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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티 Greentea Sep 28. 2019

서툴렀던 동경과 막연한 모방으로 가득 찼던 우리의 시작

그 시절 뜨겁고 자유로웠던 열정의 날갯짓, 영화 <미드 90>

‘나’라는 존재의 자각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보통 원초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눈앞에 펼쳐지는 난생처음 보는 현상과 자극에 놀라며, 새로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내면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혼란스럽다. 그러다 이내 마치 한 바퀴를 다돈 열차 마냥 어느 순간 한 곳에 멈춰 서게 된다. “이거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느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모습이기 원하는지를. 그렇게 우리는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기 시작하고 내 안의 수많은 조각들을 맞춰보며 ‘스스로의 자각’이라는 것을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유년기를 되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했던 것은 다름 아닌 ‘동경’과 ‘모방’이다. 동경을 하고 모방을 하면서,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며 수많은 난관과 시선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해나간다. 서투른 동경과 모방은 아마 우리의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준 양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 <미드 90>는 이렇게 ‘동경’과 ‘모방’으로부터 오는 한 소년의 지독한 성장기를 솔직하고 거칠고 대담하게 얘기하고 있다.



- 성장영화들 중 가장 독보적인 톤

그동안 많은 성장영화들을 봐왔다. 사랑으로 그려낸 성장, 우정으로 그려낸 성장, 아픔으로 그려낸 성장 등 많은 키워드들을 담은 성장 영화들이 있었지만, <미드 90>은 그동안 어떤 성장영화들과는 달랐다. 우선,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VHS TAPE’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연출이 있다. 그리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주인공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에 눈을 뜨게 되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의 형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내, 스티비는 그 형들에게서 느껴지는 일탈의 자유로움과 거친 스타일에 녹아들게 되면서 그 형들을 ‘동경’하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보다 대중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 90년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개개인의 성장에 원초적인 기반이 되는 상호작용인 ‘동경’과 ‘모방’이라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보다 직접적이고 유쾌하게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다. 이렇게 <미드 90>은 독특한 연출 ‘VHS TAPE’와 동경 그리고 모방이라는 성장의 키워드로 지금까지의 성장영화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톤을 구축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바라보고 넋을 놓았던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연예인일 수도 있고 동네 농구 클럽일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다. <미드 90>은 오래전 처음으로 하얀 우리 내면의 도화지를 어떤 색으로 칠했는지 떠올릴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미드 90>에서 대표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재가 ‘스케이트보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뜨거운 공기와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면서 도로 위를 때로는 거리를 새처럼 날아다닌다. 때로는 간간이 점프도 하며 다양한 묘기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영화 속에서 스케이트보드는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열정의 함성을 나타내는 데 정말 완벽한 소재이다. 그리고 각 인물마다의 스케이트보드의 크기와 색, 그리고 디자인은 마치 그들 스스로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소재는 그 이면의 진실을 나타내는 데에도 적합하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면, 다리와 몸은 보드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벅찬 기쁨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우리의 시선은 항상 앞에 고정되어 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도로 위의 구덩이나 돌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자유롭게 자신을 펼치는 등장인물들은 간간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마치 보드로 어려운 묘기를 위태롭게 부리는 것처럼, 갈등하며 고뇌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은 계속 보드를 탄다.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이내 아물며 아픔에 담담해져 간다. 그렇게 거칠고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더욱 험난한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 영화와 현실 사이, VHS TAPE

영화는 ‘VHS TAPE’이라는 틀을 통해서 4:3의 화면 비율로 진행이 된다. 그래서인지 마치 내가 예전에 녹화해 두었던 캠코더 영상을 보는 건지, 영화를 보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신선했다. 90년대를 나타내는 소재들과 연출로 더욱 그 시대만의 고유성을 살리고, 추억과 성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물과 줄거리는 더해졌기 때문에 현실과 영화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성장영화가 탄생했다. 또한 힙합 장르의 사운드트랙이 주로 사용이 되다 보니, 비디오테이프 형식의 연출과 함께 보면 마치 스타일리시한 복고풍의 영상 화보집을 보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런 독특하고 신선함 사이에서도 주제와 메시지를 잃지 않았다. 무엇을 통한 성장인가가 중요한 영화이기보다는,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를 더 느끼게 해 준 키워드 ‘아픔과 성장’ 속에서 뜨겁고 자유로운 열정의 10대들의 날갯짓 그리고 현실의 벽에 부딪힌 고뇌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녹였다. 또한 함께 이 폭풍전야 같은 시기를 보내고 극복하는 사람들의 소중함까지, 가슴 뭉클하게 나타내고 있다. 왜 굳이 ‘VHS TAPE’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를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이 영화는 마치 오래된 영상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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