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이정표와 감정의 이정표는 다르다, 영화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는 사실 상 이혼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혼이지만 어떻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이혼’의 건조한 과정 그 자체만 그리기에 급급 했다기보다,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등장인물 니콜과 찰리의 감정을 생생히 살려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을 비롯한 모든 것을 깔끔하게 끊어내는 기계가 아니기에,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극 중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들의 유쾌함과 가족의 따뜻함을 통해서 정말 이혼 소송과 그어진 경계선의 차가운 감정만 다루는 <이혼 이야기>가 아닌 진짜 <결혼 이야기>, 즉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평생을 약속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끈을 다시 천천히 풀어내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결혼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꿈’이다. 극 중 니콜과 찰리는 같은 극단의 배우와 감독의 관계로 등장한다. 그만큼 연극, 영화 등 ‘예술’이라는 비슷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지향하는 목표점도 비슷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경쟁의 관계로 변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꿈과 사랑’ ‘비즈니스와 사랑’ 이 두 가지 관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영화 <라라랜드>도 생각이 났다. LA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꿈과 사랑을 얘기하는 동시에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이다. 비슷하게 <결혼 이야기>도 <라라랜드>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라는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감독과 배우의 관계에서 오는 시선의 괴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의 명백함을 흐트러뜨린다. 모든 사람이 다 사랑을 이런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그리고 있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즉 소통의 중요성은 매우 보편적이다.
<결혼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한다고 해서 더욱더 기대를 했던 영화이다. 하지만 사실, 두 배우 모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미지와 톤이 있기 때문에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의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보면서 이질감이 들지는 않을지 걱정도 앞서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걱정은 영화의 오프닝 때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스칼렛 요한슨의 ‘내유외강’ 그리고 아담 드라이버의 ‘외유내강’의 조화, 즉 두 배우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조화는 알게 모르게 묘한 이끌림과 묵직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는 극 중 두 도시의 특징에서도 나타났다. 극 중에서 니콜 (스칼렛 요한슨)은 LA, 찰리 (아담 드라이버)는 뉴욕을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LA의 자유로움과 광활함은 니콜의 내면을, 뉴욕의 촘촘함과 일정함은 찰리의 내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인물의 실루엣을 활용한 영화 포스터도 이를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결론적으로, <결혼 이야기>는 단순히 부부클리닉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영화라고 느껴진다. 사람의 감정체계란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무섭다. 사랑과 희망이라는 강력한 감정에 빠져 완전히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가도, 이내 두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으로 인해 되돌아올 수 없는 이별이라는 여정의 이정표를 찍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표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계처럼 완전히 0%로 감정을 비워내지는 못한다. 그동안 함께 쌓아온 복잡한 실타래와도 같은 이 감정의 진득함과 섬세함을 단번에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이 영화는 잘 알고 있고, 냉정하기보다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서로에게 전부였던 ‘진심’이 어느새 차가운 소유물이 되었을 때, 사소한 행동 하나가 무기가 될 때, 함께 마음을 맞춰왔던 과정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이해관계로 변해갈 때도 ‘감정’은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다. 더 진득하게.