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만의 리듬을 찾아 가는 길

부제 : 안나푸르나, 나디바자르에서 자갓까지의 하루

by 글다뮤

2부. 나만의 리듬을 찾아 가는 길

부제 : 안나푸르나、나디바자르에서 자갓까지의 하루

안나푸르나, 나디바자르에서 자갓까지의 하

나디바자르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눈을 떴다. 고요한 마을은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깨어났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초록빛 계단식 논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빛났다.


트래킹 3일차는 나디바자르(Nadi Bazaar)에서 바훈단다(Bahundanda), 산게(Syange), 그리고 자갓(Jagat)까지 걷는 일정이다.

하산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초반부의 대표적인 험한 길이다.

특히 바훈단다로 향하는 구간은 초반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아침 8시 반쯤 길을 나섰다.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산의 대답


생각보다 바훈단다까지의 길은 정말 힘들었다.

지난밤 머물었던 숙소가 낯설고 불편해 잠도 설쳤고, 몸은 무겁기만 했다.

느려지는 걸음 속에서 문득 출발 전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뭐하러 이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느냐.”

그 목소리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약한 속삭임 같았다.

하지만 곧,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이 그 생각을 잠재웠다.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의 웅대한 산세가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너는 여전히 강하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말에 다시 힘을 내어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훈단다의 언덕 그리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바훈단다, 이름 그대로 '브라만의 언덕'이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모든 고생을 잊게 했다.

계단식 논과 계곡이 맞닿은 지점에서 구름은 손에 닿을 듯 흩어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마음 깊숙이 맑은 울림을 남겼다.


다행히 바훈단다에서 게루모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과 평지가 이어져 한결 수월했다.

강을 따라 걷는 길 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게루모 마을에 닿았을 때는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곳의 오후는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게루모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자 다시 에너지가 차올랐다.


비와 무지개


이제 산게로 향한다.

길은 가파른 내리막과 좁은 절벽길이 이어졌지만,

그 길가에는 쏟아지는 폭포들이 반짝이며 함께했다.

걷는 내내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졌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내가 이곳에 왔노라’

조용히 기록을 남겼다.

산게에 다다를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옷을 꺼내 입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비는 신기하게도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들어냈다.

오전의 힘들었던 마음이 빗방울에 씻겨내려가는 듯했다.


이내 비가 그치고,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쳤다.

물안개 위로 무지개 한 줄기가 피어오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길 위에 있는 지금 이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선물이다.”


나는 그 순간에 머물기로 했다.

지금 이 발걸음,

지금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의 숨결,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며 걷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을 깊이 느낄 때,

비로소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기다림과 위로


내 길동무는 이미 한참 앞서갔고 가이드 파상은 중간 중간 나를 기다려 주었다.

서두르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기다려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가 건네준 물 한 잔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 따뜻함 덕분에 다시 힘을 얻고, 나는 또 길을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 보니,

거대한 산자락 사이로 작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자갓(Jagat).

해질 무렵,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무릎은 시큰거렸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느리지만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

미리 도착해 있던 길동무가

따뜻한 블랙티 한 잔을 건네며 반겨주었다.

그 미소 하나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자갓의 저녁, 따뜻한 달밧 그리고 여운


그날 저녁,

푸짐한 달밧 한 접시를 감사하게 먹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내 육체의 수고로움을 달래주었다. 숙소에 들어와 창문 밖을 보니 눈발이 점점 더 날린다.가만히 창앞에 서서 따뜻한 차한잔을 들고 문득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나는 한 걸음 더,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에게 길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잘 걷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렸다.


* 달밧(Dal Bhat)

: 네팔의 대표적인 가정식으로, 밥과 렌틸콩 수프, 카레, 채소볶음이 함께 나오는 전통 세트 식사.


[나다움을 향한 길 위에서 생각 한 줌]

“당신에게 인생에서 만나는 ‘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 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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