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집을 그리워했다

- 판넬 작업과 작업 비계 설치

by 이지현



뼈대가 섰으니 옷을 입을 차례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있지만 사실 집을 지으면서 옷보다는 뼈대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더 깨달았다. 건강미는 집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비계 설치 중이다. 이전의 비계는 철거용 비계였다. 빔을 세우면서 전부 철거하게 되었고, 다시 공사 진행에 필요한 작업 비계를 세운다.

멀리서 비계 설치 장면을 잡아 찍으니 집을 짓는 과정이 수렴되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미시적인 모습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거시적인 느낌으로 보게 되니 집에 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집이란 저렇게 세상에 지쳤을 때 수렴되어서 들어가는 곳이다. 외부에서 입은 상처를 저 조그만 공간에서 위로받는 곳이다.


집과 집 사이에 끼여서 하나의 집이 탄생되는 중이다. 저 조그만 공간 속에서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집안에는 그 집을 지어주기 위해 애썼던 모든 사람의 흔적이 녹아들어 가서 기둥 하나, 마루짱 하나를 볼 때마다 그 노고를 생각해볼 것만 같다.





작업 비계가 설치될 동안 2층 콘크리트 타설 전에 우수관로 배관 공사가 있다.

어느 한 공정이라도 빠뜨리면 큰일이 난다.


모든 공간에서 작업이 쉬지 않고 진행된다.





집은 한 벽이 곡면이다. 지금 규준틀을 올려놓고 수평을 잡고 있는 부분은 곡면으로 철골을 준비했다.

시공 시에는 곡면 벽을 건축하려면 비용이 직선으로 할 때보다 많이 들어간다.

시공 계약 시에 시공사 대표님이 그냥 직선으로 하면 안 되냐고 할 때 건축가가 단호하게 그건 절대 물러날 수 없다고 했는데, 정말 잘한 점이다.


우리도 곡선으로 부드러운 집이 탄생하기를 바랐다.

핑크로 만든 집이 곡면 벽을 가져서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pir우레탄판넬 시공 과정이다.

방수턱 조적 작업을 하면서 판넬을 고정할 부분들이 이미 다 작업이 되었다. 이 판넬이 단열에 뛰어난 것으로 나온다.

설계할 동안 단열 기준이 바뀌었다. 내진 설계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단열재의 두께가 추가될수록 설계 변경도 일어났고, 다시 구청에 확인받아야 했던 날들이 새삼스러워서 마음이 먹먹했다.

건축주만이 아니라 설계사무소도 다 같이 고민하고 고생한 흔적이다.

우리는 설계 당시에 변경된 단열재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감이 안 왔다. 그런데 시공사와 계약하면서 시공사 대표님이 단열 두께를 보면서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라는 것이군'이라고 했고, 설계사무소 팀장님과 건축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야 비로소 그 두께를 실감했다.


바뀐 단열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서울은 중부 2 지역에 속한 단열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 덕분에 집은 겨울만 되면 보일러를 무서워서 틀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조금만 틀어놔도 더워서 힘들다. 여름엔 에어컨을 틀면 금세 찬 기운이 가득하고 또 오래 시원해서 단열재 두께가 바뀐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설계가 자꾸 변경되는 바람에 좀 오래 걸리더라도 감수해야 할 일이다.


판넬 두께는 우리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지으려는 주택에는 모두 적용되는 것이어서 사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단열 설계


오래된 것을 부수고 허물면서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난 것들을 뒤돌아보는 일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물론 집을 지으면서 그 일은 단순히 강건한 소재들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았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니 다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자만의 한 모습일 수 있었다.


리모델링 집이어서 당연히 어느 만큼의 흔적은 남지만 신축이라고 다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과연 될까. 온전히 새것은 없었다. 그 공간에 남아있던 모든 것들은 다만 가라앉았을 뿐이다. 깊이 파묻고 그 위에 축조하는 일이다.

집을 지으면서 파묻어 둔 채로 다시 새로이 올리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지나간 것도 그저 그 위에 새로 건강하게 세우면 된다는 것을 고요히 깨닫는 일이기도 했다.






판넬 작업을 하는 중이다.


단열의 문제는 주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했다.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주거를 담당하지 않았을 때는 당연히 다들 단독주택에 살았다.

주택의 문제는 바로 난방이었다. 외풍에 시달렸고, 창호지 문은 덜컹거리면서 한 겨울바람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마루엔 늘 난로를 켜 두었다. 이불은 두꺼웠고, 한 겨울은 그나마 2개를 덮어야 지냈던 단독주택은 이제 옛말이다.


대청마루는 솔직히 폼으로 멋있지, 추운 겨울을 그대로 껴안는 데는 제격인 구조다. 어릴 때 살던 옛날 집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마루에 유리문도 해 달았다. 그래도 덜컹거리는 소리는 마치 겨울 한철을 우는 짐승의 신음 같았다. 그때만 해도 새시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니 홑 유리로 막아봤자 의미도 없었지만 덕분에 눈꽃이 피는 한겨울의 성에는 노상 보았다.


최두석의 시 <성에꽃>을 읽을 때마다 어릴 적 마루의 덜컹거리던 유리문과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면서 한 겨울의 성에꽃을 보던 기억이 늘 떠올랐다.

한때는 낭만이기도 했던 추억은 사실 모두가 힘들게 살던 시절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 기억의 사구에서 하나씩 건강하게 건져올리면서 다시 새롭게 살면 그뿐이었다.

집을 지으면서 깨달은 고요한 적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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