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유리컵에 정종을 따르고 거기에 계란 노른자를 넣는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지 않고 그것을 후딱 먹어치운다.
한약방에서 사 온 마른 지네를 아주 고운 가루로 갈아 소주에 탄 것을 억지로 먹기도 한다. 이런 몬도가네식의 징그러운 처방은 외할아버지의 몫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한테 별다른 관심을 보인 적도 없고,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큼 튀지도 않아서 미술 시간의 만들기 숙제가 나오면 바로 외할아버지의 숙제였듯이, 내가 조금만 아파도 외할아버지의 민간처방이 즉시 들어왔다.
오래 살 것 같지도 않게 허약했던 내가 아이 셋을 낳고 아직까지 일주일 내내 밥벌이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외할아버지의 그 계란 술과 지네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생각해본다.
그런데 서양도 이런 처방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일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계란 술을 먹는 사람은 귀머거리이자 장님이며 벙어리인 루이자 캠피언이다.
루이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가정부가 테이블 가장자리에 계란 술을 두면 정확한 시간에 그 술을 마신다. 자기 전에 꼭 먹었던 걸 보면 장애인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던지 모른다.
계란 술은 순하고 맛있어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좋으며, 속을 편하게 하여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유지하게 해준다. 하루에 한 번 저녁 잠자리에 들 때마다 먹으면 좋다고 되어 있는데, 루이자도 그래서 규칙적으로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젊은 엄마들도 초기 감기에 계란 술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열이 많이 날 때 특히 효과적이라고 한다.
달걀흰자에는 우리 몸에 유해한 바이러스를 녹이는 효소인 ‘라이소자임’이 있으며, 또한 달걀에는 인체에서 만들 수 없는 8가지 필수 아미노산이 균형 있게 포함되어 있어 소화 흡수율도 높여 준다. 이처럼 과학적인 규명 이전에 이미 계란 술은 민간 처방약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다마고자케라고 하고, 우리가 계란 술을 만드는 방법과 유사하다.
미국에서는 에그녹(eggnog)이라고 하는데 술 대신에 우유가 들어가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만드는 방법은, 거꾸로 들어도 쏟아지지 않을 만큼 잘 저어 거품을 낸 달걀흰자에 소량의 소금과 바닐라 향료를 첨가하고, 응용으로 술을 첨가한다.
루이자가 먹은 계란 술을 ‘크림 같은 액체’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우유와 술이 첨가된 에그녹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에그녹은 피로 해소에 좋은 음료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달걀 ·설탕 ·크림 ·탈지유 ·콘시럽, 인공 향로를 혼합하여 만든 통조림 제품까지 시판되고 있어, 여기에 양주 · 시나몬 ·크림을 식성대로 섞어서 음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미국 남부 지방에서는 크리스마스 음료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루이자가 먹은 계란 술도 피로 해소와 숙면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국은 이 일상적인 식습관이 독극물을 타기에 적절한 것으로 악용되었던 셈이다.
루이자가 늘 먹는 이 계란 술에 범인은 스트리크닌 독약을 탄다. 이 계란 술은 루이자가 아니라, 집안의 장남인 콘래드의 큰 아들, 어린 재키가 마신다. 결국 재키가 범인임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결말로 이 작품은 끝난다.
이 집안의 가족들은 저마다 사이코패스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엔 매독이 주요 원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더불어 일본에서 선정한 세계 3대 추리소설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X의 비극, z의 비극, 최후의 비극(Drury Lane’s Last Case)으로 된 4권의 시리즈물 중 하나다.
충격적인 결말과, 탐정이 왕년의 유명 배우였던 드루리 레인으로 설정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본격적인 추리물답다.
자살한 백만장자 요크 해터가 써놓은 추리소설대로 살인이 전개된다는 트릭이 매우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자아낸다. 살인을 저지르는 자가 아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도 충격이거니와, 이미 써놓은 추리소설을 그대로 재연했다는 데 더 극적인 반전이 있다.
아마 요크 해터는 자살을 하면서 정신병적 요소들이 다분한 가족들의 해체를 원했던지 모른다. 아니면 비정상적인 가족들에 대한 요크 해터의 고의적인 살인 트릭이었던 지도. 그렇다면 그의 화학 실험실이 살인을 끌어내고 방조하는데 한몫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계란 술로 실패한 살해극을 만회하려고 범인은 다시 배에 독극물을 주입한다.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하는 음식은 독을 타기 가장 쉬운 것이다. 우리의 왕들은 음식을 먼저 맛보는 기미상궁을 곁에 두고 살았다. <조선왕 독살사건>이란 두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왕들은 목숨을 저당 잡히고 권좌에 앉아있다.
궁중의 암투와 비빈들의 암투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식 독살 사건. 드라마화한 <장희빈>에서, 장희빈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태희가 스스로 넣은 독약을 먹고 쓰러지는 장면도 있었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굴레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살해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처럼 잔인한 일이 있을까.
옛이야기 속의 계모들도 음식에 독을 타는 것을 손쉬운 살해 방법으로 택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서 만적은 친모가 밥에 독약을 타서 아우인 신을 죽이려는 것을 목격하고 출가한 후 소신공양을 하고 등신불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도 독약을 사용한 데서 비극이 비롯된다. 이밖에 <삼국지>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독초로 만든 독약 등, 독살에 관한 이야기는 작품 속이든 현실에서든 자주 등장했다.
심리학자나 범죄 심리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에 따르면 독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냉정하고 차분하며, 교활하고 머리도 좋아 창의적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독살은 충동적인 살인이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기 때문이다.
작품이나 역사 속의 음식 독살만이 다가 아니다. 지금 우리도 음식에 든 독을, 독인지 모르고 먹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식품 첨가물>이란 책을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가공할만한 음식 테러를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화학제품인 첨가물을 하루에도 수십 가지를 먹는다. 하루 세 끼를 우리가 집 밖에서 먹는다면 60가지가 넘는 첨가물을 먹을 수도 있다.
주부가 무심코 보는 장바구니 속에도, 알지 못하고 차리는 식탁 위에도, 우리를 조금씩 갉아먹는 독들이 있다. 이 독들이 쌓여 우리의 육체를 무너뜨린다.
<Y의 비극>을 읽다가 가장 정갈하고 지순해야 할 음식과 독에 대해서 문득 생각해 보았다.
음식과 독의 관계는 역사를 만들고 그러면서 역사를 새로이 쓴 매우 아이러니한 관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