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집을 짓는 일은 집의 수명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살고 있는 동안의 심적인 불안감을 해소해서 안락하고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후유증이 은연중에 우리의 생활 곳곳에 잠재하고 있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붕괴할 당시 강남에서 줄곧 살았던 나로서는 그 공포감과 처참함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집을 지으면서도 안전한 집이길 바랐다.
지금은 빨리빨리의 문화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안전불감증은 결국 안이함과 속도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자로 온 구조 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
건축 설계 사무소를 정하고 구조안전진단을 하는 분이 오기까지 딱 25일 걸렸다.
설계사무소에서 구조기술사를 데려왔다. 집을 짓는 동안 설계사무소를 믿고 다 의뢰했다.
리모델링에서는 구조안전 진단은 필수다. 내력벽등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계사무소와 계약하고 10일 만에 실측을 했다. 그리고 그날 설계사무소에서 의뢰한 구조안전기술사도 잠시 다녀갔는데 안전진단 검사는 다시 다른 날을 잡아서 하기로 했다. 아직 잔금을 치르기 전이라서 원주인이 거주하고 있어서 폐를 끼치기 때문이었다.
실측하는 날에 온 구조기술사는 매도자가 이사 전이므로 마당의 타공은 이사 후에 한다고 했다. 먼지도 날리지만 소음도 심해서 집을 매도한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물론 집을 매도한 주인은 좋은 분들이라서 아마 말했으면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후 철거한 후에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에 아무도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예산 측정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며, 벽의 보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설계에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철거 후에 설계와 시공을 다시 해야 해서 거기서 생긴 오차는 이후 다 함께 힘든 일이 되었다.
집 매매 시의 유의점에서도 썼지만 매매계약 시에 매도자가 집의 수선에 적극 돕겠다는 조항을 써놓으면 훨씬 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매매계약 시에 대출 및 다른 필요사항 등의 협조 요청을 특약으로 쓴다고 했는데 무지하다 보니 이미 사후약방문이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설계 사무소 등에서도 할 일이 많았는데도 다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리모델링 전의 구옥과 대수선 증측으로 지은 후의 집
구조안전진단에 관해서
구조안전진단은 실측 후인 2주 후에 했다. 구조안전진단 검사를 실시하는 날은 오전 10시부터 건축가와 설계사무소 팀장도 모두 참석했다.
매매한 집의 옆집 주인도 나와서 진단 검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보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리모델링할 집과 자신의 집을 거의 동시에 지어서 안전 진단할 필요조차도 없다고 아주 확언했다.
그러나 이 단언은 금세 전혀 맞지 않은 말로 판명이 났다. 철거 당시에 보니 맨 땅에 그냥 올려서 집을 지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옆집도 결국 땅 위에 벽돌 쌓고 지은 집이라는 결론이다.
두꺼운 책자로 구조안전진단 결과물을 주어서 놀랐다
옆집 주인조차 집을 지을 때 다 보았다고 하면서 아무 문제없다고 했지만, 이미 그때 2층은 누가 보아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2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골목길에 쇠막대를 쭉 받쳐놓아서 그동안 무너지지 않은 것만도 매우 다행이었다.
이후 철거 시에도 매우 위험해서 철거하시는 분이 하지도 않으려고 했을 정도였다.
구조기술사분이 살펴본 후에 리모델링 집의 구조는 연와조로 판명이 났고, 구조보강은 필수라는 것이 드러났다. 70년대에 지어진 당시 집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철저하게 보강해야 허가도 나고 안전하다.
리모델링을 할 동안, 한국도 지진대로 접어들어서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판명이 났다.
따라서 지진에 강한 내력벽의 두께까지 법적으로 다시 변경되어 설계와 시공이 변경되었다. 그러느라고 또 시공이 늦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공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이 결정이 되더라도 결국은 짓는 도중에도 법이 바뀌면 그대로 따라야 했다.
하중과 철근 두께에 대한 구조 계산
건축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공 비용의 엄청난 증가가 갑자기 새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증가된 시공 비용을 갑자기 준비해야 하고, 그것이 어려운 사람은 리모델링을 하는 것을 어쩌면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대출 문제로 은행 등을 다닐 때 어느 은행도 집을 짓는다는 일에 대해서 신뢰조차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다 지어지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막상 시작하면서 구조안전진단을 하니 신축이나 다름없이 된 셈이다. 기초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새로 짓고 쌓아 올려야 했다.
그렇다고 서울의 마포구에서 협소한 땅에다 신축을 하면 1층이 사라지니 울며 겨자 먹기로 리모델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말이 리모델링이지 이후 누구나 '신축 같은 리모델링'이라고 서슴없이 표현했다. 솔직히 살면서도 리모델링의 감각은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집의 벽 위치만 리모델링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구조안전진단 후 그에 맞춘 시공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집의 안전을 위해서, 또한 신축을 다시 하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은 감수해야 할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또한 설계사무소에서도 그에 따른 설계를 다시 해야 해서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안전 진단 후에 보강의 문제는 다시 논의되어야 했고, 기초가 없이 지어진 집이 얼마나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집을 구입 시에도 안전 진단한 서류를 확인한다면 심리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장조사에서 체크해야 할 항목이 비교적 적어지므로 비용이 많이 감소한다.
따라서, 구조도면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구조도면”이 없다면 “구조계산서”가 이를 대체할 수도 있다.
구조안전진단서는 내진설계 확인서
구조안전진단 및 내진설계 확인서는 이후 96페이지에 달하는 책자로 받았다. 거의 대부분이 내진설계에 관한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주택이어서 내진등급 Ⅱ로 되어있다.
내진 설계란 지진이 발생한 후에도 구조물이 안정성을 유지하고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지진하중을 추가로 고려한 설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 도입하여 2015년까지 개정을 통해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물론 그 이후도 집을 짓고 있는 도중에 변경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 리모델링을 2층까지로 계획했을 때는 내진설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알았다. 그러다가 포항과 경주 지진의 여파로 지진에 대한 법규가 강화되면서 모든 건축물은 내진 설계가 들어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두꺼운 책으로 확인서를 받아보니 안전한 집에서 살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추가 비용이 드는 바람에 고생한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부실공사로 인해 고통받는 부분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집을 건축하려는 사람들은 늘 마음을 졸인다. 그리고 이후도 설계나 구조 계산에 맞는 시공이 제대로 되는지도 고민일 것이다.
건축주는 전문인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라서 집을 짓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시공사나 건축가를 믿지 않으면 도대체 집을 지을 수가 없는 정도였다. 집을 짓는 일은 그만큼 비전문가가 관여하기에는 수많은 공정이 따랐고, 어려운 일들로 점철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었다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지만, 시공사나 집을 짓는 것을 보는 사람이나 우리 집은 최소한 2-300년은 끄떡없을 거라는데 다들 의견을 모았다.
그만큼 설계 시보다 막상 시공을 하면서 보강이 필요한 데는 빔을 더 넣고, 일반 빔보단 더 두꺼운 것을 사용해서 정말 튼튼하게 지었다고, 한 번씩 시공현장을 갈 때마다 현장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믿어도 좋았다.
현장을 가끔 들를 때마다 모두들 열심히 애쓰고 있었다.
결국 우리도 설계를 하는 도중에 한국도 지진 안전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판명 아래, 다시 내진 설계의 기준이 바뀐 대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가끔 구조진단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 이것은 준공검사에도 들어가는 필수 불가결한 서류이므로 해야만 하고 무엇보다도 집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이규보의 수필 <이옥설>을 읽으면 집수리를 미루어서 나중에는 일이 커져버렸다고 쓴다. 우리 속담에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았다고 한다.
그만큼 처음부터 기초가 탄탄하면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오히려 그 편이 돈이 덜 드는 편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