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없는 박물관 투어, 그 첫날
독일 베를린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는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박물관 3군데만 가도 뽕뽑는 가격이라길래 3일권을 구매해 열심히 박물관 투어를 하고 있다. 박물관 규모가 커서 하루동안 2곳만 돌아다녀도 진이 빠진다. 박물관 투어를 하려면 정말 체력이 필수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박물관에 가기 위해 U Museumsinsel 역에서 하차해 계단을 올라갔는데, 큼지막한 박물관들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에 반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베를린의 모습과는 또 다른 유럽 스러운 풍경이었다. 같은 베를린이라도 이렇게 지역마다 다양한 매력적인 구석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독일에 사는 동안 베를린이든 교외지역이든 최대한 여러 곳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Alte 박물관이었다. Alte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을 전시한 공간인데,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서 지정한 '박물관 섬'(박물관이 모여있는 독일의 지역) 내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고 한다. 입구부터가 웅장했다.
내부에 들어가니 조각상과 고대 유물이 많았는데, 조각상이 태어나서 본 적 없는 규모라 인상적이었다. 그중 디오니소스 두상(Heado of singing Dionysus)은 조각상인데도 실물 크기에 굉장히 섬세해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왜 신화 속에서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석상들이 자고새(patridge)를 들고 있었는데, 이유가 궁금해 찾아보니 당시에 자고새를 사냥해서 먹었다고 한다. 상징적 의미는 딱히 없고, 지금으로 치면 닭과 비슷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 많은 석상을 어렵게 만들어서 신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제우스한테 바치는 제물이 그렇게나 많다니 신기했다.
웬만한 현상이 과학으로 설명되는 현대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위안과 확신을 얻고자 종교를 가지는데, 고대 사회에서도 좋은 날씨와 풍요를 빌기 위해 신을 섬기는 것은 여전했구나, 싶었다. 어쩌면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방증인 것 같기도 하다.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면, 외양의 풍채와 표정만 봐도 어떤 사람일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람 얼굴은 인생을 담고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 같다. 부유한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 표정이 평온한 사람,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 그 표정과 인상은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Alte 박물관에서는 Etruscan 시대의 조각상이나 건축 부조물(teracottas)이 많은데 시대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흥미가 살짝 떨어졌다. 역사적으로 가장 이해가 잘 갔던 작품은 고대 그리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상들이었다! 토플공부할 때 강의로 많이 들었어서 그런가 꽤나 익숙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누군가 Alte 박물관에 간다고 하면 역사 공부를 간단하게라도 하고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Alte 박물관만 봤는데 체력이 이미 방전되어 있는 상태였다. 뭔가 먹어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맛집이라는 커리부스트 61을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큰 서점이 있어서 서점도 들렀는데, 거기에 BERLIN 여행 가이드북을 팔고 있길래 3만 원이 넘는 사악한 가격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구매했다. 이미 샀으니까, 책을 읽고 책에서 소개한 곳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서 봤던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WHO ARE YOU REALLY?"라는 책이었다. 자신을 알아가는 프로젝트 진행했던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독자도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 참여해 보게끔 여러 질문을 던지고 활동을 해보는 책인데, '나'를 알아가는 나의 여행 콘셉트에 걸맞아 살까 고민하다, 가격 때문에 결국 내려놓았다 ;) 나중에 가기 전에 영 마음에 걸리면 꼭 사볼 예정이다.
서점을 들렀다가 가게 된 커리부스트 61은 정말 존맛탱구리 맛집이었다! 안 그래도 독일에서 살았던 친구가 독일 하면 '소시지'라며 소시지를 많이 먹으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커리가 들어간 소스에 소시지를 구워주는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 갈 때마다 사 먹을 예정이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Alte Nationalgalerie(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 갔다. 사실 음식을 먹었어도 이미 너무 많이 걸어서 힘든 상태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원본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울 뻔했다! 따뜻한 색감이나 느낌의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르누아르나 모네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르누아르와 모네 작품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내가 원래 좋아했던 작품 말고도 새로운 나의 미술 취향을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붓터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강한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취미로 붓터치 페인팅을 해봐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술은 실력 측면에서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섬세한 붓터치로 그림이 완성되어 나가는 것만 봐도 힐링될 것 같다 :)
미술작품을 정말 집중하며 봐서 그런가, 어느샌가 작품을 볼 때마다 작품 속 상황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 큰 그림에서도 조그마한 인물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욕심이 가득한 사람, 말을 걸려고 하는 사람, 절박한 사람, 딴짓하는 사람.. 작품을 보면서 그려지는 상황에 피식 웃기도 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엔 조명과 화려한 액자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작품마다 다른 액자를 써서, 어떤 작품은 액자와 함께 있어 작품이 빛을 발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조명은 오일페인팅 작품에서 빛을 발했다. 조명에 반짝이는 작품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왜 여행을 많이 해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날이었다. 여행을 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관심사가 자연스레 생기기도 하고, 담대함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며 필요한 자질들이 길러지기도 한다. 아직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은 참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의 색깔로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다가올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