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밀리듯 천천히 문이 열리자
엄마와 눈이 보이지 않는 딸이 내렸다.
지하철 3호선 약수(藥水) 역.
눈이 밝아서 다 보이는 사람들이
엇갈리며 툭툭 소녀를 치고 가지만
두 사람은 말없이 걷는 일에만 골몰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선 소녀가
연어처럼 맑은 물결을 밀었다.
바싹 뒤따르던 나는 물살에 젖어
세상의 파도에 밀리던 마음이 순해졌다.
잘 보이는 눈으로도 어둡게 살아가는 나는
결코 그들을 앞질러 갈 수가 없다.
그들이 느리게 걷는 걸음 뒤에서
나는 더 느리게 걸으며
극락을 울리는 지팡이 소리를 들었다.
소녀가 사라지는 플랫폼의 저 켠으로
푸른 물결의 약수(弱水)가 출렁거렸다.
내 슬픔의 절반이 건너가는 소리였다.
# 약수(弱水) - 속세와 멀리 떨어져 선경(仙境)에 있다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