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티 Greentea Sep 17. 2019

‘믿음’이라는 ‘의심’ 속에 빠진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영화 <메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짧게 개인적인 사담을 해보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물고기 ‘피라냐’를 소재로 한 영화는 봤어도 세상에! 우리나라에서 물고기 ‘메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다 나올 줄이야. 금붕어도 잉어도 아닌 메기라니. 정말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제목이다. 지난 8월 말 개봉한 <벌새>도 새를 이름으로 한 독특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엣나인필름의 다음 배급 영화가 <메기>라 더욱 감회가 새롭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부터 <메기>까지 올해는 정말 독립영화가 가장 빛나는 해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가피한 두 가지 대화를 하고 있다. 아니, 대화는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과 하는 것인데, 대화를 두 가지 씩이나 어떻게 하는가라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저 문장에서 이미 답은 다 나왔다. 바로 상대방과의 대화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 두 가지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하고 있다. 이를 한 단어로 말하면 ‘의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상대방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고 있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내면적으로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사실여부를 판단하고 생각을 묻는다. 그것이 바로 ‘의심’이다.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자면, 원활환 대화이든 꽉 막힌 대화이든, 상대방과의 소통 중에도 우리는 ‘믿음’이라는 검과 ‘의심’이라는 방패 속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 속에 어렴풋이 피어나는 ‘의심’을 영화 <메기>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발칙한 연출로 잘 풀어냈다.



- 인간의 원초적 텔레파시, 믿음
 
 우리의 생각보다 ‘믿음’과 ‘신뢰’는 우리의 본질을 꿰어 차고 있는 작용 중 하나이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사바하>도 장르는 오컬트 스릴러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관객들에게 세밀한 메시지를 전달했었다. 이번 영화 <메기>도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텔레파시인 ‘믿음’을 이와 반대되는 작용인 ‘의심’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잘 표현했다. <메기>를 보고 느낀 점을 한 가지로 간추리라고 하면, 생각보다 우리 삶에는 ‘믿음’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그냥 지나가는,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일들이라도 어느 순간 ‘믿음’이라는 ‘의심’이 스치는 순간,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무언가를 할 때에도,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에도 심지어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우리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일을 진행할 경우도 많지만 어느 순간 멈추고 물음표를 던지면 우리는 스스로 ‘의심’이라는 제2의 대화를 시작한다. 이런 믿음과 의심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삶의 온도를 좌우한다. 믿음이 보장되는 순간에도 의심을 생각하게 되는 양날의 검을 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 영화의 대사 中



- 이런 연출은 처음이지?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메기>는 지금까지 봐온 한국영화와는 정말 차별점이 있는 작품이라 확신한다. 어떤 장면에는 화보집 같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뮤직비디오 같이 느껴질 만큼 색다르고 신선한 연출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메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면서 마치 동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면서 관객을 인도한다. 여기서부터 핵심은 바로 ‘미장센’이다. 한 마디로, <메기>는 대체적으로 한국영화가 진행되는 속도와 톤이 다르다. 마치 환상극장과 우화에서나 볼 법한 판타지 색채가 잘 묻어나 있다. 재개발 공간을 해변으로 꾸며놓은 모습, 외딴 황지에 버스 정류장이 위치해 있는 모습 등 매 컷마다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감정과 생각을 공간과 분위기를 통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이런 설정에 옴니버스 느낌이 나는 전개 방식과 일렉트릭 풍의 음악, 섬세하고 독특한 소품 그리고 자막 등 세부적인 요소들을 통해 한국영화에서 <메기>만이 가질 수 있는 획을 그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병원, 골목, 집 등 일상적인 공간이 <메기>에서는 낯설게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갑고 무섭게 비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저 공간이 평소와 다르게 알쏭달쏭하다. 이렇게 이옥섭 감독과 제작을 담당한 구교환 배우의 유니크한 톤은 ‘익숙한 낯섦’이라는 이미지의 잔상을 깊게 남겨주면서 우리 내면과 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한다.



- 독특함 속에 숨겨진 묵직함
 
 장르가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이라고 불리는 만큼, <메기>는 파격적이다가도 미스터리의 선을 타다가도 코미디에 머무른다. 이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리듬을 타다가도 어느 순간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나 현상에 집중하게 된다. 관객들이 독특함과 신선함으로 받아낸 흥미를 영화 속의 소재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씽크홀, 청년 실업, 재개발, 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이슈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왓챠 프리미어 GV에서 들은 것을 되짚어보면,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 측의 의뢰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작성하게 되었고,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문제들을 넌지시 담아냈다. ‘믿음’과 ‘의심’이라는 우리 내면의 뼈대로 이렇게 사회 이슈를 부드럽게 잘 담아냈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오히려 독특한 연출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전체적인 텍스트를 더욱 오묘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여운도 깊게 남게 한다. ‘이 이야기, 믿을 수 있겠어요?’라는 영화의 문구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믿을 수 있겠냐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면서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라는 영화의 장르 또한 의미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정말로 영화처럼 우리 사회는 정말 미스터리하다가도 어떨 때는 코미디가 된다.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점이 많아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GV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셨다시피, <메기>는 관객들이 채워야 하는 영화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 영화는 마치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텍스트 자체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하냐에 따라 <메기>는 점점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선택을 하고 정답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의 쓰라린 세상 교과서, 영화 <벌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