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로망을 충족한 세탁기 위치 설계와 유의점

- 마음에 드는 실내 설계 중의 하나

by 이지현



세탁기 앞은 욕실문과 마주 본다. 한 단 올려 세탁기를 놓았다



주택을 설계할 때, 세탁기 위치는 주부로서는 제일 큰 관심사 중의 하나다.

늘, 일상적으로, 그것도 매일 필요한 가전의 설치에 관한 설계는 매우 매우 고민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다행히도 건축 설계 시에 아주 효율적인 설계가 되었다.

욕실 문만 열면 바로 세탁기를 두게 되어서 매일매일 주부의 일손을 덜어준다. 각자 욕실에서 샤워하거나 세수하고 나오면 바로 세탁물을 세탁기 안에 집어넣으면 된다. 또한 젖은 수건들은 각자 말려준다.


주택에 이사 온 후로 한 번도 세탁물이 어디 있나 하고 방마다 돌아다녀 본 적이 없으니 그것만도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했다.

예전에 아파트서 살 때는 공용 공간인 세탁기 위치가 한쪽 구석에, 늘 어두컴컴한 곳에 박혀 있어서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빨래를 수합해서 집어넣으러 가려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아파트 생활에서 뭐가 그렇게 힘들까 생각하겠지만 빨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고 그 가짓수도 많은 것이라서 주부에게는 중노동에 속한다.

요즘 사람들의 견해로는 세탁기가 다 빨아주고, 압력밥솥이 밥해주고 하는 식의 생각을 하겠지만, 빨래가 절로 빨래걸이에 가서 턱 앉아서 말라 주는 것이 아니고, 밥솥에 밥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 마른빨래를 걷어서 개고, 각자의 방에 넣어주고, 또 빨래에 관한 다른 일거리들도 다 하다 보면 어떤 때 집에 있는 날은 청소와 빨래, 등등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안 난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고 순환적인 일이라서 매일 같은 일의 연속이니 쉽지 않다.


물론 옛 생활보다는 편리한 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편리함과 일의 시간 소요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각 가족들이 시간의 엇박자로 활동 시간대가 달라지므로 그런 일들은 주부의 시간을 오히려 고무줄처럼 늘린다.

그럴 때 어느 하나라도 주부의 일손을 줄이는 동선을 건축가가 연구하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일전에 KBS 방송 촬영 시에도 피디님이 이 부분을 너무 좋다고 실제 연기까지 하면서 찍었는데 텔레비전 방송에도 이 부분이 방송되어 나갔다.

그만큼 세탁기 위치와 욕실이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점은 주부의 일손을 엄청나게 덜어준다.




욕실과 마주 보는 세탁기 위치, 세탁기 옆으로는 냉장고와 냉동고



설계 당시에 세탁기의 위치를 설계도를 보면서 건축가가 설명할 때는 완전히 만족했다.

그런데 설계 미팅을 할 때, 아이쿠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세탁기를 바닥에 딱 놓도록 설계를 했던 것이다.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 세탁기의 아랫부분을 보면 열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을 열어 가득 찬 물을 빼주고, 또 그 옆의 거름망을 돌려서 끼어있는 더러운 것들을 세척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닥에 붙이면 물을 뺄 재간이 없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무시한다면 몰라도.


그래서 건축가와 미팅 시에 그 부분을 말했더니 그런 면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세탁기를 청소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건축가 분과 팀장이 다 미혼들이시라 그런 면은 간과한 듯하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는 한번 세탁기를 살펴보아야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시공 시에 세탁기는 한 단 쌓은 단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탁기를 놓는 설계에서 아마도 건축가는 미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았던가 싶다. 아무래도 한 단을 쌓은 후에 세탁기가 올려져 있으면 일목요연하고 정리된 느낌이 좀 덜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냉장고가 바로 옆이어서 똑같은 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계는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면이 최고다.

어쨌든 좋은 건축가를 만나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곤 했으니 고마운 건축가다. 설계를 할 동안 나는 많은 건축 관련 책을 읽었는데 그 어디선가 읽은 한 줄이 잊히지 않는다.


건축가는 주부의 마음이어야 한다.




세탁기 청소하기 좋게 1단 올려서 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배수한다. 그래도 물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저 물이 차 있어서 안에서 곰팡이나 등등 더러운 것들이 썩고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청소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세탁기 내부 청소도 전체적으로 한다.


주부에게는 가족 각자가 자기가 입었던 옷을 세탁기 안에 갖다 넣을 수 있도록 한 것만큼 만족할 설계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빨래를 하면 바로 뒤 베란다로 나가서 빨래를 널면 그만이다. 그 동선이 부엌을 두고 설계되어서 편리한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세탁기 위에는 건조기를 놓기로 설계되었는데, 건조기를 사려고 하는 중에 곰팡이 사건이 터지고 리콜을 하는 뉴스를 보고는 건조기는 사지 않았다.

사실 정남형 집이어서 건조기가 의미가 없었다. 주택에 와서는 햇볕에 빨래는 바짝 마르고, 옥상도 있어서 이불을 말리기도 정말 좋다.

그러니 설계 시에는 건조기 위치까지 설계하느라 전기 배선도 다 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주택에서 건조기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미리 건조기 설계를 해두는 것은 필요하다.


실내 습도 조절을 한다고 빨래를 널 때도 금세 말라버리고 만다. 주택의 여름 장마와 우기를 넘기면서도 빨래 말리는 일로 곤란을 겪은 적은 없다.

아파트는 통풍이 안되고, 환기도 안되어서 빨래를 말리려면 건조기가 필요했다. 사실 몇십 년간 아파트에서 살면서 여름이면 빨래 말리기가 고역이었다. 장마가 지면 빨래할 엄두도 못 내고 어떤 때는 빨래방에 들고 가서 말려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주택에 이사 온 후로 비가 쉬지 않고 3개월은 온 여름에도 그냥 거실에 두어도 저녁이면 말랐다.

비가 와도 바람에 잘 말라줄 만큼 주택의 환기가 최적인 셈이다.

햇빛이라도 짱짱한 날이면, 주택은 어느 공간이든 빨래 말리기에 최적이어서 옥상에 이불을 탁탁 털어서 말려보는 주부의 로망이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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