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여행』, 김훈
자전거 하나에 온 삶을 싣고 여행자는 떠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자전거를 타고 홀로 떠나는 사람도 부러워한다. 들풀과 나무와 한 몸처럼 느껴지는 자전거의 은륜에 햇빛이 타닥 튀어 오르는 모습을 가슴이 시리게 바라본 적이 있다.
드라마 속의 남녀 주인공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며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자전거는 아무래도 고독한 자를 싣고 우수에 젖은 채 달리는 것이 어울린다. 이건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자의 영원한 갈망이다.
20대의 어느 날, 답사팀 학생들을 데리고 섬진강을 지난 적이 있다. 전라남도를 돌아 경상도의 접경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던 그 아찔함은, 흘러가는 나이의 긴장과 맞닿아 있어 섬진강은 아직도 온통 그리움이다.
『자전거 여행』의 아름다운 문장 결 안으로 바로 그런 섬진강의 아스라한 은비늘 같은 물결이 흐른다. 혼자 흐르지 않고 홀로 뒤채지 않고 모든 것을 껴안고 느리게 몸을 풀고 있던 그 강물. 막 해산한 여인처럼 아무것도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던 그 강물이 흘러간다. 그래서 그의 자전거 여행에 편승해서 나도 편안하게 떠나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나 또 떠난다. 황홀한 여행이다. 힘겨운 자 옆에서 나는 힘을 뺀 채로 고요하게 설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남해안 경작지를 지나며 여행자는 냉이, 쑥, 달래를 만들어 내는 흙에 대해서 먼저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된장을 풀어야 제맛인 이 봄나물들은 마치 된장이 이 나물들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만 같은 황홀한 감동을 준다. 그는 ‘된장과 인간과 이 봄나물들이 치정관계’로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라고 말한다. 이런 치정은 매우 순박하고 어리숙하다. 이 역설적인 치정의 의미는, 거친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이 스며든 치정의 정의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나는 숟가락으로 그 봄 쑥국, 봄 냉잇국을 떠먹는다. 숟가락 없이 먹는 일본 음식이나, 포크와 나이프만 가지고 먹는 서양 음식의 그 밍밍한 맛은 숟가락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모름지기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는 힘에 우리의 맛이 깃들어있다. 숟가락으로 후우 불어서 된장국물이 입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그 순간, 고요히 흐르는 강물 한 언저리를 입에 품는 시간이다.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시간의 맛’의 미나리는 ‘톳 나물과 두릅나물의 질감에 가깝다’ 고 여행자는 말한다. 이것은 내 입맛이 받아들인 느낌과는 다르다. 톳과 두릅은 어찌 보면 그 안에 바다와 산을 품고 있어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미나리는 얕고 넓고 멀다. 톳은 살짝 데쳐내는 맛에 달렸고, 두릅은 살 속에서 솟아난 가시를 버려야 제맛이다. 미나리는 거머리를 떼어내기 위해 쇠칼을 그 위에 얹어두는 시간을 지나야 맛이 생성된다. 이 나물들은 직접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공력을 가진 후에 이들의 질감이 별개로 결정된다. 연초록의 톳이 희고 부드러운 두부와 함께 끌어안은 맛은 아, 그야말로 순박한 치정이다.
‘쑥은 이 세상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슬픔과 평화가 있다.’고 한 여행자의 말이 공감 간다. 쑥은 세상의 저 밑바닥을 샅샅이 훑고 그 씁쓸하고 싸한 맛을 지닌 채 봄날, 슬픔처럼 지천으로 제 몸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경강 가는 길의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 사이 자전거 여행에는 동죽조개가 나온다. 동죽은 껍데기의 검은 줄이 나이테다. ‘성긴 테는 조개의 여름이고 촘촘한 테는 조개의 겨울이다.’는 여행자의 말에, 이제부터는 조개의 신산했던 삶을 헤아리며 맛보아야 하는 아릿함을 배운다. 흔히 물총 조개라고 불리는 동죽은 칼국수나 조개탕으로 먹는다. 동죽에 구멍이 뚫려있다면 그것은 왕 좁쌀 무늬 고둥이 구멍을 내고 속살을 꺼내 먹은 흔적이라고 한다. 그 단단한 몸도 상처를 입고 살아야 하다니, 하물며 연약한 몸을 가진 것들이야.
‘지리산 자락에 고로쇠 물이 오를 때 즈음이면 고창 뻘밭 조개도 덩달아 물이 오른다.’는 속담처럼 조개는 봄에 맛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는 구례를 지나며 재첩국을 예찬한다. ‘음식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식물이 쑥이라면, 그 동물성 짝은 아마도 재첩국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집 앞 공터에 모래 무더기가 쌓여 있으면 두꺼비집을 만들기 위해 팔뚝까지 그 모래 속에 푹 넣었다. 그럴 때 손바닥에 달려 나오는 건 손톱의 반쯤 크기의 재첩이다. 그렇게 작은 조개가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그래서 여행자가 푸른 부추를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재첩국의 국물 빛깔이 푸른 안개 같다고 한 건 재첩국을 먹을 때면 나도 느꼈던 절망 같은 맛이다. 작은 생물이 만들어내는 만만치 않은 원형질의 응결처럼 사람을 잠시 구도에 들게 하는 음식이 어디 쉽겠는가.
영일만으로 들어간 여행자는 회 맛에 잠시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도다리는 양식을 하지 않고, 광어 우럭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회라고 들었던 듯하다. 실제로 회가 천지인 고장에서 살았던 내게 도다리는 그 당시 아주 흔한 회였다. 뼈째로 마구 잘게 썰어 막장에 푹 찍어 먹었다. 정말 회를 먹을 줄 아는 사람은 초고추장이 아니라 막장에 푹 찍어 먹는다.
도다리는 고소하기도 하려니와 값도 쌌다. 광어는 그냥 미역국에 넣어먹는 생선 정도로나 여기던 때였다. 우럭은 시원한 매운탕이나 해 먹었다. 이런 회들이 지금 비싸게 팔리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고 회마저 내 편이 아닌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편치 않다.
피데기는 동해안에서 반 건조 오징어라고 비싼 값에 팔린다. 바다가 있는 도시서 살 때, 피데기는 그냥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오징어나 문어 등의 종류를 칼로 되는대로 삐져서 길고 긴 겨울밤에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다 뭉뚱 거려 피데기라고 불렀다. 이제는 이것들도 비싼 음식이 된 것을 보면 해산물들이 인간의 야박함을 오히려 비웃지 않을까 걱정된다.
여행자가 ‘멸치는 양식되지 않는다. 모두 자연산이다.’라고 말하듯이, 멸치 회는 어시장에서 한 무더기씩 팔면서 덤으로 한 무더기를 더 얹어줄 정도로 값싸고 싱싱했다. 한 여름날, 살짝 삶거나 날것 그대로의 멸치 회에 막장을 찍어 상추쌈에 먹으면 비린내도 없이 좋았다. 어시장이 멸치 비늘들로 반짝거릴 정도로 산더미처럼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바다마저 늘 반짝인다고 생각했을까.
여행자는 진도 소포리의 눈밭에서 뽑아온 겨울 배추와 대파들을 된장에 찍어서 날로 먹는다고 하는데, 된장이 없어도 막 뽑아먹는 대파는 뿌리가 들척지근하다. 충북 영동군 도마령에서는 칡을 100킬로를 캐면 44만 원을 번다고 한다. 노련한 등산가도 30킬로를 넘지 못한다는데, 칡을 지고 산길을 오르내리며 6남매를 키운 사람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어릴 때 동네를 찾아온 칡 장수는 대패로 칡을 스윽스윽 밀어서 주었는데, 입 가장자리가 갈색 물이 들도록 불룩하니 씹고 다녔다. 그 칡 등걸의 굵기는 어린 우리의 몸통처럼 굵었는데, 어린 자식들을 위해 그 칡덩굴을 지고 다닐 아버지의 등은 얼마나 단단할까. 뜨거운 단단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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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가 다다른 전라북도 임실군의 마암분교는 밥통과 국통과 반찬통이 본교에서 분교로 오면, 6학년이 달려가서 받고 5학년들이 밥을 퍼주고 1,2, 3학년은 줄을 선다고 한다. 다 먹고 나면 6학년이 설거지를 하고 4학년들이 식판을 모아 챙기고, 6학년들은 모아놓은 밥찌꺼기를 다시 아이들의 양동이에 나누어준다. 이제 돼지나 개가 먹을 차례다.
이를 보면서 여행자는 삶의 질서는 이렇게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진리는 공부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나르는 돼지 밥통 속에 들어있다고 보았다. 내가 어릴 적에도 동네의 돼지나 개 키우는 집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남은 음식들을 모아갔고, 그러면서 서로서로 말을 섞고 정담을 나누었다. 나는 남은 밥들을 옆집 노 씨 집의 돼지에게 자주 갖다 주었다.
이렇게 우리의 음식은 혼자 탐욕스럽게 먹고 끝나는 화려하고 번잡한 음식이 아니라 바로 다 함께 먹는 것이다. 봄 쑥의 흙 향기에서 시작해서 아이들이 먹고 난 밥을 돼지와 개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에서 끝나는 여행자의 오래고 수고로운 자전거 여행기가 너무 짜안하다. 개나 돼지와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리고 그 배설물이 닿은 땅에서 향기로운 쑥과 봄나물을 캔다. 소박하고 질박한 음식들이 그보다 더 맛깔난 글에 된장국처럼 풀어져 개운하다. 자전거 바퀴의 그 원형이 자연의 모든 회귀 및 순환과 닮아 있다는 것은 더 흐뭇하다.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 고 루이스 스티븐슨은 말한 적 있다.
가끔씩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그 틈틈이 끈기 있게 살아나는 쑥과 냉이를 넣고 끓인 된장국을 호로록 마셔보면, 마음에 뭉클하고 뜨뜻한 기운이 흘러들어 우리를 괴롭혔던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참 질기게도 우리를 놓지 않는 시간의 굴레를 잠시 훌훌 벗어던지고 남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 바닷가에서나 달짝지근한 회를 맛볼 수 있다. 속을 확 풀어주는 조개탕도 곁들여 먹으면 가슴 언저리,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바닷가의 향기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은 한자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잠시 벗어났을 때,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득 다가와 말을 건다. 그러면 얼른 손을 내밀어 악수하겠다. 자전거는 잠시 들녘에 세워두고......
『자전거 여행』, 김훈, 생각의 나무,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