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공짜는 없지.

정말 하고 싶은 한 가지를 위해서는, 하기 싫은 아홉 가지를 해야만 해.

by 초록숨

항상 불길한 일은 행복한 일상 속에서 방심하고 있던 주인공에게 폭탄처럼 떨어진다. 나 여기 있는데, 너 방심하고 있었지? 비웃는 것 같다. 라디오에서 기분 좋은 9월의 시작을 알리던 오늘도 그랬다. 학교에서의 일상이 어김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요즘의 일상에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고는 아이의 잔병치레뿐이었던 비교적 잔잔한 일상을 살던, 딱 그런 방심하기 좋은 평범한 아침.


오늘 수업에서 그 아이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옆 친구와 장난을 쳤다. 지난번에 한번 따로 불러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엎드려 자진 않는다. 대신 친구와 속닥이고, 내 말이 이어질 때 옆 친구와 낄낄거린다. 약속대로 성찰일지에 적는다. 지난번에는 ”뭐만 하면 적네~”라며 비꼬더니, 이번에는 ”저번에는 떠드는 사람 적는다면서요?“하며 옆 친구랑 떠들었지 않냐는 말에 ”안 떠들었는데요.” 하며 신경질적으로 받아친다. 아무 잘못 없이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일로 피해 주지 말자 내 마음을 꾹 누르면서,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말한다. 그러자 “제가 왜요! 뭐 어쨌다고요!!” 한다. 꾸역꾸역 수업을 이어나가지만 이쯤 되면, 내가 이 자리에서 교과서의 내용들을 짚어나가는 일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길고 긴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 자기는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따지더니 짝꿍이랑 이야기하고 종이에 장난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고 하니, 잠깐 말했을 뿐이란다. 자기가 볼 때 더 장난치는 애들이 있는데 왜 자기만 적느냐고, 어이가 없다고 한다.

“네가 거론한 아이들은 활동을 이미 다 하고 잠깐 이야기한 거고, 오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어. 학기 초에 수업 분위기를 위해서 성찰일지에 적으면 빨리 수업으로 돌아와 달라고, 그러면 바로 지워준다고 했잖아.”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냥 어이가 없다고 한다. 부모님께 따로 말씀드려야 하냐고 물어도 “네네~ 그러세요~ 그냥 성찰 계속 적으세요~” 라며 비꼰다.

지난한 대화의 시간이 이어진다. 잘못을 하나씩 말해주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도 설명해 주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하며 결국 엎드려 절 받기로 사과를 받는다. 이미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께 자주 전화하고 있는 아이로, 일을 더 키워봤자 도움 될 게 없다는 체념으로.


돌이켜보면 10년 이상의 교직 생활 중에 이렇게 힘들게 하는 아이들보다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분명 더 많았다. 신문 기사에 나오는 청소년의 문제가 요즘 청소년의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교사의 마음을 휘젓고, 이유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교사는 병든다. 고마운 아이들에게 내어 줄 에너지가 순식간에 바닥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최대한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화를 내는구나. 내 작은 지적에도 화가 나고 나를 무시하고 머리 위에 서고 싶구나.‘라고 그냥 무미건조하게 지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의 벽에 보호막을 친다. 아무리 다음 해에 그 아이가 속한 학년을 피해도 또 마주하고 마는, 그런 아이들 때문에 내가 설 자리가 북극의 빙하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언제쯤 상처받지 않을까. 너는 아이고, 나는 어른이거늘. 나는 왜 인간 대 인간으로 자꾸 서운하고 속상하고 또 그 감정에 침잠하는 것일까.


무서운 선생님에게는 몸 사리고, 만만해 보이는 선생님에게는 함부로 하는 아이들..... 강약약강의 비겁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 때문에 한때 나의 소망은 눈빛만 봐도 조용해지는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는 아이들의 글만 봐도 눈물이 차오르는 나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모습. 그래... 그렇다면 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해야지.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줘야지.


속상한 마음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 학교에서 어떤 오빠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를 속상하게 해. 어떻게 해야 해?” 하니 눈에 불이 나오게 무섭게 혼을 내란다. “그래도 안되면?”, “그럼 엄마 머리에서도 불이 나게 무섭게 혼을 내면 돼.”란다. 인사이드 아웃의 화남이가 떠올라 웃음이 터진다. 엄마 아빠 말도 잘 안 듣는 요 작은 아이가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혼을 내야 한다고 하니, ‘그래 어렵다고 피할 게 아니라 할 말은 해야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알려는 줘야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그 아이의 몫이고 그래도 올바른 것을 계속 말은 해줘야지.’ 싶다.


지금의 나도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이제 완연한 중년이 되었을 때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더 무기력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사라는 자리가 처량하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수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 앞에서 내가 무슨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싶고. 그래서 올해 유독 고등학교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감정적 소모를 좀 줄이고, 아무래도 학업에 더 몰두할 수 있는 고등학교로 가고 싶다. 몸이 힘들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 하는 생각. (물론 겪어보지 않은 곳에 대한 환상일 확률이 크다.)


그러다 최근 본 드라마 <서초동>의 변호사 모습이 떠올랐다. 외부에서 볼 때 너무나 멋지고, 부당한 일이라고는 절대 당하지 않고 살 것 같은 변호사들도 그 안에서 수치스럽고 더럽고, 견뎌내야 하는 인간관계들이 있구나. 약국 안에서 약을 만들며 편할 것 같던 약사들도 결국에는 ‘딸랑’ 하고 언제든 들어오는 모든 인간상들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구나. 경찰관도, 의사도, 연예인도 다 결국엔 자신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부분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나만 힘든 것은 아니고 당연히 불완전한 인격체를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는 교사들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 크고, 그렇더라도 변화의 가능성이 여타의 직업군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많으니, 내가 함께 지지고 볶고 해 볼 만한 아이들이다. 하는 생각에 이른다.


하. 결국 세상에 공짜는 없고, 편한 직업도 없고, 하고자 하는 한 가지를 위해서는 하기 싫은 아홉 가지를 감내해야만 한다는 말이 딱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 평생 책을 읽으며 가르치는 직업을 얻었으니, 내 삶에 고여있는 나머지의 고통들은 잘 다스려보자.


한참을 이렇게 생각들을 쏟아내고 나니 고통에서 한 걸음은 물러난 기분. 역시 무엇이든 공짜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