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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Jul 14. 2021

스트레스로 막힌 속이 시원해지는 냉메밀국수

- 첫사랑이 떠오르는 국수




재료 : 메밀국수, 조미 간장(혹은 일본 쯔유), 간무




1. 메밀국수는 끓는 물에 삶고, 그동안 무를 강판에 갈아둔다.

2. 메밀국수 간장이나 쯔유에 냉수를 붓고 간을 맞춘 후 간 무를 넣어 먹는다. 



#마트에서 메밀국수 소스를 팔고 있으니 냉수만 부어서 먹으면 끝입니다. 

#다시마, 가쓰오부시, 간장, 설탕 넣고 끓여 육수를 만들어도 됩니다. 








여름의 해는 너무 길어서 발송한 그리움이 아직도 가고 있어요. 

수취인 불명으로 배달된 편지를 받으면 아직 그리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주세요. 

우체국의 셔터가 내려가서 거기 묵은 우체통 안에 그리움 하나 넣어둔 것을 잊어버렸어요. 

아무도 꺼낼 줄 모르겠죠. 

혹시 깜빡 잊고 배달되더라도 모르는 것이라고 시치미 떼고 그대로 수취인 불명으로 보내주세요. 

어디서나 부재중으로 공중에 띄워두겠어요. 여름은 길고 깊으니까요. 






너무 푹 삶지 않은 메밀면에, 무를 갈아 넣고, 얼음 동동 띄워 먹는 맛. 

바로 여름의 맛입니다. 

무는 한 개 사면 너무 커서 먹을 만큼 잘라서 냉동을 해놓습니다. 냉동무를 사용해도 먹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요. 

메밀 간장은 일본에서 보내준 일본간장 쯔유로 냉수에 타서 육수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메밀을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소스를 아예 만들어서 파니 참 먹기 쉽습니다. 예전에는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육수를 만들곤 했어요. 


그냥 간편해진 대로 살아가면 될 것 같아요. 한살림에서도 소스를 파니 좋아요. 불 앞에 서 있기 힘든 여름에 속이라도 시원하게 지내고 싶네요. 

코로나, 여기저기서 다 살기 힘든 소리들, 단절의 거리.

메밀국수를 먹었다고 속이 시원해질지는 모르겠어요. 


메밀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떠오르죠. 언젠가 강원도 가는 길에 봉평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소설 속의 물레방앗간도 있고, 이효석 생가도 있는 곳에서 소설 속의 명장면 그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메밀꽃'을 볼까 해서 들렀는데, 메밀밭은 다 갈아엎은 후에 씨를 심어 놓았더군요. 

그래서 허생원과 동이, 조선달이 걸어가던 그 메밀밭은 보지 못했어요. 물론 허생원이 풍덩 발을 헛디뎌 빠져서 동이가 업고 건너던 개울도 없었죠. 봉평장, 대화장, 제천장이 이어지는 그 '길'은 누구나 인생길의 떠돌이가 되어서 걷고 또 걸어가는 공간이기도 하죠. 우리 모두 어차피 이 길의 나그네이니까요. 


달밤에 흐뭇한 하얀 메밀꽃밭을 지나면서 조선달은 물리지도 않는 허생원의 첫사랑 이야기를 아주 오래 들어주었어요. 학교서 공부하기 싫으면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나 해달라고 하던 시간이 문득 생각나네요. 

듣고 또 들어도, 하고 또 해도 첫사랑의 이야기는 화자나 청자나 다 애련스럽고 마음이 착해지는 순간일 수도 있겠네요. 

작품에 대한 선명한 인상은 이렇게 어떤 공간을 설레게 만듭니다. 


초복이 지나서 비도 오지 않는 메마른 여름에 메밀은 늦게 파종해도 되는 잡곡이었어요. 비가 와야 심는 벼를 심지 못했을 때는 메밀은 대체 작물로 심곤 했어요. 그래서 슬픈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죠.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예전에는 메밀을 먹지 않았어요. 일부러가 아니라 그냥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어요. 막국수는 그래도 먹었죠. 막국수는 매운 다진 양념을 넣어서 먹으니까 메밀의 서늘한 기운을 상쇄해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또 무즙을 함께 먹으면 소화에도 좋으니 메밀과는 궁합이 좋아요. 자신의 상황에 따라먹는 방식도, 좋아하는 방법도 달라지나 봐요. 

혈관도 튼튼하게 하고, 스트레스도 풀리게 하는 메밀의 좋은 점을 생각하면 지금 딱 제철입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맞는 사람은 풍이 올 수도 있다니 뭐든 적당한 게 제일 좋아요. 


참 덥네요. 여름의 더위가 말 없는 점령군처럼 스밉니다.  

이런 날은 메밀국수가 딱입니다. 다행히 아이도 좋아라 하니 쯧쯧 소리가 나도록 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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