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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이 Feb 08. 2023

독일 한 달 살기 DAY 2

베를린 감성 느껴보기

하루하루가 글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온 체력을 소진하며 보내는 느낌이다. 오늘도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매일 그날그날의 감정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감정들을 잊을까 봐 두렵다. 소중한 이 감정들을 기록하려 한다.


Antiquariat, 잠시 멈추고 보자

둘째 날엔 여유를 부리다가 중고서점, 서점 근처 카페, 쇼핑몰, 알렉산더플라츠(Alexanderplatz)에 갔다. 하루를 끝낸 나 자신은 몸이 넉다운되었지만 일정 자체는 상당히 여유로웠다ㅎㅎ 새벽부터 함박눈이 내렸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바로 눈이 그치는 것을 보고 변덕스럽다는 유럽의 날씨를 몸소 체험한 기분이었다.


Antiquariat라는 중고서점은 책방주인의 취향이 듬뿍 담긴 공간이었는데, 영어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 색이 아주 바랜 독어 중고서적이었다.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어떤 백발의 노인 아저씨가 책방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들어오자마자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나갔는데, 찰나였지만 이 서점에서 정말 진지하게 책을 보고 그와 관련해 얘기하다가 나가셔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책에 진지한 사람은 남녀노소 멋있는 것 같다.

그 아저씨가 나가자 나는 책방 주인아주머니와 둘만 남게 되었는데, 부끄러움이 많은 내 성격에 아주머니와 단둘이 책방 안에 있자니 자꾸 신경 쓰여서 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받아들이고 계속 책을 보려고 하고 그 분위기에 적응하려 하니 신기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책구경에 흥미를 붙여 서점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독어를 모르는 내게 눈길이 갔던 책은 그림책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책, 악보, 그림이나 사진이 잔뜩 있는 책들.. 그중에 한 책에서는 페이지마다 고뇌에 가득 찬 아주머니 얼굴을 온통 그려놨는데, 그게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녹아내리는 얼굴, 부분 부분 배치된 강렬한 색상. 슬픔, 증오, 괴로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느낌이었다.

서점 하나만 가도 깨닫게 되는 게 많다. 내가 갔던 서점도 그렇지만, 베를린에선 거리를 걷다 보면 유리창 너머의 골동품에, 책에, LP판에 빠르게 내딛던 걸음도 멈추고, 끌고 가던 자전거도 잠시 멈추고 창 너머의 무엇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단지 예쁘거나 비싼 무언가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유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서 멈추는 사람들. 자주 목격한 비슷한 순간들이 내게 영감을 주었다.

관광객 모드

중고서점을 나와 유명하다는 Distrikt 커피숍을 향해가다 큰 쇼핑몰을 발견해 쇼핑몰 구경을 제대로 했다. 첫째 날에 봤던 베를린 중앙역의 REWE보다도 규모가 훨씬 커서 이곳만 쇼핑해 봐도 독일의 쇼핑몰을 온전히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쇼핑몰 가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즐겨보는 유투버 '글룩스필츠'에서 봤던 식자재들이었다. 해당 유튜버는 독일남자와 결혼해 독일에서 아이를 낳고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데, '짱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아기를 내가 너무 좋아하다 보니, 영상에서 보던 것들이 쇼핑몰에서 자꾸 보였다 ㅋㅋ 예를 들어 짱구 친할아버지/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 선물로 줬던 귀여운 음료도 볼 수 있었고, 글룩스피츠님이 영상에서 추천해 줬던 가성비갑 냉동피자도 볼 수 있었다.

한국과 달라서 신기했던 건, 코카콜라가 맛별로 정말 다양하게 있다는 것과 한국에선 흔치 않은 하리보젤리가 원산지라 그런가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하리보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시회도 갔어서 그런가 더 눈길이 갔다! 신기해서 사진 찍다가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제재를 받기도 했다ㅎㅎ ;)

그다음엔 Distrikt 커피숍을 들러 레몬주스 한 잔을 마시고, 대형 쇼핑몰인 알렉산더플라츠를 가기 위해 지하철로 기다가 우연히 콘셉트 스토어를 발견해 들어갔다. Hotel Ultra라는 콘셉트스토어였는데, '우리는 호텔이 아닙니다'라고 쓰여있어 힙지로 감성 같은 곳인가.. 하며 들어갔다. DP 된 오브제들이 전부 독특했고, 음악마저 독특했어서 기억에 남는다. 히피 한 느낌이 가득했다. 'WE SELL HELL & SUFFER WELL'이라.. 베를린의 힙한 거리답게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목적지인 알렉산더플라츠에 왔을 땐, 사실 체력이 바닥나있었다. 백화점을 둘러보다가 기가 너무 빨려서 알렉산더플라츠는 오늘 못 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서울역이나 고속터미널역같이 너무나 분주하고 시끄러운 곳이라 앞으로 한 달간 갈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베를린의 편집샵, 베를린 감성

하지만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 그냥 숙소로 돌아가긴 너무 아까워서 근처에 볼만한 게 있나 검색을 해보다가, 근처인 미테지구 Rosenthaler Platz에 편집샵이나 디자인 상점이 많다고 해 당장 발걸음 돌려 Rosenthaler Platz로 향했다. 아주 많은 건 아니었지만 볼 만한 디자인샵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다용도 병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디자인인데, 심지어 박물관에 가도 고대 유물 중 여성의 몸을 형상화해 만든 병이 있다 보니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노골적이고 충격적이었지만, 계속 보다 보니 아 이렇게 여성의 몸이 참 아름다운 모양이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파스타 만들기 세트인데, 봉지 안에 파스타 면과 소스가 같이 들어있는데 너무 예뻐서 기억에 남는다. 그 한 봉지만 사면 파스타 만들 준비는 끝난 느낌이랄까. 

마지막은 아시아풍 오브제들이었는데, 서양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시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라 흥미롭게 본 것 같다. 잉어를 형상화한 병이나 일본의 고양이, 호랑이를 표현한 작품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잉어병이 제일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도 잉어는 역사적으로 장수, 효, 의리 등 온갖 좋은 의미를 지니는 게 그게 서양에도 통했나 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발 닫는 대로 구경하고 나니 벌써 거리가 어둑어둑했다. 이곳 베를린은 해도 늦게 뜨면서 지는 건 다른 도시랑 시합했나 싶을 정도로 참 빨리 진다. 그래서 날이 밝을 때 최대한 즐기려고 애쓰는 것 같다. 사실 날이 어두워지면 어두운 대로 아름답긴 하다. 여기는 하얀 조명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조명이 노란색이라 밤이 되면 더 아름답다. 노란 조명도 너무 좋다, 흰 조명은 화장실과 회사 형광등이면 족하다 :)


비록 한 달 살기지만, 오늘 크게 느낀 점은 기본 독어는 하나씩 써보려고 하자는 것이다. 아직 인종차별은 안 겪었지만, 독일어를 할 줄 알면 훨씬 내가 살아가는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써본 독어는 Guten Morgen(좋은 아침이야), tschüss(안녕), Danke(감사합니다)인데, 앞으로 조금씩 더 써봐야겠다. 이를테면 ein(1개)과 같은 단어도!


내일이 기대된다.

내일은 어떤 흥미진진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까?

오늘 밤은 숙면을 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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