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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이 Feb 06. 2023

독일 한 달 살기 DAY1

아날로그 감성과 '나'에 대한 반추 

본격적인 독일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독일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된 내 인생의 한 페이지, 

그 첫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아날로그 감성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색상의 알록달록한 건물들 

독일 와서 베를린을 둘러본 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이젠 '독일'하면 '아날로그 감성'이 바로 떠오를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은 분명 한국의 서울과 같은 수도인데 ;) 베를린으로 독일을 알아가는 나는 첫날부터 느낀 점 한 줄 요약이 아날로그라니 참 한국과는 정반대여서 신기하다. 


일단 풍경부터가 뚝섬 미술관에서 이따금씩 열리는 따듯한 유럽감성의 그림 전시회를 실사화한 느낌이다. 베를린에도 아파트가 정말 많지만 여기 있는 아파트들은 한국처럼 층수가 많지 않다. 아주 오래전에 건축한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 같다. 건물 색상도 다양한데, 파스텔톤 색상의 건물이 많고 색도 다채로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색감도 쨍하지 않고 따뜻해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소중하게 간직해 온 과거 

어제는 일요일인지라 대부분의 상점이나 가볼 만한 장소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벼룩시장을 가보았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Boxhagener Platz부터 관광 명소로 유명한 Mauer Park, 그 앞에 있는 아파트 앞에서 열린 벼룩시장까지 벼룩시장을 알차게 구경했다. 


일단 놀란 점은, 벼룩시장이 곳곳에서 열린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렇게 여기저기 열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벼룩시장에 온다는 점,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파는 것들 중엔 한국에선 팔지 않는 20년은 넘어 보이는 LP판, 엽서 같은 골동품이 정말 많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주 옛날 이름 모르는 누군가가 간직하고 있었을 앨범도 있었고, 한국 사람들은 이젠 듣지 않는 카세트 테이프이나 CD, LP판을 곳곳에서 팔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며 사고 있었다. 나에겐 이런 것들이 과거에 머무른다기보단 과거를 소중하게 여기는 느낌이었고, 이런 감성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정반대인만큼 내가 추구하며 살아오던 삶의 방식이 얼마나 미래 지향적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지금까지의 나는 왜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주었는데도 현재와 미래에 필요하지 않으면 돌아보지도 않고 쉽게 버렸을까. 

 

아날로그의 정점, 열쇠문화 

물론 모든 일엔 동전과 양면과 같은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아날로그 방식은 많은 한국인들을 빡치게 하는(?) 열쇠문화와도 연결되는데, 어젠 이 열쇠 따는 법이 어려워 2시간은 문을 열려고 문 앞에서 낑낑댔다. 숙소에서 나갈 때도 내가 직접 잠가야 하는 줄 알고 잠그려 하는데 안 잠겨서 30분을 헤매다가, 꽉 닫으면 저절로 잠긴다는 것을 깨닫고 신나게 조깅을 하고 왔는데 이젠 문이 열리지 않아 1시간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아파트에서 내려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도움을 청해 문을 겨우 열었다. 호스트가 문 따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오후에 장보고 올 때 또 문을 못 열어 다시 연습을 해야 했다 ;) 


나 말고도 열쇠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구글/네이버/유튜브에는 '유럽 열쇠 따는 법', '열쇠 두고 왔을 때 문 여는 법' 등을 설명한 블로그나 영상이 많았고, 왜 독일은 열쇠문화를 고수하냐는 질의응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구글링 해본 결과, 독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도어록을 보안 측면에서 신뢰하지 않으며 전국의 열쇠공 마이스터들의 열쇠 산업 역사가 깊어 도어록 문화로 바뀌기 쉽지 않다고 한다. 편의성을 중시하는 아시아 문화 속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열쇠를 부여잡고 낑낑대며 도대체 왜 열쇠를 고수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아날로그의 경계선 어딘가에  

아날로그 감성과 연결된다고 본 다른 2가지는, 눈이나 비가 온다고 해도 우산을 써서 필사적으로 막지 않고 오는 그대로 맞으며 다닌다는 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영어를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 오전에 조깅을 갔을 땐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출퇴근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산책 나온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 한국에서의 나 같으면 눈이 조금만 와도 우산을 쓰고 걷거나 아예 운동을 나가지 않지만, 오늘은 다른 베를리너들처럼 우산을 쓰지 않고 오는 눈을 온몸으로 맞아 보았다. 


또 생각보다 베를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못함을 알 수 있었는데, 영어 실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할 줄 몰랐다. 한국인은 한국어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어릴 때부터 영어로 말하는 법을 배워 젊은 사람들은 아주 기본적인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한데, 베를린은 서울 같은 수도라도 독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쯤 되면 내가 정의하는 아날로그가 무엇이길래 이 2가지는 왜 아날로그 감성이란 결론이 내려졌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속에서 아날로그는 단순히 디지털 시대와 반대되는 문화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추기보단 예로부터 이어져온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디까지를 아날로그라고 봐야 맞는지 경계가 모호하긴 하다. 아날로그는 사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시대에 뒤처졌다'와 '옛것을 소중히 한다' 사이 중간 어디쯤에 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어떤 게 아날로그에 포함되는지 가타부타 따질 필요 없는 하나의 진리는, 독일은 디지털보단 아날로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  


'나'에 대한 반추 


진심을 다해 즐기고 싶은, 그런 사람이 고픈    

독일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환경이 쏟아내는 수많은 낯설고 새로운 정보들에 압도당한 어제였다. 오늘부터의 나 자신은 압도당하기보단, 관조하는 마음으로 독일 생활을 즐기고 싶다. 


여행을 '즐긴다'라는 것은 성격 급한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직도 인생 첫 해외여행이었던 언니와의 필리핀 세부 여행이 생각난다. 최고급 리조트에 가는 곳마다 비싸고 맛있는 식당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여행을 10%도 즐기지 못했다. 


다 나의 조급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과 걱정에서 기인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때 나는 '난 이렇게 놀고 있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공부해서 나보다 더 건설적인 삶을 살아가겠지'라는 걱정을 여행 내내 했고, 그 걱정 때문에 여행이 하나도 즐겁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언니한테 토로하기도 했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 대학생 때 가족들 다 일어나서 출근하거나, 집안일을 끝낸 오전 10시에 잠에서 눈을 뜨면 쓰레기 같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어쩌면 미라클 모닝을 한 것도 뭔가 생산적이고 알차게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마음속에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보이는 게 중요할까. 이래 보이고, 저래 보여도 본질은 바뀌는 게 없는데. 중요한 건 본질이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시선'으로부터 너무나 자유롭지 못하다. 일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듯이, 남들이 날 어떤 사람으로 평가하는지에 목맸듯이, 독일에 온 나도 하루하루 알차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 있다. 


어차피 일하러 온 독일이 아니니까 직접적으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은 없지만, 마음속에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강박이 아주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다. 이 본능 같은 마음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독일에서의 한 달간의 생활동안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마음과는 조금이라도 멀어져서 오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별것도 아닌 걸로 글을 길게 쓰면서 나에 대해 반추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그래도 독일이라는 낯선 환경이 이런 나의 바람에 화답을 해주어서 다행이다. 어제 갔던 마우어파크에선 확실히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았다. 베를린은 수도라 온갖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을 줄 알았는데, 키 큰 백인들 속 나같이 키 작은 동양인 여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자칫하면 시선을 신경 쓰는데 온 주의를 기울이느라 여정을 즐기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류와 '다른'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각자 행복한 시간을 즐기느라 바빴다. 한 동성 커플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거리 공연하는 곳 앞에 삼삼오오 모여 온몸으로 리듬을 즐겼다. 날이 추우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쁜 옷보다는 따뜻한 옷을 입고 있었다.


따뜻하게 입고 간다고 입었던 어제 착장만으로는 추위가 거세서 얼어 버릴 것 같았던 나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다니기 위해 한국에서도 안 쓰는 모자를 하나 샀다. 아직도 모자를 구매한 소비는 흡족스럽다 :) 



어제는 하루종일 대중교통이용하는데 헤매느라, 와이파이도 안되는데 교통 이용권을 구매하느라, 열쇠로 문을 따려고 낑낑대느라 에너지를 소진해 버려서 오후 8시에 침대에서 기절해 버렸다. 오늘은 확실히 어제보다 대중교통도 잘 이용할 자신이 있고, 어제보단 열쇠로 문을 잘 열 자신이 있다. 어제보단 나을, 기대되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잘 보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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