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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15. 2021

할머니의 광

        

1     

동트지 않은 새벽, 반짝이던 장독간이며 좌악 우물물을 길어 뿌린 마당이며, 검은 숯 하나 둥둥 띄운 간장 항아리며, 쓸고 다듬을 것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어둠을 펼쳐 마음의 글씨로 메모를 한다.

먼지 하나 없는 집, 오직 광에서 거미만 살았다. 사람이 가면 움찔하는 거미들은 어둔 광속에서 어둠을 먹고 살아 배가 통통했다. 쓸고 닦아 언제나 빤질거리던 윤나던 대청마루가 있던 할머니 집, 할머니는 언제나 어둠을 쫙 펼쳐 새벽마다 할 일을 메모했지만, 거미가 살고 있는 광, 늘 쌀가마니가 수북한 광은 할머니의 메모장에서 빠져있었다.       

   

2     

생각하면 설마 그 광속에 거미만 살았으랴. 쌀 냄새를 맡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살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어두운 허공에 대고 쓰는 메모장에도 빠진 광,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우루루 몰려사는 광은 다 버티면서 살게 모른 척 했다.

나도 꾸지람을 피해 숨어드는 광, 그런 날이면 거미와 함께 쌀냄새를 맡았다. 어둔 광속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숨을 쉬는 소리. 한번은 구수한 밥으로 살아갈 쌀가마니의 까슬한 냄새, 문 틈새로 할머니 비녀만큼의 햇살이 스며들어 둥둥 떠다니는 먼지, 푸르르 떠는 거미의 은빛 베틀을 바라보다가 지상의 양지처럼 꾸벅꾸벅 졸다 나오곤 했다.    

       

3     

지금 나, 할머니의 광속, 그 쌀 냄새로 이 생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

어디선가 그 때 그 거미, 그 거미의 거미들, 눈물 대롱대롱 반짝이는 수의를 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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