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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an 06. 2021

보이스피싱 3종 종합세트를 다 섭렵했다

- 피터와 늑대의 수준으로 전락한 보이스피싱의 심각성


안전불감증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택으로 오니 사방에 CC TV라서 안심이 되긴 하다. 여성 안심길이라는 표식도 집에 들어오는 길목만 해도 쭉 써져 있다. 그리고 집 앞은 밤새도록 가로등이 켜져 있어서 대낮 같다.

비상벨이 골목 곳곳에 달려있다. 


사실 아파트서 살면 각자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걸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깜깜이다. 경비실은 각 동을 지키느라고 안에 들어있지 아파트 길목마다 있지 않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골목에 와서 사니 집 안으로 넘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릴 때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아파트서 살 동안은 나도, 앞집도, 옆집도 납치 보이스피싱으로 다들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당한 사람도 있었다.




집을 짓고 사방에  CC TV를 붙여놨다. 세콤은 센서가 살짝만 어디 닿아도 어찌나 빨리 달려오는지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보이스피싱 3종 세트를 다 거치고 나니까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문자 보이스피싱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주민번호와 폰 번호는 공공재가 된 지 이미 오래전이다.

매일 같이, 하지도 않는 주식에 관한 스팸 문자를 3통 이상씩 받는다. 물론 차단부터 눌러버리지만 그래도 늘 이상하다.


어떻게 이렇게 끈질기게 번호들이 생성될 수 있을까. 대포폰이라고만 하기엔 그 번호의 개수가 놀랍고, 그것만이 아니라 해외번호로 스팸문자, 검사나 우체국 사칭 전화(전에는 이런 전화는 혹시 무슨 문제일지 몰라서 전화를 끊고 진짜 검찰청이나 우체국에 전화를 했었다), 심지어는 요새는 물건 산 적도 없는데 운송 번호가 잘못 입력이 되어서 운송이 어려우니 어쩌고 하는 스팸 문자까지.


날로 달로 일취월장하는 스팸에 대응하는 지능적인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홀랑 넘어가기 딱 알맞다.



새해가 시작되자 받은 보이스피싱문자. 맞춤법 엉망인 이 정도는 애교로 보인다.


이번에 받은 문자는 오히려 애교다. 딱 봐도 이런 맞춤법도 엉망인 아이들이 있을 턱도 없는데 혹시나 넘어가는 사람 있나 하는 피라미 낚시용 보이스피싱 문자로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태였다.




카톡 보이스피싱



어떻게 이럴 수가. 카카오 톡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수준이 최첨단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딸과 똑같은 카카오 톡이어서 홀라당 넘어갈 뻔했다. 거의 믿으려는 순간.....

부엌에서 음식 만들 때 카톡을 보냈던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고나 할까.

바빠카톡을 받고 답장할 시간이 없었던 바람에 다른 아이들에게 토스해버리자 바로 해킹인 게 드러난 경우다. 안 그랬으면 아마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을 수도......


사연인즉,

밑반찬을 만들랴( 어머니 갖다 드릴 밑반찬까지 해야 하니 바쁨!!!), 밀렸던 청소까지 하랴, 완전 눈에 불이 나도록 번쩍번쩍 일을 하는데 갑자기 일본에 유학가 있는 딸의 카톡이 똬악~ 떴다.


폰이 고장이 나서 맡겼고, 컴퓨터로 카톡을 하는

(여기까지는 넘어갑니다. 나도 카톡을 컴으로 거의 하고 있으니)


선배의 심부름을 급히 해야 하는데 (본인이 선배지 웬 선배??? 의문의 냄새 슬슬)


컬처랜드의 문상을 급히 100장을 구입해달라

(아이고, 살 줄 모르니, 다른 애에게,  반찬 만드느라고 불 앞에서 땀 비질거리며 바쁨 바쁨)


마지막은 다 했으면 핀 번호를 보내라.

(어, 이거 안 쓰는데. 가입도 안되던데라고 이상한 생각이 바로 차락 듦)


그래도 급한 일이 있을지는 모르니 다른 아이에게 컬처랜드가  뭔 말인지도 모르니 알아서 사주라고 보냈더니 바로 해킹당한 거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이의 카톡 그대로 정말 똑같았다. 그제야 살펴보니 이전에 아이와 주고받은 카톡 대화들이 실제로는 다 남아있고, 해킹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아이가 바로 일본에 카톡을 해보니 수업 중이라면서 답장을 바로 보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감탄을 했다가, 상대방이 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니 진짜 머리가 좋다고 해야 할지 패스해버렸다.

 

앞으로 카톡 보이스피싱 대처방법은, 한번 당해보고 내린 결론은,


1. 바로 그 당사자와의 이전 카톡이 남아있는지 살펴볼 것.

2. 카톡이 오면서 새롭게 친구 추가로 뜨는데, 번호가 바뀐 것이 아니니 이것도 이상이 있는 부분

3. 현금과 관련된 부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과 다시 한번 통화한 후에 처리하기.

4. 핀 번호를 보내라고 하면 이건 바로 해킹의 직접적인 신호

5.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내기(어렵겠지만)




전화 보이스피싱에는 강력계 형사들도 왔었다



언젠가 머리를 다듬으러 갔던 미용실에서 먼저 와서 파마를 하고 있던 엄마가 자기 아들이 잡혀있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충격을 받아, 바로 학원으로 연락을 했더니, 학원에서 버젓이 공부하고 있더라는 말을 했다. 그렇더라도 그런 전화를 받으면, 수명이 적어도 10년은 단축될 거 같다.


그런데 아파트에서 살 당시,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었다. 강력계 형사들까지 4명이 출동했다. 아이가 대학생이거나 그냥 길을 나선 상황일 때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세상이 너무 넓고,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며, 그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세상임을 깨달았다.


전화한 자는 아이의 이름과 아이가 학교 가는 교통수단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나가고 딱 차를 타고 간 시간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더군다나 아이를 바꿔 아이의 목소리로 남자들에게 납치되어 있고,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는 울음소리를 내고, 비명소리가 들리고, 할 때는 그냥 제정신인 엄마는 없기 마련이다. 그쯤에서는 모두 이성을 잃는다.


당시 분명히 아이와 여러 차례 대화까지 나누었다. 틀림없이 아이가 맞았다. 평소의 아이의 말투, 평소의 모든 행동까지 감안한 목소리까지 너무나 판에 박은 듯이 틀림없어서, 아니라고는 절대로 상상을 못 했다.

더구나 상대는 감방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며 짭새들에게 연락을 하면 바로 애를 죽이겠다, 는 말을 대놓고 전화로 하니, 너무 사실적이어서 더 공포스러웠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이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위치나, 엄마나 아이만 아는 비밀스러운 접촉을 위해 여러 말을 시키면서 말을 해나갔다. 여러  차례 대화가 오갔다.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대학생인 아이가 중간고사 시험을 치니, 평소와의 행동반경과 시간 반경도 다르다. 그런데 그것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면 도대체 어디까지 믿고, 믿지 않아야 하는지 분간이 안 선다.   


일단 아이가 울먹이면서 끌려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사실이라고 믿는다. 상대는 전화를 끊지도 못하게 한다. 전화기를 켠 상태로 들리게끔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2천만 원을 만들라고 한다. 신용카드와 인터넷 뱅킹까지 되는지 묻는다.

나는 계좌번호를 대라고 했다. 카드도 없고, 뱅킹도 못하니,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면 바로 은행 가서 부쳐주겠다고 한다. 물론 그 돈을 만들려면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아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책도 읽고, 영화도 본 깐에 이런저런 장면들을 떠올려 만일에 돈을 빨리 부쳐줄 때는 오히려 나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어쭙잖게 시간을 벌어보려고 했다. 게다가 웃기게도 상대방을 설득하려고까지 했다. 상대방도 흥분하고 있는 듯했다. 애는 풀어주고 나와 얘기하자며 모자라는 말주변으로 설득하니, 전화하는 자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다음 말이 준비가 안되었던지 묵묵부답으로 있었다.

그동안 다른 방에서 큰 애에게 전화를 해서 납치되었다는 동생에게 얼른 연락을 취하라고 했다. 납치되었다는 애는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았다.


그 사이 인터폰으로 부른 경비아저씨가 오고, 바로 경찰에 연락해서 경찰서 강력계서 왔다.

나가 있던 큰 애도 연락을 한 경찰서에서 강력반 형사가 또 왔다. 경찰서 두 군데서 강력계 형사들이 모인 셈이다. 속으로는 겁이 났다.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영화와 책에서는 적어도 그랬다.)


그 사이 큰애는 대학의 학적과에 전화해서 동생이 시험 치는 교실을 조사해서 직접 가서 확인해달라는 연락까지 취했다. 그러면서 이미 택시를 타고 동생이 시험 치는 대학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경찰들은 납치되었다는 애의 핸드폰으로만 연락했다. 당연히 아이는 전화를 안 받았고, 경찰은 애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계속 그러고만 있다.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웃겼다. 납치되었다면 어떻게 전화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경찰은 와서 납치되었다는 아이의 신상과 이름, 폰번호만 무려 수차례 물어보고 전화를 안 받는다는 말을 할 동안 전화는 계속 이어지고, 시간은 무려 몇 시간이 흘렀다. 그제야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아이가 다니는 대학으로 연락을 했다.

경찰이 대학에 전화할 동안 큰애가 이미 대학에 도착을 해서 조교가 아이의 강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당일의 시험과목과 시험 시간과 강의실을 확인하느라 또 한참 걸렸다. 이화여대가 너무 넓어서 전공과목이 아닌 상황에서 어디 가서 시험을 치고 있는지 알아보기만도 시간이 완전 오래 걸렸다. 아이는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는 중이었다.


결국은 모두 한시름 놓으면서 이 심각한 납치 보이스피싱 사건은 일단락을 맺었다. 달려와준 경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고, 경찰들은 일상이라는 듯 매우 시시한 얼굴을 하고 갔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작 그런 것이 아니다.

경찰들은 처음부터 보이스피싱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가 아주 많아서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어디 그런가. 절대로 아니다. 아이의 행동반경까지 다 알고, 애가 집을 나서고 약 20분 후에 아이의 교통수단까지 알고 전철역들까지 다 알고 전화를 했으니 이건 심각한 일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 미행을 했다는 소리다.




이런 일이 생기니 그래도 힘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믿을 곳이 경찰밖에 없다. 경찰의 진지함과 책임감 외는 믿을 곳이 없다. 천명, 아니 만 명의 부모가 전화를 할 때, 그 만의 하나, 천의 하나가 정말 사실이 될지도 모르니 경찰의 경험으로 보이스피싱이니 신경 쓸 거 없다는 말은 하지 말고 부모의 가슴 철렁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경찰에게는 피터와 늑대의 수준으로 전락한 보이스피싱이겠지만, 엄마는 천 번, 아니 만 번의 똑같은 전화를 받더라도 항상 자식 대신 목숨을 바꿀 수 있냐고 물어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경찰에게 전화 온 상대방을 알아낼 수가 없냐고 했더니,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답했다. 그냥 속수무책이다. 손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보이스피싱.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내 일이 되었다.

그래도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달려와 준 경찰이 고맙다. 그러나 비슷한 일을 겪는 바람에 시시하게 생각해서, 동생이 위급상황에 빠졌을지 모른다고 이미 행동으로 옮긴 큰애보다 대처상황이 많이 늦다.

모든 것을 위급상황으로 받아들여 대처해주길 우리 같은 힘없는 사람들은 또 바라보고 바라보는 경찰이다.  



대문과 가게에 붙여 놓고 간 마포 경찰서 순찰 알리미 표지,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모든 정보가 유출되어 아이의 행동반경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 섬뜩하다. 너무 지능적인 보이스피싱범들에 경찰이 더 지능적으로 대처해주길 바라는 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 일로 내가 사는 아파트는 각 동의 게시판마다 엘리베이터마다 납치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고 안내문이 붙었다.

알고 보니 앞동에 사는 부모는 이미 돈까지 부쳤다고 한다. 경고문을 보니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이미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나, 국가기관을 사칭해서 아주 사실적으로 전화까지 한 모양이다.

그러나 목숨이 걸린 납치형 보이스피싱은 사칭과는 다른 문제다. 그래도 민중의 지팡이니, 경찰은 끝까지 어떤 위험 상황이라도 시시하게 생각해주지 않길 바란다.


이 전화 이후에는 당시 고등학생인 아들을 납치했다는 전화 보이스피싱이 왔다. 이때는 바로 학교에 연락을 하고 집에서 5분 거리니 바로 달려가 보기까지 했다. 아이는 교실에서 수업 중이었다. 이렇게 중고등학생은 바로 확인이 가능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정해진 코스가 없는 대학생, 여대생, 여성, 힘없는 사람들의 납치형 보이스피싱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당해본 후에야 비로소 공포체험처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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