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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ug 26. 2021

환절기가 돌아오면 간단한 한 뚝배기

- 황태 콩나물 국밥



재료 : 콩나물, 계란, 황태, 파, 밥, 고춧가루, 새우젓



1. 뚝배기에 황태를 넣어 푹 끓입니다.

2. 잘 우러난 황태 국물에 콩나물과 밥 약간, 파도 썰어서 넣고 한번 팔팔 끓이고,

3. 마지막에 달걀 하나 톡 넣어주고, 고춧가루 올려줍니다.

4. 간은 새우젓으로 합니다.




# 식구들에게 한 뚝배기씩 퍼주어야 할 때 내는 육수내기  : 황태포, 다시마 약간, 말린 표고버섯, 채친 양파, 황태대가리를 하나 넣으면 더 구수합니다.

# 콩나물을 넣고는 뚜껑을 덮었다가 내렸다 하면 비린내가 나니 조심하고, 콩나물이 푹 익지 않도록 합니다.









시인 이상도 몸부림쳤던 '권태'가 올 때는 꽤 무료하고 심심하지만

그것도 뚝배기에 살짝 앉혀 팔팔 끓이면 좀 익지 않을까요. 

잘 익을라나는 모르지만....





미세먼지, 감기 유행, 게다가 영하의 날씨까지 3박자가 올 때는 황태 콩나물국밥이 최고입니다.  

황태, 명태, 북어, 생태, 이런 다양한 이름을 가진 생선을 무척 사랑하는 저는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번 화이자 1차 맞고도 콩나물 대신 부추를 몇 주먹씩 넣고, 밥 대신 수제비를 매 끼마다 이때다하고 먹었습니다.

제 나름의 특급 비방이지만 어떨 때는 제대로 유효합니다


언젠가 <객주> 드라마를 보았을 때, 주인공이 황태 덕장을 운영했어요. 꼭 한번 구경하고 싶다가, 황태 덕장을 지나온 적이 있는데, 한 겨우내 얼았다 녹았다 하면서 깊은 맛을 내는 황태들이 순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장수한 할머니를 취재했는데, 그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 무어냐고 기자가 질문을 하니

30년간 세 끼를 황탯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물론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말입니다.

그 정도의 정성은 없지만, 비리지 않고 담백한 생선으로 최고입니다.  

감기 들어서 빨리 낫지 않을 때는 다른 약보다 황태를 푹 고아서 먹고 나은 경험도 있습니다.


최승호 시인의 시 <북어>는 시험용 단골 시로만 나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아주 멋진 시죠.

'느닷없이  /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이 시의 내용을 달달 암기하면서도 아이들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요.

이 시를 설명하면서 그 끝에, 아, 잘 썼다,라고 했는데, 시인의 북어는 이렇게 물에 풀어진 것이 아니라

딱딱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 북어는 슬픈 시인의 자화상, 우리의 말 못 하고 살아가는 죽은 자화상입니다.

황탯국을 먹고 있으려니 마음에서 땀이 다 납니다.  

이 고단한 현실에서 역시 말 못 하고 살아가는 슬프고 아픈 비릿한 자화상은 아니려니 하고 위로합니다.


황태와 달걀은 찰떡궁합이라고 합니다. 달걀이 시각적인 효과도 있지만, 북어가 가진 단백질의 질을 상승시킨다고 합니다.  

언젠가 황태 덕장을 넘어가는 길에 잠시 들러 맛본 그 추운 날의 국밥이 떠오릅니다. 그 추위는 추운대로 남겨두고 '말의 변비증' 만이 아니라, 현실의 변비증까지 더불어 데리고 갑니다.  


오래전 대학생들을 데리고 전라도 지방의 답사를 다녀오는 길에 전주를 지나면서 전주비빔밥을 먹는 바람에 진짜 콩나물국밥을 먹어보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됩니다.  아마 여름이었기 때문에 선택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었다면 아무래도 콩나물 국밥이었겠지요.


그때의 아쉬움을 생각하며 뚝배기에 담긴 콩나물 국밥을 소리 나게 후후 먹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 오래 전의 전주 토박이 안내원이 소개해주던 맛집이 아직 남아 있을지 궁금합니다. 맛의 장인들도 사라져 갈 텐데,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날씨가 싸늘한 기운이 돌면 맨 먼저 콩나물 국밥부터 끓여 먹습니다. 그러면 계절 내내 감기가 안들 것만 같은 희한한 생각이 듭니다. 황태나, 콩나물, 파, 고춧가루,,,

이렇게 어울려 뜨거운 뚝배기 안에서 은근히 궁합이 맞습니다.

후후 불어서 밥 한 숟갈을 넣으면 세상 근심은 다 저리 가라 인 듯합니다.

속이 얼얼하게 뜨거운 것을 넣으면 왜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역시 뜨거운 것을 훌훌 불어서 먹어야 제 멋입니다. 상수역의 콩나물국밥집에 가면 모주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습니다.


인생사 중에서 온갖 감정의 현란함은 저 뜨거운 국밥 안에서 맥을 못 춥니다. 아무래도 아주 잠시겠지만 그동안만은 국밥 한 그릇으로 다 봄눈 녹듯 사그라듭니다. 누군가 마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저 국밥 한 그릇으로

마음을 데우면 좋겠습니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의 그 국밥처럼.


그리고 콩나물국밥을 끓일 때면 할머니 집 안방에서 늘 콩나물이 자라던 소리, 시루 아래로 물이 빠지던 차르륵 소리, 다시 상위에 콩을 차락 놓고 고르던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뚝배기 안에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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