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샀던 유리컵이 이제 딱 한 개 남았다.
나머지 두 개는 다 제 처음 자리로 갔다.
어쩌다 한 번, 큰 소리로 바닥을 치고 간 것도 있다.
어쩌다 한 번, 슬쩍 상처 하나 남긴 것도 있다.
마지막 남은 유리컵은 함부로 놓고 굴려도
아직까지 홀로 버티고 있다.
때로 연하고 약한 것 중에도
홀로 강한 게 있는 모양이다.
남아야 할 어떤 이유가 있나 보다.
때때로 그 맑은 유리컵을 쓰며
왜 아직도 살고 있는지.
남아서 먼 하늘을 이고 있는지.
아직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오래 생각하는데,
가난하고 아슬아슬한 생에서 바닥을 치며
울었고, 슬쩍 상처도 받았고
접힌 추억이며, 잊힌 사랑이며,
저 투명한 유리컵처럼 모두에게
외롭게 안을 보이며 살았는데
생각해보면 아직은 더 살아야 할 이유와
홀로 강하게 버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유리컵 하나가 따라다니면서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