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닌, 너도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여름'이라는 계절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두 가지 있다. <아이 엠 러브>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했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을 맡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2016년 개봉한 윤가은 감독 작품인 <우리들>이다. 두 작품 모두 한여름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처럼 강렬한 성장통을 담은 영화들이다. 그래서인지 무더운 여름이 오면 괜히 한 번쯤 생각날 만큼 오래오래 기억에 있는 영화들이다. 이 중에서도 오늘은 영화 <우리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 ‘여름의 아이들’이 아닌 ‘우리들’인 이유
영화 <우리들>에서 가장 먼저 두드러졌던 점은, 아무래도 영화의 제목이지 않을까 싶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너희들'이지만, 영화의 제목은 너도 아닌 나도 아닌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제목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문득 떠오르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초등학생 아이들부터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이웃집 아이들부터 학교 선생님까지.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인물에게라도 공감한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나이와 성장 배경이 달라도 우리는 ‘사회’라는 똑같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이 영화의 제목도 그래서 <여름의 아이들>이 아닌 <우리들>이 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초등학생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모두 거쳐 온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의 무너진 경계
<우리들>은 매니큐어가 발린 손보다 봉숭아 꽃물이 스며든 손이 아름다워 보이는 영화 그리고 피자와 치킨보다는 김밥이 먹고 싶어지는 영화이다. 이렇게 느꼈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외톨이가 된 '선이'라는 인물에 더 마음이 갔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들'이라는 영화를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영화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그 이면에 있는 많은 의미를 생각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외톨이인 ‘선’은 다른 아이들이 치킨을 먹을 때 오이 김밥을 먹고, 매니큐어를 바를 때 봉숭아 꽃물을 예쁘게 물들인다. 영화는 김밥과 치킨, 매니큐어와 봉숭아 꽃물을 동시에 대조하듯 보여주면서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을 우리 유년기의 자연스러운 일상인 듯이 담백하고 묵묵하게 그려낸다. 관객들은 이를 씁쓸한 마음으로 보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어린 시절을 보면서 느끼는 반가움과 한편의 씁쓸함, 이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은 관객들을 계속해서 영화의 소용돌이로 불러들인다. 왜 다 같이 사이좋게 놀 수 있는데, 아이들은 서로의 위치를 나누고 헐뜯으려고 할까? 우리는 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가 우리 모두의 세계’라는 어쩌면 당연한 말로 정리된다. 어른들의 세계에만 존재할 것 같은 세상의 ‘약육강식’이라는 규칙은 우리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때부터, 말하는 눈빛과 말투 혹은 살아온 배경 등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협하는 사회의 질서인 '약육강식'이란 더 이상 어른들만의 세계의 법칙이 아니다. 성인이 된 나는 그것을 이미 깨달은 것이고, 영화 속 초등학생 '선이'는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마음이 통했으면 좋겠어’라는 영화 포스터 메인 문구를 더욱더 아련하게 만든다. 동시에 각박한 이 세계에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다시 관객들에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 배우들의 싱그러운 에너지와 포근한 소품들의 조화
<우리들>이 마음속으로 더욱더 깊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8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저 동네 골목골목을 뛰어놀아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하는 맑고 순수한 모습들 또 그와 반대로 슬픔, 외로움, 분노 등의 어두운 감정들도 그 시절에만 볼 수 있는 배우들의 부드럽고 풍부한 에너지로 관객들을 잘 설득해주었다. 무더운 여름날 촬영을 하면서 어린 배우들에게서 이 정도로 인상 깊은 연기를 끌어낸 윤가은 감독의 디렉팅과 연출은 정말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영화 속 로케이션과 소품 또한 인상적이다. 동네 문구점, 슈퍼마켓, 놀이터 등 지나가다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을 관객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잘 풀어냈다. 색연필, 봉숭아 꽃물, 팔찌 등 아날로그 감성의 소품도 어린 시절을 이따금 추억하게 되고 자극적인 소재의 작품들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관객들의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준다.
이렇게 <우리들>은 전체적으로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여름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 세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인물들과 특징들을 계속해서 곱씹고 생각할수록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지는 영화 그리고 여름이 되면 아지랑이처럼 기억 한구석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영화다. 곧 개봉을 앞둔 윤가은 감독의 신작인 <우리 집> 또한 <우리들>처럼 어떤 좋은 에너지와 묵직한 메시지로 관객들 곁을 찾아올지 무척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