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만난 친구
오늘은 대학생 때 봉사활동을 하며 만나게 된 독일인 친구 플로렌티나를 6년 만에 만나는 날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충분히 체력 충전을 한 다음, 여유롭게 Cicala라는 이탈리아 디저트 전문점으로 향했다.
먹을 공간이 외부 테이블밖에 없기도 하고,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데다가 테이블 자체가 작아서 테이크 아웃해 공원에 가서 디저트를 먹기로 했다.
열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템펠호퍼 펠트(tempel hofer feld)라는 공원에 갔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공원 중에 가장 광활했다. 예전에 공항이었다고 하니, 끝없는 광활함이 설명될 만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에선 즐기기 힘든 취미인 wind surfing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보드를 타다가 공중에 뜨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도 있었다.
참 다양하게 삶을 즐기면서 사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연으로 마주하게 된 어떤 것 중 하나를 내가 나중에 취미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더 있기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너무너무 추웠다.. 우리는 일단 디저트를 먹고 뭘 할까 얘기하다 플로렌티나의 제안으로 그라피티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
Urban Nation이라는 미술관이었는데, 박물관섬을 돌아다니면서 고풍스러운 작품들만 만났어서 그런가 현대적인 작품을 보고 현대 사회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작품의 주제는 정말 다양했다. 각종 차별, 개인주의, 정보의 홍수, 인간 정체성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환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래는 기억에 남는 작품인데, 작가가 그네를 타면서 그림을 그렸다길래 “왜 굳이 그네 타면서 그림을 그렸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해석을 보니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처럼 그네를 타면서 손의 움직임을 자연스러운 몸짓에 맡겼다고 했다. 심오한 의미를 담지 않고 가벼운 그림을 그리고자 했음을 알게 되니, 아주 간단한 것에서조차 심오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흥미가 갔던 주제는 비거니즘과 환경이었는데, 사실 나는 내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채식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게 사회적인 영향력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개 평범한 예술가 중 한 명일지라도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작품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며, 내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조그마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재고해 보게 되었다.
실제로 플로렌티나도 환경을 고려해 비건까진 아니지만 채식을 하고 있는데, 한 명이 사회에 보탤 수 있는 힘을 굳게 믿고 있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Pfand(공병수거)나 자전거 문화, 어딜 가든 있는 비건 메뉴가 사회 속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분명 한 명 한 명의 깨어있는 의지와 행동 덕분일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고 마음 안에 가두는 우리(we)를 나타낸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자유를 상징하는 새가 케이지 안에 죽은 채로 쌓여있었는데, 그래도 몇몇 새들은 케이지 안에서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미술관에 있었던 우리는, 저녁으로 에티오티아 식당에 처음 도전해 보았다! Bejte-Ethiopia라는 에티오피아 식당이었는데, 에티오피아 식당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들다 보니 들어서자마자 마치 에티오피아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신기했다. 있다 보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러 왔는데, 만약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Bejte Ethiopia ye-zom le-hult sewoch라는 어려운 이름의 메뉴였는데, 그 식당의 대표 메뉴라고 했다.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어야 했는데, 비건음식인데도 생각보다 맛있고 배불러서 신기했다! 식당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플로렌티나를 위한 선물 증정식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할 시간이 더 남았던 우리는 바를 찾아 나섰다. 우연찮게도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바였는데, 토마토 베이스의 칵테일을 시켰다가 내 입맛과는 너무 안 맞아서 무난한 다른 걸 시킬걸 후회했다 ;)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Simon Dach Straße에 있었던 인디언 바였는데, 우리가 칵테일 하나를 시키고 30분-1시간가량 앉아있자 장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대놓고 맥주 주문을 거절하고 더 비싼 메뉴를 안 시킬 거면 나가라고 했다.
보통 독일의 레스토랑이나 바에서는 팁을 주는데, 이곳은 자신들도 무례한 걸 알았는지 팁을 안 받고 잔돈을 전부 거슬러주었다. 그래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플로렌티나가 함께 있어서였다. 만일 플로렌티나가 옆에 같이 있지 않았다면 그날 저녁 기분이 최악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가 옆에 있어서 든든했던 하루였다.
플로렌티나를 만나고 많은 생각이 들었던 하루였다. 예전에 Laure라는 프랑스 친구를 오랜만에 봤을 땐, Laure도 당연히 처음엔 international-oriented 된 사람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해외 경험은 그저 추억으로 묻어두었는데, Florentina는 아직도 전 세계를 여행하며 내가 6년 전에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살게 되면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하고, 국가 간 이동도 많이 하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해 커리어를 기르기가 힘들고, 그러다 보니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데도 share flat에 살면서 여행을 위해 돈을 아꼈다가 돈을 여행에 소진하는 식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나를 만나도 돈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있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친구와는 결이 다른 것 같다. 친구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나는 전 세계를 다니는 노매드가 되기보단 오히려 독일에 정착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분명 인종차별도 있을 테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지만, 그 리스크를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유의미할 거라는 확신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들었다.
아쉽게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없지만, 워홀 비자를 받아와서 mini job을 구해도 되고 독일 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도 있으니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든 찾아서, 부족하고 맘에 안 들더라도 그마저도 포용하며 내 삶을 만들어 가는 게 어른으로서 살아야 하는 삶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