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상황 속에서 만나는 자신, 영화 <포드 V 페라리>
익숙한 사운드트랙 ‘Top Gun Anthem’이 흘러나오면서 웅장한 전투기 소리와 함께 하늘을 멋있게 가로지르는 ‘톰 크루즈’를 기억하는 가? 한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막연하게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가지게 했던 영화 <탑 건>이다. <포드 V 페라리>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 머릿속에 두 가지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바로 <탑 건>과 <인터스텔라>다. 이 두 작품은 개봉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진하고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포드 V 페라리>는 마치 <탑 건>과 <인터스텔라>를 섞어놓은 듯한 작품이다. 소재는 <탑 건>과 같은 느낌이라면, 그 속의 느낌은 <인터스텔라>와 같다. <탑 건>의 전투기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두근거림처럼, 누군가에는 이 영화가 레이싱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시원하고 짜릿한 엔진 소리에 설렐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그와 동시에 ‘꿈을 대하는 자세’에 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인터스텔라>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는 것처럼, <포드 V 페라리>는 레이싱 카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린다. 다른 장소 다른 소재이지만 두 작품은 모두 ‘꿈’과 ‘현실 경계’의 상관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현실의 정교한 벽을 넘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그 여정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아마 영화를 보면, <인터스텔라>의 ‘쿠퍼’와 이번 작품의 ‘켄 마일스’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것을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포드 V 페라리>는 기존의 레이싱 영화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앞서 소개한 대로, 스포츠 영화이기 때문에 소재가 가지고 있는 느낌은 전투기 액션을 다룬 영화 <탑 건>과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인터스텔라>처럼 묵직하면서 아련하다. 보통 레이싱 영화를 보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레이싱 장면이다. 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이런 레이싱 영화의 기본적인 공식인 ‘통쾌한 레이싱 장면’, ‘승리’와 ‘쾌감’을 동시에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정적으로 대중들에게 남기는 것은 ‘인물들’이다. 레이싱을 중심으로 다룬다고 하여 인물들의 감정 선을 허투루 짚지 않았다. 레이싱의 생생함을 인물의 생생함으로까지 잘 유지했다. 레이싱의 과정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주고받는지, 어떤 감정을 어떤 행동으로 표현하는지가 하나하나 다 살아있다. 사랑과 우정, 기쁨과 슬픔 등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다 담겨있는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영화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아무래도 극한의 상황에 다다랐을 때가 아닐까. 레이싱 중 미칠 듯한 속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순간, 7000 BPM에서 과연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아마도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우리 자신이 살아있음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레이싱도 결국 라이벌과의 싸움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동시에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찬찬히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극 중 켄 마일스 (크리스찬 베일)는 정말 우직하다. 단단한 강철처럼 어느 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고 걸어갈 뿐이다. 그 우직함의 원동력은 아마도 그 7000 BPM의 순간이지 않을까. 삶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보면 우리 자신을 찾는 것이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만나고 발견하게 된 순간,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이런 순간을 느끼고 연기하는 크리스찬 베일이 정말 좋았다. 단단함과 우직함이 특징인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표정의 스펙트럼도 정말 크지 않고 사실 어떻게 그냥 보면 일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여백의 깊이는 정말 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 속을 목소리, 입꼬리, 눈썹 등 많은 요소들로 풍부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대단하고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크리스찬 베일의 작품 중에서 보여준 최고의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포드 V 페라리>를 운 좋게 용산 아이맥스 시사회로 관람했다. 하지만, 아이맥스로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만큼 엄청난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레이싱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을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요소는 역시 영화 속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이싱 장면과 생생한 엔진 소리이다. 152분의 러닝 타임 속에서 이 두 가지는 관객들의 정신을 꽉 붙잡아 준다. 터질 듯한 엔진 소리와 환호성 그리고 두 남자의 우정과 고군분투의 감동을 두 배로 느끼고 싶다면 꼭 아이맥스로 관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