공 서류를 넣을 기간 안에 현관 도어를 맞출 수 없다고 했다. 제작을 해외서 하는 문이었다.
회사 제품에도 제작 주문이라서 시간이 걸린다고는 쓰여있었지만 건축주로서 문을 그렇게 빨리 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시공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다시 급하게 문을 골라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식음을 전폐하고 도어 회사마다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기 시작했다.
건축주분들이 쓴 책들에서 읽기는 현관문을 고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미리 걱정부터 앞섰다. 대문을 만드는 곳은 거의 대부분이 지방이었다. 아마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대문의 특성상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일일이 가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도저히 그런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제치고 문을 찾느라 하루 종일 매달렸다.
왼쪽은 기존 주택의 담과 대문으로 철제 문은 뒷마당에 보관중, 오른쪽은 현재 대문, 주변 포인트 타일은 단토타일
우리는 결국 핑크색 벽에 흰색 대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대문에 불투명 유리가 들어있는 개방적인 문이 되고 말았다.
대문이란 그 집의 첫인상이다. 담장으로 높이 둘러쳐진 집을 볼 때면 그 담장 너머로 무엇이 가득 있을지 호기심보다는 위화감을 먼저 받는다. 우리는 외부와 차단되고 단절되는 공간보다는 이웃에게 보다 가깝고 다정한 집이 되길 원했고, 핑크색처럼 결국 누구나 바라보면 웃을 수 있는 색을 선택하듯이 대문도 다정하고 감성적인 것을 택하게 되었다.
주택의 대문이 치안이나 보안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 시조나 가사에 흔히 나오는 '시비(사립문)'일 수는 없지만 안과 밖을 경계하지 않고 누구나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는 대문을 우리는 선호했다.
보안 문제야 CC TV를 이용하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스원에서 전기만 순간 깜빡거려도 득달같이 어찌나 바로바로 달려오던지 이제는 방범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왼쪽부터 남측면도, 대문벽은 아이보리색 단토 타일, 긴 타일 모양을 주었는데 아마 양이 부족했던 듯. 외벽은 핑크 스터코
문 둘레에 사용한 단토 타일은 수입산으로, 당시 타일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탐색하다가 설계사무소에 단토 타일을 하면 좋겠다고 알려주었다. 추후 시공 중에 왔더니 우리가 알려주었던 타일 모양은 아니었지만 설계팀에서 골라서 이미 벽을 치장했다. 이러든 저러든 이쁘면 되니까.
방송국에서 촬영차 오신 PD님이 집 촬영을 전국적으로 많이 하고 다니지만 이런 타일은 처음 봤다고 예쁘다고 하면서 촬영도 하니 다행이었다.
그냥 타일을 이런 종류로 해주세요라고만 하니 설계팀에서 알아서 아이보리 색으로 골라서 네모나게 특이한 타일을 잘 붙여놨다. 이 타일을 선택할 때 수입산은 그 양이 부족하므로 견적을 잘 내야 한다.
수입산 타일은 적정한 양이 구비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단점이다. 어떤 것은 면적 대비 부족하다고 하는 것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이런 타일은 대개 포인트용으로 쓴다고 하니 우리도 대문 주변만 붙였다. 어차피 포인트를 주는 것이니 좀 비싸더라도 이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다.
영동대로에 있는 아메리칸 스탠더드 본사에 가니 한 벽에 가득 멋진 타일들이 많았다. 보통은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일반 대리점으로 많이 가는데, 우리는 본사로 가서 골랐다.
현관문 둘레의 타일의 면적이 그렇게 넓은 부분이 아니라서 외벽과 조금 차별적인 타일을 설계사무소에서 시공하고 싶어 했고, 우리도 좋았다.
솔직히 외벽의 스터코는 핑크색을 내려면 가장 적절하기도 했지만 시공비가 다른 외장재에 비해서 저렴하기도 해서 안성맞춤으로 선택된 것이었다.
현관문 설계도. 대문이 남쪽이라서 전개도에 치수 상세, 현관문의 부속품 설계, 현관의 3D 설계
지금의 현관문을 흰색으로 하니 핑크 벽과도 어울려서 동화적인 감성이 배어 나왔다.
문은 제작이 아니라 바로 규격품으로 사 올 수 있었다. 설계사무소에서도 보고는 만족한 듯했다. 모든 시공 자재가 사실 건축가의 마음에 들어야 했었다. 미적인 면에서는 은근히 굉장히 까다로운 건축가였지만 우리로서는 나쁠 리는 없었다.
현재의 문은 처음 선택하려고 했던 문보다 쌌다. 대문에 붙은 불투명 유리가 과연 단열이 잘될까. 혹은 내부가 드려다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로도 없고, 한기도 새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높이로 이중 유리였다. 단열이 아주 잘되어 있어서 가끔 먼지만 잘 닦아주면 매일 동화 속 문을 통과하는 느낌에 즐겁다.
문 시공비에는 대문 비용에 타공 비도 다시 계산이 들어간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현관이지만 중문도 설치했다.
왼쪽부터 중문 설계, 오른쪽은 주거출입문 설계
설계 도면은 중문과 주거 출입문으로 상세히 설계가 되어 있다. 설계 도면을 살펴보면 그냥 여기는 이거 하면 되겠다 저거 하면 되겠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시공 전에 설계가 되어서 시공팀은 설계 도면만 보면 그냥 그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설치된 것은 도면상과는 조금씩은 다르다. 중문도 슬라이딩 문이지만 목재가 아닌 철재 등이거나, 주거 출입문도 철재가 아닌 대문이 되었다.
설계사무소에서는 매우 세밀하게 설계를 한다. 그래도 막상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 현장 상황이 바뀌면 또 시공팀과 의논이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니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시공의 어려움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리모델링 주택의 대문은 상가의 대문과는 분리되어야 함도 필수다. 이런 부분도 주택을 설계하기 전에 미리 지자체 담당부서에 이미 다 질의되어 있어야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엘리자베스 허먼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마치 우리 집에 들어가는 느낌으로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기도 처음이었다. 비록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따뜻한 응원을 보내면서 보았다.
멋진 대문을 가진 드라마 한 편이 아직도 마음속에 꽂혀 있다. 대문에 난 창을 통해 세상에 손을 내미는 한 고아 소녀의 인생 여정이 물결처럼 마음에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