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시간을 건너온 한 곡의 음악처럼

300년을 돌아온 음악 — 파헬벨 ‘캐논’에 대하여

by 글다뮤

결혼식장에 울려 퍼지면 마음이 자동으로 포근해지는 음악,
파헬벨의 캐논변주곡


하지만 이 익숙한 선율이 처음부터 세상에 사랑받았던 건 아니었다.

이 음악은 17세기 후반에 태어났지만,
무려 300년 동안 거의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악보만 남아 먼지 속에 묵혀 있던 곡이었다.
그렇게 잊힌 채, 시대와 세대를 조용히 건너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음악가가 우연히 이 곡을 녹음해 세상에 내놓았고
사람들은 놀라듯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지금까지 숨어 있었다고?”

이후 캐논은 결혼식의 축가가 되었고,
영화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또 수많은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화려한 조명도, 화려한 평가도 없었음에도
그 음악은 제 때가 오기까지 묵묵히 기다린 셈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참 좋다.
예술도, 사람도, 때로는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피어나는 존재가 있다.
빛나기 위해 서둘 필요도, 남보다 앞서갈 필요도 없다.

언젠가는 스스로의 리듬을 갖고,
자기만의 순간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파헬벨의 캐논이 알려주는 건 단순한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한 존재는 조금도 덜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견디고, 준비하는 날들이
어쩌면 가장 깊이 우리를 만들어주는 순간일지 모른다.


300년을 돌아온 음악처럼,
우리에게도 언젠가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가 찾아올 것이다.


당신의 시간도 언젠가 캐논처럼 빛날 것이다.


https://youtu.be/ARQueOs4P18?si=q87qYbGmS5QSkSkV



<파헬벨 캐논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 5가지>


① 원래는 ‘축가용’이 아니었다

우리가 결혼식 하면 떠올리는 대표 음악이지만, 사실 캐논은 장례식에 가까운 분위기의 곡과 함께 묶여 있었다는 설이 있다.

파헬벨이 이 곡을 작곡한 이유가 친구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위로의 의미로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고 한다.
(정설은 아니지만, 음악사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흥미로운 가설!)

→ “태어날 때도, 결혼할 때도, 떠날 때도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② 300년 동안 아무도 관심 없었다

지금은 클래식 입문곡 No.1이지만, 사실 이 곡은 20세기 중반까지 거의 잊힌 작품이었다.
악보는 존재했지만 연주도 거의 없고, 음반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8년,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이 녹음한 음반이 느닷없이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가 “이 곡 이렇게 예뻤어?” 하고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 말 그대로, 300년 묵은 보물상자가 갑자기 열려버린 사건.


③ 원래 제목은 ‘캐논 & 지그’

우린 ‘캐논’만 기억하지만, 정식 제목은 Canon and Gigue for 3 Violins and Basso Continuo.
즉, 캐논(정교한 반복 기법의 곡) 지그(빠르고 춤추는 느낌의 곡) 이 한 세트였다는 것!


하지만 현대에는 지그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캐논만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살아남았다.

→ “유명해질 줄 몰랐던 조연(지그)이 완전히 가려진 케이스.”


④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많이 표절된(?) 코드 진행’

D–A–Bm–F#m–G–D–G–A 이 8마디 코드 진행은 너무 유명해서, 대중음악에서 무수히 변주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음악가는 농담으로
"팝송의 절반은 파헬벨 캐논을 베꼈다!" 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닮은 곡들:

Vitamin C – Graduation

https://youtu.be/tz_NxOF7RB4?si=ny_Nxk9KOooqVPq4

Maroon 5 – Memories

https://youtu.be/SlPhMPnQ58k?si=VQKLJNCCOHvXsmAr

⑤ 파헬벨은 생전에 유명했지만, 곡은 유명하지 않았다

파헬벨은 당시 바흐 가족과도 교류하고, 교회 음악가로 꽤 잘 나갔던 인물이야.
하지만 정작 캐논은 그가 남긴 수백 곡 중 아주 작은 일부,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300년 뒤, 그의 모든 작품 중 이 노래 하나가 세계를 대표하는 곡이 돼버린 것.

→ 어떤 예술은 뒤늦게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찾아온다는 상징적인 사례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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