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가구 고르기와 주방 설계
- 주부도 소외되지 않고 따뜻한 위로를 받는
준공 서류에 들어가는 주방 완성
주방이 완성되어야 준공 심사 서류가 들어간다.
그 사실을 알고서 부랴 사랴 주방가구를 어디 제품을 할지 논현 가구거리로 나섰다. 이때가 준공 서류를 넣기 딱 2개월 전이었다.
건축주가 잘 모르고 있던 터였는데 아마 설계사무소에서는 이미 다 정했을 거라고 보았던 듯했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잘 몰라서 무심하게 있다가 주방 가구 결정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제야 나섰으니, 집을 미리 계획하고 있다면 시간을 내서 열심히 다녀보는 것도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시간을 낼 수 없던 상황에서 딱 하루만 돌아다녀보자고 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서 3일 정도를 주방가구를 구경하러 다니게 되었다. 물론 연이어서 3일은 아니었고, 마음에 들지 않고 또 가구점들이 모여있는 것이 아니어서 잠실과 논현 등으로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때마다 빨리 정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까지 받았다.
건축잡지 <전원 속의 내 집>에 소개된 주방 사진. 건축사진 작가 진효숙 촬영
부엌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사실 주방을 아무렇게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대한 평수의 주방도 아니고, 오히려 여태까지 거주하던 아파트에 비하면 매우 매우 협소한 주방인데 이를 어쩌나 하면서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주방이야말로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공간이다. 먹는 것을 같이 하는 단어가 바로 식구다.
그런데 여태 껏의 주방은 실제로 음식을 장만하는 주부는 소외되는 공간이었다. 주부 혼자 뒤돌아서 설거지와 음식을 장만할 동안 식구들은 멀찍이 떨어진 식탁에서 음식이 마련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주부는 열심히 준비한 음식을 갖다 나르기도 바쁘다. 그런 상황에서 주부는 늘 허둥지둥거리면서 누군가 숟가락 하나라도 찾으면 다시 일어나서 싱크대까지 가서 주방도구들을 챙겨야 하고, 그릇이 필요해도 가야 하고 혼자 가장 많이 분주했다.
집을 지으면서 작은 주택이기도 하지만 주방과 식사 공간을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다.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이 손 가기 쉬운 동선을 만들어야 했다. 주부가 왕따 되는 동선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쨌거나 주방가구만은 건축주가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니 딱 세 군데 돌아보고 바로 딸과 함께 결정을 해버렸다.
바로 에넥스 주방, 인디고 색.
헤밍웨이를 생각하면서 핑크 집으로 했듯이,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나온 쿠바의 그 깊은 바다색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색감이었다.
딸과 둘이서 정말 이쁘다고 한눈에 가버렸다. 사실 그동안 에넥스 제품은 인지도도 없는 메이커라 아예 가보지도 않았고 엉뚱한 곳만 열심히 다녔다.
햇살 좋은 날, 논현 가구거리를 지나면서 전시장 너머로 이 인디고 진열 싱크대를 보고는 둘이 눈길을 딱 마주친 후에 말도 없이 바로 들어가서 계약해버렸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제품이었다.
주방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품는 것
주방 도장면은 여러 겹으로 몰딩을 파면 비싸다. 그래서 건축의 막바지라 시공비등 등 어려운 상황이 어떻게 닥칠지 몰라서 도장면을 민자로 설계했다가, 아무래도 이쁘지 않을 듯해서 다시 되돌아가서 딱 한번 몰딩을 파기로 했다. 한번 할 거 하면서....
이때는 방송사 촬영이 온다고 해서 치웠다
좁은 부엌에서는 한 겹 몰딩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여러 겹으로 몰딩을 파는 집은 아마 넓은 주방을 가진 집일 것이다.
손잡이는 무광 블랙 동그란 손잡이를 택했다. 좀 깔끔한 느낌을 내고 싶어서였다.
주방에 대한 로망이 강하다 보면 주방은 넓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넓은 주방을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아일랜드 싱크대 위는 온갖 잡다한 것들이 쌓이기 십상이다. 4-50평대의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면 거실 확장과의 시선 감으로 주방은 더 넓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치워도 날로 산적해가는 주방 물건들에 의해서 주방은 정리가 쉽지 않다. 이제는 협소 주택이 되니까 전부 보이지 않게 치워야 하는 실정이니 오히려 더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상판은 깔끔한 흰색으로 맞추었다. 인디고 색과 가장 어울려 보였다.
서랍은 수입품인 서랍과 일반 서랍이 있는데 아파트에서 살 때, 수입품 서랍을 사용했었는데, 옆면에 하나 가로놓인 철재로 인해 물건이 자꾸 끼여서 불편했다. 그래서 일반 서랍으로 주문했다. 에넥스 사장님도 그걸 권하니 이미 사용해보았던 내 생각과 일치해서 이의 없이 바로 정했다.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주방 가구는 도장 제품을 선택했다. 처음 갔던 유명 주방제품사에 비해서는 거의 반값이어서 계약을 하고 나오면서 만족했다.
도어 때문에 들렀다가 도어보다 주방에 반했던 송파에 있던 타제품은 에넥스의 도장 제품값으로 시트지로 가구를 할 수밖에 없는 견적이 나왔었다.
도장 제품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고 하니 그것도 마음 놓이는 일이다. 후드도 청소하기 깔끔하고 싱크대 안으로 밀어 넣어서 시공했다. 겉으로 후드가 보이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나중에 청소가 곤란한 것은 미리 방지해야 한다. 무조건 먼지 안 쌓이는 쪽을 원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세가 상부장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선반 하면 먼지 쌓이는 것 때문에 손사래부터 치기 때문에, 그리고 수납이 웬만하면 잘 되는 쪽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깔끔하게 상부장까지 다 설치했다. 상하부장을 다 하면 꽤 비용이 들지만, 견적을 내보니 에넥스가 아니고 다른 제품을 사용하면 적어도 배 이상은 비용이 나올 것이었다.
처음 주방 설계와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주방에 사용하는 용품들
에넥스는 린나이 3구 쿡탑을 올린다. 주방을 결정하면서 다녀본 가게들은 각자 취급하고 있는 품목이 다 다른데, 린나이 제품으로 사용한다니 그대로 통과, 결정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4구짜리를 사용했었는데 결국 사용은 늘 2구만 했었다. 다른 2구는 함께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2구만도 음식을 올려놓으면 쳐다보기 아주 바빴고 또 냄비나 팬이 다 올라가지 않아서 불필요했다.
주택에서도 현재 3구를 다 사용해서 써본 적은 거의 없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역시 1구만이다.
요즘 전기 사용하는 인덕션 전열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전 아파트에 설치가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두고 보았지만, 한 번 사용해보고는 다시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일단 음식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치고, 전기값은 아마 나처럼 주방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1인에게는 엄청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거지한 그릇을 두는 선반도 설치했다.
협소한 주택에서는 싱크대 위에 그릇 받침대를 올려놓을 수가 없으니 바로 설거지를 해서 올려놓는 공간이 매우 절실하다. 싱크대 설거지 공간에 맞게 하라고 에넥스에서 권했지만 나는 긴 것을 택해서 설치했다.
나중에 실제로 사용해보는 동안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그릇을 씻어 올리는 곳은 길게 할수록 좋다.
설계 시에 편의상 해놓은 자재, 주부의 편의대로 하면 된다. 개수대는 1개짜리가 편리하다. 수전은 이 모양으로 하고 싶었으나 설거지 거치대에 닿을 정도로 높아 사용 불가하다
수전은 유행하는 코브라 수전이나, 이미 아메리칸 스탠더드에서 골라놓은 수전을 사용해보려 했는데 설거지 거치대를 설치하려면 수전이 높은 것은 안된다고 해서 그 로망은 꿀꺽 접었다. 그래서 그동안 여태껏 쓰던 수전의 모양대로 또 사용하게 되었다.
싱크대는 처음에는 큰 것을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에넥스 사장님이 적당한 것을 추천했다. 직접 사용해보니 너무 큰 것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자재 설계 시는 팀장님이 나누어진 싱크대를 올려놓았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설계 시의 들어가는 자재를 설계한 것이라고만 했다.
아파트서 살 때 오크 원목으로 주방가구의 상부장과 하부장을 한 적이 있다. 그 가격으로 물어보니 어마어마해서 머쓱했다. 그 아파트는 매매한 지가 제법 오래되었으니 들어온 사람이 아주 잘 쓰고 있을 것이다. 그 집의 구매자도 싱크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파트를 꼭 사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주방은 여성들의 로망이라서 그런 듯하다. 아직도 눈에 가물, 삼삼한 오크 원목 싱크대지만 나랑 인연이 없던 주방이었다.
설계 시에 가스오븐레인지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배선등을 결정한다. 처음엔 위처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가 나중에 가전 회사에 문의 후, 또 직접 사용했던 바 불편해서 하지 않았다
키 큰 수납장은 오븐을 빌트인 해서 넣고 짤 예정으로 처음에 설계를 했었지만, 막상 오븐 대신에 아무래도 쓸모 있는 냉동고로 긴급 대체하는 바람에 키 큰 장이 좁아졌지만 그래도 수납에는 아주 쓸모 있는 편이 되었다.
이전 집에서 설계에서처럼 오븐을 가스레인지 아래에 둘지에 대해서 아주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파트에서 살 때 오븐과 가스레인지를 함께 쓸 수가 없었던 불편함이 있었다.
또 직접 가전 회사의 정확한 사용설명이 듣고 싶어서 질문도 했는데 당연히 두 가지를 동시에 이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냉장고 옆으로 오븐을 설치하는 것으로 설계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다시 오븐을 없애고 냉동고로 급히 변경했다.
카페 주방의 싱크대로는 베이비 핑크를 선택했다. 핑크색이 정말 사랑스럽다. 핑크인 집의 외관이나 가게의 콘셉트와도 어울리니 더할 나위 없다. 카페니까 그냥 민자로 도장면을 하기로 했다. 가게에 들어서서 보기만 해도 아주 설렐 듯한 색상이다.
주방가구를 결정하고 나면 건축사 사무소에도 주방을 정했다고 말해야 했다.
각 제품들의 치수며 색이며 세세한 부분까지도 설계에 반영되므로 서로의 안목이 맞아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방이란 가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당시도 우리는 주방을 먼저 강조했었다. 물론 현재는 집 사정에 의해서 크기가 많이 축소되고 아주 작아졌지만....
우리 문화에서 부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해서 식탁에서 예절이 이루어졌다. 요즘처럼 다 함께 식사하기 힘든 생활 속에서 이 문제는 아직도 더 유효한 것이 아닐까. 물론 예전에는 엄한 교육이 이루어졌겠지만, 요즘은 트렌드에 맞게, 만나기 어려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하는 아주 유용하고 유일한 공간이 어쩌면 이 부엌 일지 모른다.
집밥에 대한 향수가, 먹방과 쿡방의 유행 시대에서 아직도 유효기간이 다하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의 주방문화야말로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 공간인지 모른다.
일전에 KBS에서 촬영을 왔을 때도 PD님이 주방에 바로 앉아서 먹는거 정말 좋다고 하면서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동선상 식탁이 주방의 싱크대와 쭉 이어져 있으니 아주 편리해서 좋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나 식구라는 어감 속에서 나누어 먹는 행위야말로 가족의 유대와 끈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더욱 주방문화와 공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일단 잘하든 못하든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이걸 먹으면 다들 맛있다고 할까, 생각하는 게 늘 기분이 좋다. 다행히 아직까지 맛없다는 사람도 못 봤지만 (이거야 얻어먹어야 하니까 일단의 아부도 섞여 있을 것이지만) 건강하고 즐겁게 먹는 행위야말로 그 어떤 스트레스도 다 날릴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아들이 고3일 때 매일, 다음 날 먹을 식단을 서로 의논해서 짰었다.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하면 만드는 사람도 편해서 좋고 먹는 사람도 기분 좋다. 당시 알게 모르게 아들의 고3 스트레스는 음식으로 인해서 많이 희석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불행한 삶의 갈피에라도 건강하고 즐거운 음식이 달콤한 샌드위치 조각처럼 끼어들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조금이라도 따뜻한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