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었던 사람들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을 집, 식탁을 차리던 부엌의 냄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사계절이 오는 바깥을 응시했을 유리문. 거실에 앉아서 함께 나누었을 대화들, 그 모든 모습들을 바라보던 조명들의 따스한 불빛.
그 모든 흔적들이 일시에 철거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이제 집은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길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의 부피만큼 축적되면서 지난할 길이 될 것임을 철거 순간에 깨닫기 시작했다.
구옥의 철거는 그냥 영화 속처럼 일시에 푹 내려앉아서 먼지로 화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야금야금 조금씩 덜어내기였다. 마치 그 집의 기억을 덜어내듯이.
시공사와 계약을 하고 주말을 넘긴 즉시 철거 서류를, 시공사에서 구청에 접수했다. 서류 검토가 일주일이 걸리는지 접수한 다음 주에 바로 철거를 들어간다는 카톡을 받았다.
추후 알았지만 기존 건물을 철거할 때는 꼭 선정한 시공사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 철거업체와 계약하여 건축주가 직접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전문 업체를 잘 알아서 해야 한다. 건축주가 직접 섭외해서 철거하는 방법은, 건축주가 시간적 여유도 있으면서 매우 해박하고 공부를 아주 많이 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시공사 견적에 이미 철거 견적도 들어있었고, 이때는 집짓기 초보라서 당연히 시공사만 철거를 하는 줄 알았다. 시공사도 마찬가지로 전문 철거업체와 계약을 맺고 하는 것이었다. 건축주 대신 시공사가 계약을 하고 일체 업무를 다 보는 것이다. 이때는 건축주가 편한 대신에 비용 지출이 더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철거는 집 짓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로 기억하기 때문에 시공사에 맡기는 것이 안전하고 안심이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부엌 싱크대가 있던 곳을 철거, 벽은 단열도 안되어 있고, 바닥은 기초가 없었다
집 짓는 시공 과정이 여러 단계가 있지만, 철거야말로 가장 위험한 작업이었다. 우리처럼 기초도 없이 집을 지은 구옥이었을 때는 철거하면서 자칫 사고가 나기 쉽고,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시공사가 처음에 계약한 철거 전문업체는 우리 집을 와보고는 도저히 위험해서 할 수 없다고 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철거업체를 다시 선정하느라고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또 바쁜 시공 일자가 일없이 지나가버린다.
실제로 철거 작업할 때 와보니 외형으로도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철거할 동안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기를 매일매일 간절히 빌었다. 철거 현장에서야 말로 사고와 이어지기 가장 쉬운 곳일 것만 같았다. 철거가 끝났을 때는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난 것만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따라서 건축주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철거업체와 계약을 맺는 것보다는 시공사에 맡겨서 보다 더 안전한 작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든다.
또 전문적인 시공을 잘 모르는 건축주가 하기엔 구비해야 할 서류 및 철거와 관련해서 폐기물 처리 등,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한다.
70년대식 구옥의 민낯
철거가 시작되는 날은 설계사무소에서도 현장에 나왔다. 구조안전진단검사를 위한 현장 실사 시에 타공을 미리 하지 못했는데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 불허였기 때문에, 모두들 호기심 반 걱정 반에서 보러 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로서 이미 숱한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사실은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막상 바닥을 파보니 아무리 헤집어도 기초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맨바닥이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한 집이었다.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하는 엄청난 리모델링 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설계 보강도 다시 해야 했다.
대문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마당의 수도가 있었는데, 설계 시에 마당 수도는 폐쇄하고 아예 없애는 것으로 말했었다. 마당의 물이 필요하면 1층 가게서 호스를 연결해서 이용하라고 말했다. 이왕 있는 수도인데 아쉬웠다.
대문 바로 앞이라서 설계상 미관 등의 문제로 말했거나, 수도를 이동하는 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니 그랬거나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우선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가 다 끝나고 이사를 오니 수도가 뒷마당 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수도가 필요해서 임시 이동해서 사용하던 것이 그대로 마당의 수도로 굳어진 것이다.
마당에 수도가 없었다면 주택 살이는 정말 힘들다. 꽃에 물 주는 일이나 마당을 청소할 때도 수도를 얼마나 편리하게 잘 이용하는지 모른다.
주택에서는 꼭 마당의 수도가 필수다.
1층 가게에 화장실이 있고, 또 주방이 있어서 호스를 연결한다고 해도 얼마나 불편했을지 살아보니 감당이 안되었을 것이다. 설계와 달리 이런 점은 또 시공에서 알아서 하는 것들도 있었다.
실내 공간이 좁아서 아주 작은 미니포크레인이 들어왔다, 천장은 합판만 대고 단열도 없다. 파도파도 흙만 나오는 바닥
바닥을 아무리 파도 기초 없이 지은 집이라는 증거만 나왔다. 천장도 마찬가지로 합판만 대고 단열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부실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중에 보강 구조를 댈 때도 천장의 두께가 고르지 않아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바닥은 파도 파도 흙바닥이었다. 실내 공간을 철거하기 위해 미니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작업을 했다.
이사 후 6개월이 지날 즈음에 우리 집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200여 평이 훨씬 넘는 구옥 단독 주택을 누군가 사서 건축을 했다. 그곳도 그냥 맨바닥이었다. 그 건물은 1층 단독주택이었고, 리모델링이 아니라 신축이어서 철거 등에 큰 애로사항이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보는 사람으로서 한숨이 다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2층이어서 더 위험한 것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2층이 무너지기 직전이어서 무엇보다도 최대한 안전에 유의해야 했다. 현장의 누구라도 안전불감증이 있었다면 언제라도 사고를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70년대 지어진 집들의 민낯이었다. 그 당시는 건축허가며 집 짓기가 얼마나 날림이었는지 잘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지방 도시에서 살 때도 마을에 집을 지을 때 보면 목수들이 그냥 뚝딱 짓고 했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벽 세우고, 미장이가 시멘트 바르고 목수가 와서 한번 쓱 대면 순식간에 지어졌다. 그래서 집은 그냥 지어지는 줄만 알았다.
미니 포클레인으로 1층 내부 철거직업 중
일단 1층 내부를 먼저 철거하기 시작하면서 다들 난감한 상황이 되었지만, 철거는 시작되고, 집 짓기는 발을 떼었으니 물러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앞으로 쭉 나갈 일만 남았는데, 그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집짓기 전문가들은 집을 준공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닥치는지 사실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상황의 강약이 다를 뿐이었다. 아마추어 건축주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집이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건축주가 편한 순간은 끝났다.
이제부터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서 시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이었다. 이것도 설계사무소는 건축주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한 모양이었는데, 정말로 우리는 까맣게 몰랐다.
집 짓기를 오래 계획하지 않고 급하게 집을 구입하고 짓게 된 문제기도 했지만, 설령 오래 계획했다고 한들 더 잘할 수 있었을까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더 이런저런 재기만 하는 일로 힘들지 않았을까.
살다 보면 떠밀려서라도 바로 그 순간에 해야 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닥치면 또 해내는 법이다. 비록 세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또 마음에 드는 비싼 것을 사고 싶었어도 기초를 해야 하는 비용이 추가되어서, 상황 판단이 된 후에 내부 인테리어를 보게 되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설계사무소 팀장이 물어볼 때마다 우리는 마치 신발도 거꾸로 신고 뛰어가듯이 주방가구, 타일, 욕실, 벽지, 마루, 에어컨, 조명, 대문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시공이 시작되면 인테리어도 이제 동시에 시작되기때문이었다. 미리 마련이 안되면 그만큼 시공 기간만 길어진다.
그 모든 것을 우선 선정해서 고르는 일은 건축주의 몫이었다. 그리고 설계사무소와 심미적인 측면에서도 함께 검토해야 했다.
그래도 철거가 시작되면서, 부실하거나 미숙한 이전의 어떤 것들은, 철거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